대박인 줄 알았는데 쪽박? 생활형숙박시설 “무피·마피에도 안 팔려요”
# 40대 직장인 A씨는 요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6개월 전 사들인 아산의 생활형숙박시설 분양권 가격이 크게 떨어졌는데 최근 이자마저 급등한 탓에 급매물로 던져야 하나 고민돼서다. A씨는 “아직 입주도 시작하기 전인데 월 100만원 남짓이었던 대출 이자가 반 년 새 200만원을 훌쩍 넘겼다”며 “최초 분양 당시 수십 대 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던 상품이라 대박(웃돈)을 기대했는데 쪽박만 차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한때 다주택자 규제 회피 수단으로 인기를 누렸던 생활형숙박시설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주택으로 간주되지 않아 대출 규제가 느슨하고 전매가 자유로워 지난해까지만 해도 투자자가 몰렸던 상품이다. 하지만 치솟는 금리에 부동산 경기까지 고꾸라지며 투자 열풍이 짜게 식었다. 매수 심리가 급속도로 위축된 탓에 ‘마피(분양가보다 낮은 가격)’ 매물조차 소화되지 않으면서 투자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012년 장기 투숙 호텔 개념으로 도입된 생활형숙박시설은 수분양자가 전·월세 임대 계약을 맺어 임대 수익을 내거나 호텔·콘도처럼 숙박시설로 운용해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이다. 다만 취지와는 달리 투자자들은 생활형숙박시설을 운영해 월세나 숙박료를 벌어들이기보다는 웃돈을 붙여 전매하면서 시세 차익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시장 분위기가 심상찮아졌다.
마곡 르웨스트 1억원 낮은 매물도
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위치한 생활형숙박시설 ‘롯데캐슬르웨스트(총 876실, 2024년 8월 입주 예정)’는 전용 49㎡부터 전용 111㎡까지 평형대를 가리지 않고 초급매물이 수두룩하다. 나와 있는 매물 45건 가운데 웃돈이 붙은 매물이 거의 없다. 평형에 따라 최초 분양가보다 적게는 500만원, 많게는 1억원 낮은 분양권이 매물로 나오고 있다. 가장 작은 평형인 전용 49㎡는 최초 분양 당시 고층 기준 9억원대에 분양됐던 상품인데, 최근 8억5800만원에도 매물로 나와 있다.
마곡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웃돈이 5000만원 붙은 매물이 올라와 있기는 한데 최근 분위기가 반영되지 않은 매물”이라며 “마피에도 팔리지 않는 상품이 웃돈을 얹힌 채로 팔릴 리가 없다”고 말했다.
롯데캐슬르웨스트는 2021년 8월 분양 당시만 해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876실을 모집하는데 58만명 넘게 몰리며 평균 657 대 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 전용 111㎡ 분양가는 최저 19억1700만원, 최고 20억9400만원으로 웬만한 서울 아파트보다도 비쌌는데 13실 모집에 8만여명이 몰리며 6049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롯데캐슬르웨스트는 지하철 9호선·공항철도 환승역인 마곡나루역과 가까운 데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적용되지 않고 일반 상업용 부동산으로 대출받을 수 있었던 점이 청약 수요에 불을 지폈다.
특히 생활형숙박시설이라는 점 자체만으로도 투자자 이목을 많이 끌었다. 생활형숙박시설은 주택이 아니다. 대출 규제에서만 자유로운 게 아니라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가 중과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청약통장도 필요하지 않고, 가점이 아닌 추첨제로만 당락이 결정된다. 전매 제한도 따로 없다. 당첨된 후 바로 매도할 수 있어 단타 수요를 끌어모았다. 그런데도 생김새는 주택과 비슷하고 주변 시세보다 저렴해 웃돈을 노린 단타 수요가 몰렸다. 실제 롯데캐슬르웨스트는 분양 직후 웃돈만 1억5000만원이 붙어 거래되기도 했다.
하지만 올 들어 분위기가 확 가라앉았다. 애초에 단타 투자처로 인식된 생활형숙박시설은 계약금 정도만 낸 뒤 분양대금 상당 부분을 대출에 의존한 투자자가 많았다. 그만큼 최근 급등한 금리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주변 아파트값이 내리자 그나마 주택보다 조금 더 저렴하다던 가격 매력도 사라졌다.
B중개법인 관계자는 “분양대금이나 매매대금 상당 부분을 대출로 충당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었는데 지금은 고금리로 그런 이점이 사라졌다”며 “금리 인상 여파로 임대 수익률이 낮아지면서 매수자를 찾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 시장도 냉랭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4월 충남 아산에 분양된 ‘한화포레나천안아산역’에서는 전용 117㎡가 9억1100만원에 급매물로 나왔다. 최초 분양가가 9억6100만원이었던 평형이다. 비슷한 면적의 다른 생활형숙박시설도 적게는 100만원, 많게는 5000만원 빠진 금액에 급매물이 나와 있다.
강원 속초 동명항 근처에 공급된 생활형숙박시설 ‘속초아이파크스위트’에서도 급매물이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에 나온 상태다. 이곳 전용 29㎡의 분양가는 2억여원 수준이었는데 최근 분양가보다 2300만원 낮은 가격에 호가가 형성돼 있다. 그동안 속초에서는 청초호, 동명항 등지에 공급된 생활형숙박시설 단지가 여럿이었다.
수익형 부동산 대표 상품인 생활형숙박시설이 수요자에게 외면받는 가운데 급기야 결국 수백억원을 들여 생활형숙박시설을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부산 해운대 중동의 한 생활형숙박시설 사업지(옛 해운대튤립호텔)는 최근 300억원을 들여 오피스텔 리모델링 공사를 하기로 했다. 관리관청으로부터 지난해 5월 대수선·용도 변경 허가도 받았다. 이에 따라 이 사업지는 기존 527실의 생활형숙박시설과 근린생활시설 9실을 오피스텔 142실, 근린생활시설 9실로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생활형숙박시설은 분양받은 사람의 선택에 따라 전월세 임대 계약을 맺어 임대 수익을 내거나 호텔 콘도처럼 숙박시설로 운용해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이다. 대신 주거용으로 이용할 수는 없다. 정부는 당초 생활형숙박시설을 주거용으로 불법 사용할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등 강력한 단속에 나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다만 오는 10월 14일까지 2년간은 용도 변경을 신청해도 이행강제금을 부과하지 않겠다며 퇴로를 열어뒀다. 건축법상 오피스텔에 적용되는 여러 규제도 한시적으로 완화했다. 이에 부산 해운대구를 비롯해 생활형숙박시설이 밀집한 지역들에서는 용도 변경 공사가 한창이다.
업계에서는 오피스텔 변경이 한시적으로 가능한 올 10월까지는 용도 변경 인허가 신청이 꾸준할 것으로 내다봤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겸임교수는 “주택 가격 하락폭이 큰 요즘, 주택 대체 투자처 성격이 강한 생활형숙박시설은 변동성이 더 클 수 있다”며 “생활형숙박시설 가격은 당분간 약세를 띨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1호 (2022.01.04~2023.01.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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