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는 대로 무섭게 일한 결과
[윤일희 기자]
▲ 회사가 사라졌다 - 폐업·해고에 맞선 여성노동, 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 (지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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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도 채무를 떼먹기 위해 일부러 부도를 내 회사를 정리하고, 바지 사장이라 불리는 새로운 사업주를 내세워 새로운 상호를 달고 전 회사가 하던 일을 계속했으니 말이다. 내 경우 떠난 후 회사가 폐업됐지만, 멀쩡히 다니던 회사가 그것도 노동조합을 만드니 폐업을 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이런 회사는 생각보다 많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면 들어갔지 노조 꼴은 못 본다'는 사업주는 대한민국 넘버 원 기업의 창업주만이 아니다. 무지막지한 장시간 노동시간에 화장실도 못 가며 뼈 빠지게 일했지만, 공휴일에 쉬려면 연차를 쓸 것을 강요받고 간식비에서 이내 점심 식대까지 뺏기자, 참고 참았던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저항했다.
회사의 대응은 폐업과 해고였다. 이 책은 성진 씨에스, 신영 프레시젼, 레이테크 코리아에서 해고당한 여성들이 폐업한 회사를 상대로 벌인 복직 투쟁기다.
위 세 회사는 마치 한 회사이기라도 한 듯 폐업하고 노동자를 해고하는 과정이 유사하다. 이들 공장의 노동자는 대부분 중년 여성이었다. 마땅히 취직하기 어려운 애매한 나이대의 여성들은 저임금 중노동을 시키는 공장으로 흘러들었다.
긍정과 근면으로 무장한 중년 여성 노동자들은 시키는 대로 무섭게 일했고, 사장이 몰라주고 무시해도 열심히 일하는 서로를 위로하고 지지하며 자신들이 해내는 노동에 자부심을 키웠다.
장시간 고된 노동도 불평 없이 일했지만, 사업주는 언제나 마치 그들 집의 가부장인 양 "내(사업주)가 너희들(노동자들) 먹여 살린다"며 생색을 냈다. 이들의 저임금 숙련노동으로 사업을 키웠으면서도, 사업주는 싼 임금이 곧 싼 노동 가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죽을 때까지 모를 것이다. "타인의 노동에 '단순, 반복, 비숙련'이라는 환상을 심어야" 저임금에 몰염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싸우는 여자들 기록팀 '또록'(림보, 시야, 하은, 희정)은 이 세 곳의 투쟁하는 노동자 여성들을 만났다. 세 곳 모두 폐업으로 "회사가 사라"지자, 모두들 '폐업은 답이 없다'며 자포자기했다. 하지만 이런 곤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여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싸우는 여자들'이다.
이들은 "여자 해고는 해고도 아니"라는 세상에 대들었다. 남자가 해고당하면 '그 집 어떡하지' 하면서도, 여자가 해고 당하면 '쉬라'는 세상에 자신들의 노동은 고작 반찬값을 벌러 나간 '알바'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이들이 싸운 과정을 몇 년도에 무슨 사건이 있었고 어떻게 싸웠다의 연대기로 요약하고 나면 뭔가 중요한 것이 결락된 느낌이다. 투쟁의 역사만큼이나 중요한 싸운 사람들의 감정이 스며들지 않기 때문이다. 채록은 이런 결락을 보충한다. 책은 당사자의 목소리로 당사자의 감정을 차곡차곡 담았다.
이들이 싸운 이야기를 듣노라면, 앞선 여자들의 싸움이 겹쳐지며 가슴이 들뜬다. 조선 최초의 고공농성 투쟁가 강주룡은 "끝까지 임금 감하를 취소치 않으면 나는 근로 대중을 대표하여 죽음을 명예로 알 뿐"이라며 을밀대에 올랐다.
그의 정신이 한진중공업 고공농성 투쟁가 김진숙에게로 이전되었던 것처럼, 우리 역사에는 끊임없이 싸워온 여자들이 있었다. 해방공간에서 가장 많은 노동쟁의를 일으켰던 노동자들은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의 투쟁은 화신백화점 쟁의로부터 동양방직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고, 이어 청계피복, 동일방직, 원풍모방, 반도상사, YH무역 농성에 이르기까지, 투쟁의 역사를 갱신하며 끊임없이 계승되었다. 폐업과 해고에 맞선 이들의 투쟁 또한 그 맥을 잇는 증거다.
필자는 무엇보다 이들이 투쟁을 통해 자신의 삶을 재해석하는 힘을 키워가는 과정이 인상 깊었다. 매일 반복되는 집회, 농성 등은 투쟁의 근육을 강화시켰다. 이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싸웠고, 자신의 이름값으로 치러야 하는 대가를 도망치지 않고 톡톡히 치렀다.
"노조 시작하고... 빼앗겨도 참았던 순간들이 불쌍해졌다"는 자각은 "농성장이 '야학'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알려준다. 다른 공장의 해고 노동자들과 연대하며 자신들의 피해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것을 알게 되고, 노동 현장에서의 피해뿐 아니라 자신들의 삶에 공기처럼 스며있던 차별을 인식하게 된다.
"예전하고 세상이 다르게 보"이자, "지나간 삶의 경험들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 투쟁은 "인생에서 처음 가져보는 '자기 시간'"을 통해 "내 인생에서 최고로 행복"한 경험이 되었다. 처절한 싸움이 가장 행복했다는 진실은 이들이 가족이나 사회 속에서 자신으로 정체되며 자존을 확인한 적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긴 투쟁에 지치는 날도 있지만, 농성장에서 같이 싸우는 동료들을 보면 이들과의 관계를 "최선을 다해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싸웠다." 투쟁은 모두의 싸움이지만 또 각자의 싸움이기도 하다. 아무도 자신의 투쟁을 이해해 주지 않는 외로움을 딛고 "싸우는 이유는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내가 여기서 조금이라도 견뎌주면 누군가에게 갈 어려움이 줄지 않을까" 하는 연대감이 싸우는 하루하루를 연장시켰다.
한편 이들의 싸움이 '아줌마-엄마 노동자'의 투쟁으로 젠더화되는 면을 고민한 '또록'팀 림보의 관점은 되새겨볼 만하다. 싸우는 여자들이면서 동시에 한 집의 엄마였던 이들은 엄마라는 정체성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싸울 때 '드세고 무서운 아줌마'로 보이는 이미지는 평생을 엄마로 살아온 이들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노동조합도 격한 이미지를 중화하기 위해 가족에게 헌신하는 엄마라는 표상을 이용하기도 했다. 드센 아줌마 노동자지만 알고 보면 누군가의 헌신적인 엄마라는 이미지는 노조에 대한 사람들의 뿌리 깊은 거부감을 얼마나 쉽게 무장해제 시키겠는가. 드세거나, 억세거나, 나쁘거나 한 아줌마들에게 제공될 유일한 면죄부가 모성이기 때문이다.
이 모성을 노동운동이 지지세력화하고 싶은 속내를 비난할 수만은 없지만, 그렇다고 '드센 아줌마 노동자=헌신적 엄마'라는 공식을 지속적으로 차용하는 것도 여성 노동 투쟁이라는 인장을 흐릿하게 할 수 있다.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엄마들의 눈물겨운 투쟁'이라는 타이틀이나, 이들이 자녀로부터 받는 애정과 지지의 증거를 전시하는 것은 결국, 엄마라는 사회적 승인이 이들의 싸우는 자격인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싸우는 여자의 정의는 희석될 수 없다. 누구의 엄마도 아닌 노동자로 싸우는 것이 앞선 여성노동자들과 이후의 여성노동자들의 노동 역사에 더 우뚝하게 기록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 번도 봄바람이 분 적 없는 노동 지대에 올해는 더욱 거센 바람이 몰아칠 기세다. 싸우는 여자들 모두 힘내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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