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6년차 막내 배우, 티파니 영의 도전 [쿠키인터뷰]
그룹 소녀시대 멤버 티파니 영은 지난해 막내가 됐다. 데뷔 16년 차 전설적 걸그룹 멤버가 막둥이라니. 비밀은 지난달 막 내린 JTBC ‘재벌집 막내아들’에 있다. 그는 한국에서 취업한 재미교포 경제 분석가 레이첼을 맡아 드라마 연기에 도전했다. 상대 배우는 송중기와 박혁권. 연기 경력만 도합 40년이 넘는 두 거목 사이에서 티파니 영은 초심으로 돌아갔다. “두 선배 배우가 저를 프로(전문가)로 대우해줘서 촬영 현장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어요.” 지난달 28일 서울 역삼동 한 카페에서 만난 티파니 영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레이첼은 등장부터 통통 튀었다. 붉은 립스틱과 반짝이는 진주목걸이로 멋을 낸 그는 상사 오세현(박혁권)을 다그치듯 영어로 말한다. “‘타이타닉’에 투자하겠다고요? 그것도 1000만 달러씩이나? 차라리 1000만 달러를 바닷물에 처박겠다고 하세요!” 배경은 1990년대. 여성은 검찰이든 재벌가든 고명 취급당하던 때. 레이첼은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유리천장에 가로막히지 않는 유일한 여성이었다. 아진자동차 인수, 새서울타운 개발 등 미라클 인베스트먼트가 굵직한 사업을 벌일 때마다 기초 공사를 도맡았다. 오세현과 진도준(송중기)은 이런 레이첼의 인격과 능력을 존중했다.
티파니 영은 “레이첼은 카리스마 넘치는 세현·도준과 동등하게 호흡할 수 있는 파트너”라며 “믿음과 존중을 바탕으로 상사들과 일하는 점이 좋았다”고 했다. 레이첼은 언변만큼이나 의상도 화려하다. 알록달록한 옷에 높은 구두, 반짝이는 장신구를 갑옷처럼 둘렀다. “패션은 그 시대 여성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뽐내는 무기”라는 제작진 판단에 따른 결과다. 티파니 영은 “촬영 내내 정장 한 벌만 입고 책상 앞에 앉을 각오도 했었다”면서 “내가 캐스팅되면서 레이첼이 패션 감각이 좋고 재벌들 사이에서도 꿀리지 않는 캐릭터로 완성됐다”고 설명했다.
티파니 영은 소녀시대로 바쁘게 활동하던 2012년부터 드라마 오디션을 봤다. 연기에 도전한 지 9년 만에 배역을 따낸 셈이다. 주연으로 성장한 멤버들을 보며 조바심이 들었을 법도 한데, 티파니 영은 오히려 “타이밍이 좋았다”고 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음악과 연기를 새로 배운 경험이 자신을 성장시켰다는 설명이다. 2021년 뮤지컬 ‘시카고’에서 록시를 연기하며 캐릭터를 파고드는 법도 배웠다. 그는 대본을 악보처럼 봤다. “촬영 현장에서 배우는 악기 같은 존재예요. 대본의 빈틈에 어떤 의도가 숨었는지 파헤치면서요. 공연에서 관객과 에너지를 나누듯 시청자와 호흡하려 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가요계 정상에 서봤지만, 티파니 영은 낮은 곳으로 내려가길 겁내지 않았다. 2016년 SM엔터테인먼트를 떠나 미국으로 돌아갈 때도 그랬다. 그는 “20대가 된 후 ‘왜’라는 질문이 생겼다”고 돌아봤다. 자작곡 ‘낫 바비’(Not Barbie) 가사처럼, 인형이 되길 거부하고 자의식을 드러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자신이 왜 가수가 되려고 했는지 탐구하던 티파니 영은 “내가 예술로부터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답을 길어 올렸다. 그는 “내가 원하는 이야기와 메시지는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기르고 싶어 미국에 갔다”면서 “아티스트가 되려는 이유와 뿌리를 찾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고 털어놨다.
그래서일까. 티파니 영은 소녀시대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가 청년들의 주제가로 자리매김한 현상이 “데뷔 후 가장 뿌듯한 일”이라고 했다. 후배 가수들에겐 “활동하다 보면 길을 잃거나 더는 히트곡을 내지 못할 것 같은 시기가 온다. 그럴 땐 ‘이번 활동이 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에 집중하면 새로운 답이 보인다”는 조언을 남겼다. 음악 활동과 뮤지컬에 이어 드라마까지 섭렵한 그는 영화 작업에도 관심이 많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을 유난히 좋아해 그가 연출한 영화 ‘카지노’ 속 진저 멕케나(샤론 스톤) 같은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제겐 이야기와 메시지가 매우 중요해요. 미국에서 보낸 5년 덕분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게 됐죠. 레이첼을 연기하면서 아무리 작은 목소리라도 일단 소리를 내는 게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얻었어요. 지금도 제 주변의 고민을 찾아 음악이나 캐릭터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30대 여성으로서 내가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지 계속 찾아가고 있어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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