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은 기시다 총리에게 '길일'... 윤석열 정부의 의도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2023. 1. 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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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일본 언론이 '마무리하는 최종단계'라고 보도한 이유

[김종성 기자]

 4일 <산케이신문>이 보도한 '한국, 징용공 문제로 12일 공개토론회, 해결책 제시로 최종단계'
ⓒ 산케이신문
외교부가 강제징용(강제동원) 공개토론회를 오는 12일 개최한다. 민관협의회와 현인회의(현자회의)에 뒤이어 열릴 이번 행사를 앞두고 일본 언론은 '최종 단계' 운운하고 있다. 의견수렴보다는 마무리 단계가 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4일 <산케이신문>은 '한국, 징용공 문제로 12일 공개토론회, 해결책 제시로 최종단계' 기사에서 "작년 말의 일한 국장급 협의에서 한국 측은 공청회나 공개토론회 뒤에 신속히 결론을 내겠다는 의향을 일본 측에 전했고, 토론회는 해결책을 마무리하는 최종단계로 위치 매김돼 있다"라고 보도했다.

같은 날 <요미우리신문>은 '전 징용공 문제로 12일 공개토론회, 최종적인 해결책 발표될까... 한국 외교부' 기사에서 마무리 짓기 위한 명분이 될 것이라는 시각을 드러냈다. "토론회를 근거로 최종적인 해결책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보도했다. 토론회 날짜가 알려지기 전날 보도된 <지지통신> 기사에도 '징용공 문제로 조만간 공개토론, 해결책 확정으로 최종 단계, 한국 정부'라는 제목이 붙었다.

국가기관이 공개토론회를 열게 되면 다양한 의견이 나오기 마련이고, 그런 의견을 수합하고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이번 공개토론회는 그런 모임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 정부는 공개토론을 거쳐 해결책을 굳힐 방침이며, 빠르면 1월 중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지통신> 보도처럼, 마무리 짓기 위한 최종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지난달에 외교부가 피해자 측과 일본 외무성에 제시한 해결 방안을 종합하면 '전범기업의 사과·배상을 요구하지 않는 대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한국 기업들의 기부금을 모아 피해자들에게 보상 혹은 변제 형식으로 지급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 방안대로 하게 되면, 일본을 상대로 제국주의 전쟁범죄의 책임을 묻지 않음은 물론이고, 배상이 아닌 보상·변제 형식을 취함으로써 노예노동의 불법성을 드러내지 않는 방향으로 마무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전범기업의 한국 재산을 놓고 대법원에서 진행 중인 강제집행 현금화 절차를 중단시키는 명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렇게 되면, 윤석열 정부가 그동안 공언해온 '전범기업의 성의표시만큼은 받아내겠다'는 말은 허언이 된다. 한국 측이 문제 해결에 먼저 착수하면 일본 측이 성의를 표시할 수 있다는 게 외교부 입장이다.

이 같은 입장이 12일의 공개토론회를 계기로 바뀌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다. 그간의 민관협의회나 현인회의도 국민 여론을 수렴하기보다는 윤석열 정부의 입장을 강조하는 장으로 활용되는 데 그쳤다.

일본의 환영 받는 윤석열 정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야마구치 나쓰오 일본 공명당 대표를 접견하고 있다.
ⓒ 대통령실
 
공개토론회는 물론이고 민관협의회나 현인회의 역시 스케일이 크다. 국가 차원에서 이런 이벤트를 여러 차례 열게 되면 토론의 열기가 달아오를 법도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정부만 달려갔을 따름이다. '전범기업에 책임을 묻지 않고 성의 표시만 받아낸다'는 일관된 입장이 거듭 강조됐을 뿐이다.

윤석열 정부가 실제로는 국민 여론을 수렴하지 않으면서도 거창한 이벤트를 계속해서 개최하는 배경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개최 목적이 국내 의견수렴이 아니라면, 그 의도를 외부에서 찾는 수밖에 없다.

강제징용에 관한 윤석열 정부의 입장은 일본의 환영을 받고 있다. 일본인들은 윤 정부가 거국적인 회의를 여러 차례 열어 일본이 원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이끌고 있다는 뉴스를 계속 접하고 있다. 네 차례 열린 민관협의회나 네 명이 모인 현인회의가 실제로는 거국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일본에 잘 전달되지 않고 있다. 일본인들의 이 같은 호의적 태도는 윤 정부에 대한 기시다 후미오 내각의 태도를 호의적으로 바꿔왔다.

징용 문제에 관한 윤 정부의 최신 입장이 한국보다 일본으로 먼저 흘러 들어가 그곳에서 더 빨리 보도되는 경향이 있는 것 역시 정부의 주된 관심 대상이 어느 쪽인지를 보여주는 자료가 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을 많이 의식한다는 점은 고문회의나 자문회의 같은 한국식 표현을 쓰지 않고 일본식 용어인 현인회의를 사용한 사실에서도 느낄 수 있다. 또 일본 언론에서 관민협의회로 번역되는 민관협의회라는 명칭 역시 한국인들의 최신 정서와는 부합하지 않아 보인다.

공개토론회 날짜를 1월 12일로 잡은 점도 음미해볼 만하다. 이날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13일의 직전이다.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해 북한·중국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자 하는 미국은 한일관계의 장애물인 식민지배 문제를 가급적 빨리 봉합하고 싶어 한다. <미국의 소리> 기사에 따르면, 작년 9월 25일 도쿄를 방문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그곳에서 "한일관계 개선 독려"를 했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는 지난 12월 1일 외신기자 설명회 때 한일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윤 대통령이 역사문제에 가로막히지 않고 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일 역사문제의 봉합을 촉구해온 람 이매뉴얼 주일미국대사도 지난 12월 중순에 박진 외교부 장관을 비공개로 방문했다.

이처럼 미국이 문제 봉합을 촉구하는 상황에서, 공개토론회가 열려 상황이 최종 단계에 접어든 직후에 기시다 일본 총리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 기시다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12일은 기시다 총리에게 '길일'이다.

공개토론회마저 형식적 절차 가능성
 
 2022년 5월 23일 일본을 방문한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도쿄 아카사카 영빈관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 연합뉴스/AP
비슷한 사례가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의 2006년 인터뷰로 뒤늦게 알려진 독도밀약 때도 있었다. 1950년대 후반에 아시아·아프리카·유럽에 대한 영향력 약화를 고심하던 미국은 1960년대 초반에 동북아에 대한 영향력을 보다 확실히 다지는 방법으로 세계 패권을 안정시키는 방향을 모색했다.

이런 차원에서 한미일 3각 체제를 구축하고자 미국은 한일의 신속한 화해를 촉구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1965년 6월 22일의 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 체결과 더불어 그해 1월 11일의 독도밀약이다.

나카소네 전 일본 총리와 인터뷰한 노 다니엘 전 홍콩과기대 교수의 <독도밀약>에 따르면, '독도를 자국 영토로 주장하는 것을 쌍방이 용인하되, 한국이 점유하는 현 상태를 유지한다'는 독도밀약이 서울에서 체결된 것은 그해 1월 11일 저녁이다.

그리고 합의 내용이 미일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에 가 있던 사토 에이사쿠 일본 총리에게 전달된 것은 12일 밤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재가가 나온 것은 13일 오전으로 예정된 미일정상회담 이전이었다. 이로써 사토 총리는 '문제를 처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린든 존슨 대통령 앞에 설 수 있었다.

독도밀약은 1965년 1월 11일 체결됐다. 한일협정은 6월에 체결된 뒤에도 논란을 빚다가 양국 국회 비준을 거쳐 12월 18일 발효됐다. 한일 위안부합의는 2015년 12월 28일 체결됐다.

한일관계의 주요 결과물들이 여러 차례 연말연시에 나온 것은 1월 20일에 취임한 미국 대통령이 새로운 연차를 맞기 전에 외교적 성과를 갖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이달 12일에 공개토론회가 열리면 기시다 일본 총리는 '최종 단계에 근접한 결과물'을 갖고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 바이든의 입지도 세워주고 자신의 외교적 역량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강제징용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상황은 협상의 내용은 물론이고 절차의 명칭 및 날짜까지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마지막 남은 공개토론회마저도 최종 마무리를 짓기 위한 형식적 절차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방식의 봉합으로 이 문제를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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