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대통령이 받은 선물
3대 개혁 성공하려면 협치는 필수
[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故 조세희 작가는 생전에 '낙원구 행복동'이 없는 세상에서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공(난쏘공)'이 읽히지 않는 소설이 되기를 기다렸다. 1978년에 출간됐으니 40년 넘게 그의 간절한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1970년대 산업화와 달동네 재개발이 배경이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눈비움 없이 풀어낸 담론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작가가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시험에 나와도 나는 빵점을 맞을 것이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도 행복동의 상황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다.
윤석열 대통령은 얼마 전 이 책을 선물 받았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난 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인사회에 참석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전했다. 이 대표는 "법 앞에 힘 있는 사람만 우선되는 사회가 아니라, 약한 자들을 먼저 지켜주는 '법의 정의'가 우선하는 시대를 열어달라"고 윤 대통령에게 당부했다. 내지에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고통을 알아주고 그 고통을 함께 져줄 사람이었다"는 '난쏘공' 등장인물 영수의 발언도 적었다.
법과 원칙을 앞세워 지난 화물연대 총파업을 매듭지은 윤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들 가운데는 '행복동'을 떠올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 대표가 협치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윤 대통령을 에둘러 비판한 것도 같은 취지다. 이 대표는 "민주적 제도를 통해 선출된 국가 수반에게, 통합과 협치 그리고 이를 위한 적극적 소통은 가장 중요한 소임"이라는 말을 건냈다.
화물연대 소속 운송 거부자들이 '쇠구슬' 사용을 비롯해 파업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며 협박 문자를 보낸 것은 처벌이 당연하다. 민생과 국가 경제를 볼모로 한 행동으로 수조원대 경제적 손실과 국민들에게 생활 불편을 초래한 점을 감안하면 그들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것도 쌩이질은 아니다.
국민들이 지지율로 화답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이 법치주의를 강조하며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는 등 "단호하게 대처하라"고 주문하는 과정에서 한 때 20%대까지 떨어졌던 지지율은 40%까지 넘어섰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노동계 투쟁에 대한 원칙적인 대응'을 유효 대목으로 해석하고 있다.
문제는 올해다. 노동과 연금, 교육 등 3대 개혁을 추진하려면 윤 대통령 본인이 말한 '초당적인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가장 우선'이라고 지목한 노동 개혁을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도 들어야한다. 근로기준법 등 법 개정을 위해서는 노동계의 협조 없이는 성공이 힘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노동계를 동반자로 인식해 테이블에 함께 앉아야한다.
무엇보다 야당과의 협치는 필수적이다. 올해를 3대 개혁의 원년으로 삼겠다면 관련 법안의 국회 의결이 필요한 만큼 민주당의 입법적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윤 대통령이 국가 핵심 산업으로 지명한 반도체만 하더라도 정부가 추진 중인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에 대해 야당 일각에선 벌써 수소와 디스플레이 등 확대된 전략 기술산업에 일괄 10%를 적용해야 한다고 새로운 방안을 내놓았다.
정부·여당에서는 원칙에 따른 국정운영으로 확보한 지지율을 기반해 야당을 압박하겠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더불어민주당이 지지율을 무시한 채 개혁에 소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결국 '발목잡기 프레임'이 아니겠냐는 대통령실 내 의견도 있다.
하지만 파업에서나 유효했던 강공 자세를 개혁 과정에서 쓰는 것은 경우가 다르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여야의 대립은 더 격렬해질 수밖에 없어 더 늦기 전에 협치로 돌아가야 한다. 국민들도 '초당적 합의'를 40% 지지율로 읽지는 않을 것이다. 내 아이들을 위해, 대통령이 인기를 포기하고서라도 하겠다는 개혁인데 자칫 반쪽짜리로 역사에 남을까 우려스럽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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