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 당한 아이를 위하여... 여배우가 출연 결심한 사연

김성호 2023. 1. 5.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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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427] 질리언 암스트롱의 <작은 아씨들>

[김성호 기자]

핵가족을 넘어 1인가구가 넘쳐나는 21세기다. 할아버지, 할머니, 수많은 형제들과 북적이며 살던 모습은 지난 시대의 무엇이 되어 버렸다. 30년 뒤면 전체 가구 가운데 최소 40%가 1인가구가 될 거라는 전망도 더는 새롭지 않게 들려온다. 그때가 되면 가족의 의미 역시 전혀 다른 것이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사람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위안이 있는 법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중에서도 가족, 가까이서 몸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느끼는 특별함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수많은 형제와 자매들 사이에서 자란 이와 홀로 자라난 사람에겐 서로 비할 수 없는 경험과 감정이 있을 것이 분명한 일이다.

19세기 쓰인 루이자 메이 올콧의 <작은 아씨들>은 미국을 대표하는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 미국 시골마을 중산층 소녀들의 이야기로, 계층과 성별, 세대를 뛰어넘는 사랑을 받았다. 영화의 나라인 미국이 이런 작품을 영상화하지 않았을 리 없다. 소설은 열 차례 가까이 영화화됐는데, 개중 캐서린 햅번이 출연한 1933년 작과 그레타 거윅이 감독한 2019년 작 등이 유명하다.
 
▲ 작은 아씨들 포스터
ⓒ 컬럼비아 픽쳐스
 
할리우드 간판들의 풋풋한 시절

1994년 작 <작은 아씨들>을 지지하는 영화팬도 적잖다. 호주 출신 여성 감독으로 당대 주목받는 여성 영화인 중 하나로 꼽히던 질리언 암스트롱의 이 영화는 훗날 할리우드를 대표하게 되는 명배우를 여럿 출연시켜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치 가를 지탱하는 어머니 역은 <데드 맨 워킹>으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 되는 수잔 서랜든이 맡았다. 뿐만 아니다. 네 딸 중에서도 조를 연기한 위노나 라이더, 베스 역을 맡은 클레어 데인즈, 막내 에이미를 연기한 커스틴 던스트는 훗날 할리우드 대표 여배우로 승승장구한다.

여기에 네 자매의 마음을 뒤흔드는 옆집 사내 로리를 크리스찬 베일이, 그의 스승 격인 프리드리히를 아일랜드 출신 명배우 가브리엘 번이 맡았으니 흠잡을 데 없는 캐스팅이 이뤄졌다 하겠다.

영화는 미국 남북전쟁 시기 조용한 마을 뉴잉글랜드의 중산층 가정을 배경으로 한다. 아버지는 북군에 입대해 자리를 비웠고 어머니와 네 딸이 어렵게 살림을 꾸려간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강단 있는 어머니와 당찬 딸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 꽤나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원작과 가장 가까운 <작은 아씨들>
 
▲ 작은 아씨들 스틸컷
ⓒ 컬럼비아 픽쳐스
 
메그와 조, 베스와 에이미, 네 자매의 일상은 정말이지 지루할 틈이 없다. 조가 쓰는 각본으로 이뤄지는 연극부터 옆집 사는 남자의 등장이며 일상의 여러 난관들이 삶의 재미이자 숙제가 되어주는 것이다. 이와 맞닥뜨려 한 걸음씩 나아가는 동안 소녀들은 숙녀가 되니 이 영화는 가족드라마인 동시에 성장드라마라고도 할 수가 있겠다.

1994년 작 <작은 아씨들>이 다른 작품보다 특별한 이유가 몇 있다. 하나는 원작에 가장 충실한 작품으로 꼽힌다는 점이다. 가족 간의 이야기가 영상화 할 때는 다소 단조로울 수 있다는 비판을 사곤 함에도 질리언 암스트롱은 원작을 최대한 살려내는 것에 온 정신을 기울였다. 결과는 제법 성공적이어서 소설의 팬들이 꼽는 가장 만족스런 영화가 된 것이다.

위노나 라이더가 출연한 특별한 사연
 
▲ 작은 아씨들 스틸컷
ⓒ 컬럼비아 픽쳐스
 
다른 하나는 주인공인 조 역을 맡은 위노나 라이더다. 당시 아동성범죄자에게 납치된 열 두 살 소녀가 살해되는 사건이 미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는데, 피해자가 라이더와 같은 동네 출신이었던 것이다. 직접 현상금까지 걸고 사건 해결에 힘을 모았던 라이더는 사건이 비극적으로 종결된 뒤 피해자가 좋아했던 이 작품에 출연하기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실제로 라이더의 조 연기는 영화화 된 모든 <작은 아씨들> 가운데 최고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다. 네 자매 가운데 가장 당찬 성격으로 그들만의 연극무대에서도 늘 남자 역할을 했던 조의 드라마는 소설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적으로 그려진다. 조의 캐릭터 자체가 원작자 루이자 메이 올콧이 스스로를 투영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억압적이며 불평등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제 정체성을 발현하고 마는 그녀의 모습이 감동적인 탓이다.

라이더는 선의를 가진 주변인을 애정하면서도 쉽게 스스로를 잃지 않고, 동시에 꿈을 향해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 멋진 캐릭터를 훌륭하게 연기해낸다. 끝내 비극으로 마무리 된 사건 이후 극심한 슬픔을 품었음에도 이토록 멋진 연기를 펼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보는 내내 감동할 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조가 사랑하는 상대를 바라보는 표정에는 빛이 담겨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다.
 
▲ 작은 아씨들 스틸컷
ⓒ 컬럼비아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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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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