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하고 싶은 사람이 많은 드라마, 곱씹어 보는 장면

황진영 2023. 1. 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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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JTBC <사랑의 이해>

[황진영 기자]

아들에게는 배우 유연석이 Dr. Kang 이자 Dr. Ann이다. 드라마 <수리남>의 데이빗을 연기하는 유연석을 보며 나도, 아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어서다. 배우 유연석의 전작에서의 역할들이 '외사랑'이었다면, 주연을 맡은 JTBC <사랑의 이해>에서는 사랑을 배워가는 사회 초년생의 풋풋함이 엿보인다. 아마도 나는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될 것 같다.

각각의 등장인물에서, 갓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나를, 내가 만났던 사람들을 본다. 응원하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다. 닮은 구석이 있는, 애정했던 드라마들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사회 초년생들의 사랑과 커리어 분투기를 다뤘다는 점에선 <쌈, 마이웨이>를, 착한 금수저와 주목받는 흙수저가 나온다는 점에선 <청춘기록>을, 여주인공의 뚱한 캐릭터와 별다른 임팩트 없는 소소한 사건 전개는 <나의 해방일지>를 닮았다.

제대로 된 고백을 할 것처럼 약속을 잡고, 호텔 스시집에서 한참을 기다리게 해놓고 뒤늦게 나타난 상수(유연석)에게 수영(문가영)이 왜 그렇게 화가 났었는지, 감질나게 보여주다 4화에 와서야 사건의 전말을 보여준다. 머뭇거리다 돌아섰던 상수의 모습을 굳이 보게 된 수영의 분노를 나도 뒤늦게 이해했다. "이럴거면 다른 사람들이랑 다른 척 하지 말지 그랬어요"라는 말 뒤에 숨은 그녀의 마음을 읽어본다.

'너까지 그러면 안되는거잖아. 겨우 마음을 열려고 했는데, 너도 똑같은 사람이면, 안되는거잖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던, 억울하고 약올라 죽겠다는 상수의 마음도 읽어본다. 강남 8학군에서 자라 명문대에 입학했고, 아직 강남 출신 친구들을 만나지만, 그들과는 섞이지 못하는 마음. 그렇다고 자신에 대한 부풀려진 오해를 적극적으로 바로잡지도 못하는 그 마음, 예상치 못했던 과한 자리에 나온 음식들을 포장해 고생하는 엄마에게 먹이고 싶은 그 마음. 물과 기름처럼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는 않지만 어쩐지 겉도는 나, 금수저인 미경과 더 닮았는지, 흙수저인 수영과 더 닮았는지 혼란스러운 그 마음말이다.

예상컨대, 4화에서 그 머뭇거림을 내려놓고 용기내어 수영을 끌어당겨 안았다고 해서 둘의 사랑이 바로 시작되지는 않을 것 같다. 지난한 오해의 장면들이 겹칠 거고, 그때마다 나같은 시청자들은 둘의 사랑을 더 응원하게 될 거다.

러브라인과 별도로 주목하고 싶은 건, 착한 금수저로 나오는 미경이라는 인물이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것 같은 그녀는 주변 사람마저 살뜰히 챙긴다. 꼭 필요할 때,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수영이 지점장의 은근한 성희롱을 참아내고 있을 때,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구출하는 장면은 직장내 성희롱 방지교육의 한 장면으로 써도 될만큼, 방관자(bystander)에서 틀을 부자연스럽게 깨지 않는, 행동하는 사람(upstander)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보여준다. 실제로 내가 일하는 기관에서 받은 직장내 성희롱 방지 교육에서도 직접 대놓고 가해자의 행동을 지적하는 것보다는 상황을 적극적이지만 자연스럽게 만들어 피해자를 구출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눈치도 안보냐고, 너무 자신감 넘친다며 감탄하는 수영의 말에 그저 웃기만 하는 미경의 마음도 읽어본다. 미경은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눈치를 본 후 그 상황에 지지 않겠다는 마인드로 살아가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눈치를 본다'는 뜻을 가진 영어 표현 'read the room'을 넘어 적극적으로 'make the room'을 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참고로 'make the room'이라는 표현은 실제 영어화자들 사이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말이다. 공간을 만들어내는 'make room' 이나 침구를 정리한다는 의미의 'make a room'과는 다른 의미의, 내가 자주 쓰는 '개인 관용구'라고나 할까. 나는 'make the room'을 더 잘 하고 싶은 사람이다. 눈치를 보고 적극적으로 상황을 만들어나가려면 '이 자리에서 내게 기대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면밀히 파악하고 조율해야 한다. 고도의 사회적 능력(social skill)이 필요한 일이다.

상수와 수영의 관계가 공식적으로 밝혀진 이후 '마음에 든' 사람인 수영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나갈지도 아마 남은 에피소드에서 한자락을 차지하지 않을까. 상수와 수영, 두 사람을 등 뒤에서 바라볼 정 청경, 종현의 태도 변화도 같은 맥락에서 궁금해진다. 쉽게 포기할런지, 마음 속 서운함을 어떻게 표현할런지.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끝까지 수영을 응원할 수 있을지, 무엇보다 원하는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몰입해서 보는 드라마의 끝이 시시한 것만큼 허무한 일도 없는 것 같다. 이 드라마를 끝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보고 싶다. 응원하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나오는, 찬찬히 보며 곱씹을 장면이 많은 드라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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