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에서 결승까지, 악바리 모델들의 성장드라마

이준목 2023. 1. 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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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SBS <골 때리는 그녀들>

[이준목 기자]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
ⓒ SBS
 
모델팀 FC 구척장신이 원년멤버 송해나의 극장골에 힘입어 창단 첫 결승진출이라는 드라마를 완성했다. 1월 4일 방송된 SBS 스포츠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는 슈퍼리그 4강전 FC 구척장신 VS. FC 액셔니스타의 역대급 난타전이 펼쳐졌다.

두 팀은 <골때녀>의 대표적인 닮은꼴 라이벌팀으로 꼽혔다. 전원 모델로 구성된 구척장신과 모델 출신 연기자들이 많은 액셔니스타는 피지컬이나 스타일 면에서 서로 연관성이 많은 데다, 서로 오래된 친분이 있는 멤버들이 많다보니 사실상 자매팀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결승진출의 길목에서 만난 양팀 멤버들은 일시적으로 절교를 선언하고 서로를 견제하며 강한 승부욕을 드러냈다.

오범석 구척장신 감독은 '럭비좌'라는 별명이 붙은 럭비 선출 허경희를 이현이와 투톱으로 세우며 수비에서 공격으로 과감하게 전진배치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구척장신인 전반 1분 만에 역습 상황에서 허경희와 이현이의 연속골이 터지며 순식간에 2-0으로 앞서나갔다. 구척장신의 강한 몸싸움과 빠른 공격전개에 초반 액셔니스타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액셔니스타도 반격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반 3분에 에이스 정해인이 드리블 돌파로 구척장신 수비수들을 몰고다니다가 측면에서 낮게 깔아준 크로스를 이혜정이 오른발 슈팅으로 가볍게 밀어넣으며 만회골을 기록했다.

초반부터 서로 한껏 달아오른 양팀의 공방전은 팽팽한 흐름이 이어지며 시간이 갈수록 뜨거워졌다. 구척장신의 세트피스 상황에서 이혜정은 문전 경합을 펼치다가 손을 쓰는 허경희에게 "왜 미냐"고 흥분하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과열된 분위기에 심판은 잠시 경기를 중단시키고 양팀 선수들에게 주의를 줬다.

허경희는 모델 선배인 이혜정의 질타에 멘탈이 흔들리며 잠시 위축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구척장신 동료들은 그런 허경희를 격려하며 힘을 불어넣었다. 잠시 승부욕에 격앙됐던 이혜정도 허경희에게 다가와 손을 잡아주며 화해했다.

어수선한 상황이 지나고 난 전반 6분, 정혜인의 킥인을 송해나가 머리로 걷어내려던 것이 빗맞아 굴절되며 그대로 구척장신의 골망을 가르는 자책골이 되고 말았다. 이로써 승부는 2-2로 동점이 됐다.

이어진 공격에서 구척장신은 이현이의 킥인을 송해나가 슈팅으로 연결한 것이 이영진의 손에 맞으면서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송해나가 얻어낸 PK를 허경희가 키커로 나서 깔끔하게 마무리하면서 다시 리드를 잡았고, 두 사람은 방금 전 실점의 자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액셔니스타가 불과 2분 뒤에 정혜인의 킥인이 골키퍼 아이린의 손을 맞고 골문 안으로 들어가는 자책골이 되면서 다시 3-3 동점이 됐다.

후반들어서도 양팀의 공방전은 더욱 뜨겁게 불붙었다. 후반 2분 이현이의 킥인이 이혜정을 지나 송해나에게 연결됐다. 송해나는 논스톱 슈팅으로 방향을 바꾸며 한 번의 바운드를 거쳐 골망을 갈랐다. 송해나가 구척장신에서 만들어낸 첫 골이자, 692일 만의 득점이었다. 송해나는 감격에 그 자리에 쓰러져 눈물을 흘렸고 동료들이 달려와 함께 첫 골의 기쁨을 누렸다. 이로써 구척장신의 4-3 리드.

액셔니스타도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후반 6분 정혜인의 코너킥을 이어받아 공격에 가담한 이영진의 첫 번째 슈팅을 송해나가 몸으로 막아냈으나, 흘러나온 공을 이영진이 다시 두 번째 로빙슛으로 연결했고 공은 절묘하게 아이린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코스로 떨어지며 골라인 안에 들어갔다가 튀어나왔다. 심판은 골을 인정했고 양팀은 4-4로 무려 세 번째 동점에 이르렀다.

치열하던 승부는 다시 한번 송해나의 발끝에서 운명이 엇갈렸다. 후반 막판 구척장신의 코너킥에서 이현이가 올려운 공을 문전 오른쪽에서 침투한 송해나가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하며 간발의 차이로 골키퍼 이채영의 손을 맞고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송해나의 데뷔골에 이은 멀티골이지 난타전의 종지부를 찍는 결승 극장골이었다. 자책골까지 포함하면 해트트릭을 기록한 셈이 됐다.

액셔니스타는 마지막까지 정혜인을 앞세워 만회골을 넣기 위해 공세를 펼쳤으나. 라인을 내리고 지키기에 들어간 구척장신은 아이린의 연이은 선방으로 위기를 넘겼다. 이영진의 마지막 중거리 슈팅을 이현이가 몸으로 저지하고 허경희가 클리어링해내면서 종료 휘슬이 울렸고, <골때녀> 사상 가장 치열했던 난타전은 5-4, 극적인 구척장신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
ⓒ SBS
 
창단 이후 첫 결승진출에 성공한 구척장신은 이날 응원차 경기장을 찾은 전 멤버 김진경-차수민과 함께 환호하며 승리를 축하했다. 특히 페널티킥 유도와 멀티골을 뽑아내는 맹활약을 펼치며 이날 승리의 주역이 된 송해나는 "항상 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지 라고 생각해왔는데, 오늘 처음으로 팀에 기쁨을 선물한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이어 송해나는 "한 골 넣으면 그만두려고 했는데, 두 골을 넣어서 못 그만두겠다"고 너스레를 떨며 함박미소를 감추지 못 했다. 구척장신은 이제 다음주 방송을 앞둔 탑걸 VS. 월드클라쓰의 승자와 결승에서 우승을 다투게 됐다.

한편 접전 끝에 석패하며 결승진출이 좌절된 액셔니스타는 3, 4위전으로 밀려나게 되며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 했다. 5골을 허용한 골키퍼 이채영은 자책감에 끝내 눈물을 쏟아내며 동료들의 위로를 받았다.

정혜인은 "오늘은 액셔니스타가 구척장신에게 정신적으로 패한 것 같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이혜정은 "많이 실망스럽다. 경기가 끝났는데 다리가 멀쩡하다. 아쉬운 경기는 최선을 다해도 안 됐을 때 나오는 말이다. 오늘은 아쉬움보다는 반성해야 할 경기"라고 자평하며 다시 전의를 다졌다.

어쩌면 구척장신이야말로 '축알못들의 도전과 성장'이라는 <골때녀>의 취지에 가장 잘 부합하는 진짜 주인공팀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척장신은 2021년 설특집 파일럿 시즌부터 참가했으며 이현이-송해나-아이린은 <골때녀>의 시작과 모든 역사를 함께한 원년멤버들이기도 하다.

구척장신은 첫 무대였던 파일럿 당시만 해도 2연패로 4개팀 중 유일하게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최하위에 그치는 굴욕을 당했다. 겉보기에 모델들 특유의 압도적인 피지컬이 주는 위압감과 달리, 당시만해도 선수들은 그저 공만 우루루 따라다니는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이현이는 지금과 달리 파일럿 시즌 때만 해도 다리에 힘이 없어서 걸핏하면 넘어지는 몸개그를 펼치기 일쑤였다. 심지어 송해나는 경기에 잘 뛰지도 못하는 벤치멤버였다. 아이린만 주전 골키퍼로 분전했지만 그만큼 허약한 팀전력 탓에 혼자 바쁘게 선방하다보면 경기가 끝나버리곤 했다. 키를 제외한 기술-체력-스피드-활동량 모두 최약체팀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정규시즌에 접어들면서 구척장신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즌1과 시즌2에서 연이어 4강에 오르며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세 번째 시즌에 이르러 마침내 창단 첫 결승이라는 쾌거를 일궈냈다. 럭비 선출인 허경희같은 새 얼굴들의 공로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원년멤버들을 중심으로 축구 초보들의 눈부신 성장을 바탕으로 이뤄낸 결과이기에 더 값지다.

다소 부족한 실력을 노력과 근성으로 극복해낸 '악바리 언니들의 도전기'는 구척장신의 서사를 빛냈다. 지난 시즌2 준결승전에서는 우승팀이 된 국대패밀리에 0-6 참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선수들은 거듭된 좌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일부 멤버와 감독교체의 우여곡절 속에서 또다시 오뚝이처럼 도전하는 열정을 보여줬다.

초대 주장 한혜진의 뒤를 이어받은 이현이는 초기의 예능멤버에서 <골때녀> 최고의 공격수로 자리잡으며, 프로그램 방영 중 가장 괄목성장한 선수 중 하나로 꼽힌다. 특유의 진지함과 승부욕, 집중하면 확장되는 코믹한 동공 리액션 등은 이현이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잡았다. 방송활동과 인지도 면에서도 <골때녀> 이전과 이후로 나뉠 만큼 이현이는 프로그램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또한 송해나는 '공식 구멍', '최약체'라는 수식어를 극복하고 팀의 주전이자 결승진출의 최고 히어로로까지 부상했다. 모델 특유의 근성과 승부욕, 끈끈한 팀워크는 여러 멤버와 감독을 거치면서도 다른 팀과 차별화되는 구척장신만의 고유한 색깔로 자리매김했다.

모델은 누구보다 몸이 재산인 직업이다. 직업병을 달고 있는 경우도 많고, 부상이나 몸관리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차갑고 예민할 것 같았던 탑모델들이 프로 선수들 못지않게 몸을 안 사리고 매 경기 가장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축구에 몰입하는 '진정성'은, 최용수나 최진철, 백지훈, 오범석같이 그동안 구척장신을 거쳐간 축구인들도 인정하고 감탄했던 대목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척장신의 성장기는, <골때녀>라는 프로그램만의 정체성 확립과 인기 상승에 있어서도 톡톡이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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