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전 돌아가신 아빠가 보낸 택배"…억지·기만의 SNS 기승전 책 광고
한 여자가 소개팅에 나섰다. 남자는 여자의 회사 이야기를 듣더니 조언을 건네기 시작한다. 여자가 감동을 받아 눈이 휘둥그레지자 남자는 말한다.
"제가 오늘 드린 말씀은, 자존감을 높이는 특별한 안내서 '힘들었다는 말이 왜 그토록 힘들었을까'에서 일부 발췌했습니다. 가슴속 수 많은 상처를 털고 싶은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이후 '지금 너무 힘들다면,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라면, 구매해서 읽어보세요. 구매링크는 프로필에'라는 문구가 뜬다.
이 영상은 유튜브 채널 '무명감독 박성용'의 '크리스마스니까 소개팅' 영상 중 일부다. 최근 SNS에 명언이나 위로글, 영화 같은 이야기 끝의 결말이 허무한 '책 광고'인 상황을 풍자한 영상이다. 이 영상을 본 한 네티즌은 "요즘 감동적이거나 스릴 있는 글 있으면 끝에 책 광고 나올까 봐 조마조마하다"라고 남겼다.
이처럼 최근 인스타그램 피드에 이 같은 낚시용 책 광고가 넘쳐나고 있다. 사람들의 흥미를 끌 만한 주제를 던져놓은 후, 아무런 상관도 없는 책의 구매 링크로 이어진다. 연결 방식도 다양하다. 자기 계발서는 '월 1000만 원 버는 방법', '내가 연봉 1억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라는 글로 클릭을 부르고, 소설은 넷플릭스 영화처럼 보이도록 꾸민다. 에세이는 '무례한 직장상사에서 대처하는 법', 'MBTI 별로 추천하는 책' 등 요즘 트렌드와 억지로 짜 맞춰 책을 광고한다.
일본 소설가 렌조 미키히코의 옴니버스 소설 '열린 어둠'은 현재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작품처럼 보이도록 광고를 만들었다. 이에 사람들은 현재 공개 중인 넷플릭스 시리즈라고 착각했고, 실제로 넷플릭스에 접속해 검색한 사람들도 많았다. 넷플릭스가 책 원작으로 시리즈를 자주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 작품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겨냥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 책은 넷플릭스와 관계가 없다. 교묘하게 넷플릭스 로고만 가려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을 피했을 뿐이다.
렌조 미키히코의 또 다른 책 '백광'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 드라마화되는 과정'이라면서 '백광'이 넷플릭스 시리즈화를 결정한 것처럼 글을 썼지만 결국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됐으면 좋겠다"라는 식으로 마무리가 된다. 역시나 이 작품도 넷플릭스와 연결점이 없다.
또 다른 광고에서는 '볼 수록 신박한 영화 포스터 제작 과정'이라며 영화 '빌리 엘리어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스틸컷이 포토샵으로 영화 포스터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기까지는 글과 내용이 일치한다.
그러나 다음 사진에는 '이거 보니 생각난 어느 19금 표지 디자인. 1차 시안'이라며 렌조 미키히코의 '열린 어둠' 원작 표지를 올렸다. 이후 '최종_진짜 최종'이란 글과 함께 '열린 어둠'의 한국판 표지가 올라와 있다. 결국 '열린 어둠'을 광고를 위한 게시물이었다.
실제 사연으로 보이도록 만든 광고도 있다. '4일 전에 돌아가신 아빠가 보낸 택배가 도착했다'라고 사진을 올린 후 "어느 분이 인스타에 올린 글인데"라고 글이 시작된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장례식 마치고 지내다가 서울 올라왔는데 아버지가 보낸 택배가 자취집에 도착해 있었다고"라면서 아버지를 잃은 자식의 그리움과 효도하지 못한 죄책감을 써놨다. 그러나 역시 마지막에는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시간을 되돌려 사고가 난 그날의 기차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다면'이라는 글귀와 책 사진으로 결말을 맺는다.
이 같은 방법으로 '남친이 내 이상한 코멘트를 달아놨어'는 '열한 번의 계절을 지나'의 책 광고, '꿈을 생생하게 꾸는 게 위험한 이유'는 '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 '이사 왔는데 안내문이 소름 돋는다'의 사연은 '테라피스트'의 책 광고다.
광고인지 모르고 클릭한 사람들은 '광고 엔딩'을 맺는 상황에 허탈함과 분노를 표한다. 상품을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 마케팅하는 일은 경제 시장 논리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동안 허위, 과장, 무리한 광고들이 비난의 대상이 된 상황을 자주 목격했다. 사람들의 관심사, 트렌드에 맞춘 광고의 한 방법이라고 변을 내놓을 순 있으나 눈속임과 기만, 억지 공감과 동조를 일삼는 마케팅은 오히려 광고하는 책에 대한 피로감, 거부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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