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게임 개발자 되고 싶어해요" "우리 엄마에게 물어보시면..."
게임 행사에서 강연을 할 때마다 한 번쯤은 꼭 학생 자녀를 데리고 온 어머님의 질문을 받게 된다. 마지막에 참여한 지스타에서도 그랬다.
“우리 애도 게임 쪽으로 가고 싶어 해요. 게임 만드는 게 좋대요. 특목고에 보내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한민국 학부모로서 너무나 현실적이고 당연한 질문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저 말고 차라리 저희 어머니 연락처를 드리는 게 낫겠어요.”
농담 삼아 엄마한테 전화 거는 시늉을 하니 막 웃으셨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진짜로 우리 엄마가 나대신 연단에 서는 것도 무척 의미 있겠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 엄마가 속을 새까맣게 태워가며 날 키운 경험만큼 생생한 이야기가 또 있을까.
처음 로스쿨을 휴학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엄마는 딱히 반대가 없으셨다. 밤낮으로 잠도 못 자고 고생하는 아들이 걱정되어 안쓰러운 마음이 크셨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점점 휴학 기간이 길어지고, 아들이 의외로 학업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자 조바심이 나셨다.
“게임 만드는 건 취미일 뿐이잖니. 변호사 자격증만 따고 하면 안 되겠니?”
알려진다면 전국의 게임업계와 변호사 지망생들을 통탄하게 만들 말이었지만 엄마의 입장에선 솔직한 말이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의 기대에 부응해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성적을 받던 아이가 그대로 꼭 검사가 되기 바라셨다. 변호사 시험을 1년 앞두고 갑자기 이상한 길로 빠진다고 생각하니 아쉽기도 하고 걱정도 되셨던 것이다.
그때쯤부터 엄마와 사이가 무척 나빠졌다. ‘죽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하련다’는 말에 기분이 상하셨다. 회사가 커져서 서울 신촌에 사무실을 얻을 때, 나도 따라 이사를 갔지만 엄마한테 주소나 이사 사실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던 즈음, 고모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주 뵙지는 못 했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나를 손자처럼 예뻐해 주시던 마음씨 따뜻하고 고마운 분이셨다. 장례식에 참석하는데, 당연히 엄마와 연락을 끊고 살던 터라 서로 다른 날에 장례식장에 찾아가게 되었다.
장례식장에 다녀온 뒤 며칠이 지나고,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는 고모할머니와 무척 각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묘소에 고모할머니를 누일 때까지도 눈물이 나지 않더랬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주변을 걷는데, 화려한 꽃과 장식이 가득한 작은 묘 하나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곳에는 나와 나이가 똑같은 아이가 잠들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하고 싶은 것 다 하라는 친구들의 편지와 선물이 놓여있었다.
엄마는 그때서야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평소 감성도 부족하고, 내 목표를 위해서라면 다른 것들은 걸리적거린다고 생각하던 나도 그 말을 듣고서야 이상하게 엄마의 감정이 이해가 되었다.
그 이후로 엄마와는 게임 얘기도 하고, 사업 얘기도 하며 친구처럼 잘 지낸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비척비척 홀로 걸어가는 아들을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은 어떨지 아직도 내가 이해할 길은 없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대단한 의지와 능력을 가진 것도 엄마였다.
우습게도 엄마는 기억 못하지만, 사실 내가 초등학생보다 어릴 때 처음 A4 용지에 괴발개발 쓴 소설을 자랑스럽게 엄마한테 보여줬을 때부터 엄마는 ‘예술가의 엄마’였다.
“이걸 네가 쓴 거야? 난 다른 책에서 작가가 쓴 줄 알았어. 작가해도 되겠네.”
모든 예술가의 엄마들을 응원한다.
이유원 반지하게임즈 대표 yuwon@banjihagames.com
이유원 1995년생. 초등학생 때부터 독학으로 인디게임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는 어느새 3년차 게임회사 대표가 되었다. 성균관대학교 글로벌리더학부를 졸업하고, '아류로 성공하느니 오리지널로 망하자'는 회사의 모토를 받들어 올해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자퇴했다. 게임 기획자로서 '허언증 소개팅!' '중고로운 평화나라' '서울 2033' 등 기존에 없던 소재와 규칙의 게임을 만드는 것을 즐긴다. NDC, G-STAR, 한국콘텐츠진흥원,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지역 고등학교 등 다양한 곳에서 인디게임 기획과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장르에 대해 강연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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