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이 따뜻한 날씨에 졌다…밸브 잠갔지만 천연가스값 급락
유럽행 천연가스관 밸브를 움켜쥐고 추운 겨울만을 기다렸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패착에 빠졌다. 유럽에서 겨울철 이상고온 현상이 발생해 가스 수요가 줄면서 당초 우려했던 유럽의 에너지 대란이 일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3일(현지시간) 이같은 소식을 전하며 "유럽의 예상 밖 따뜻한 겨울은 기후위기가 낳은 악재이지만, 진짜 패자는 푸틴 대통령"이라고 전했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의 기습 공격으로 러시아군의 대규모 병력 피해가 잇따르는 와중에 날씨마저도 푸틴을 돕지 않는 형국인 셈이다.
올겨울 지구촌은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북미에선 폭설과 한파로 사망자가 속출한 반면, 유럽에선 새해 첫날 폴란드·네덜란드 등 최소 8개국이 역대 1월 최고 기온을 기록하며 '봄 날씨'를 보였다. 북미 대륙의 경우 지구온난화로 차가운 북극기류가 내려오면서 이례적인 강추위를 일으켰고, 유럽의 경우 아프리카에서 따뜻한 기단이 북상하면서 이상고온을 일으켰다는 게 영국 기상청의 분석이다.
실제 지난 1일 리히텐슈타인의 수도 바두츠는 20도까지 올랐고, 체코의 야보르니크는 19.6도, 폴란드의 요드워브니크는 19도를 기록했다. 해발 2000m의 알프스 산맥에서도 눈이 녹으면서 스위스·프랑스 등지의 스키장은 개장 휴업 상태다. 블룸버그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번 연말연시 유럽 북서부 지역의 기온이 장기평균치보다 8.5도 높을 것으로 예측된다"고 전했다.
온화한 겨울 날씨에 유럽 각국의 난방 수요가 줄어들면서 푸틴의 '에너지 무기화' 전략도 무기력해진 모습이다. 지난해 말부터 하락세를 이어가던 천연가스 가격은 오히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수준보다 떨어진 상황이다. 지난 2일 유럽의 대표적인 천연가스 가격 지표인 네덜란드 TTF 허브의 2월물 선물가격은 메가와트시(MWh)당 약 76유로였다.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직전 가격인 MWh당 약 88유로에 훨씬 못 미친다.
앞서 러시아가 서방의 경제제재에 대적하기 위해 유럽행 가스관 공급을 본격적으로 중단한 지난해 8월과는 상황이 딴판이다. 당시엔 천연가스 가격이 MWh당 약 350유로까지 치솟았다. 이번 전쟁 전까지 유럽 국가들은 천연가스 소비량의 40% 정도를 러시아산에 의존하고 있었다.
푸틴의 전략을 무너뜨린 건 이상기후만이 아니다. 러시아의 자원 무기화가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유럽 주요국들이 중동·아프리카 등지서 액화천연가스(LNG) 확보에 사활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대체할 새로운 공급원을 확보하고, 각국의 가스 비축량이 80% 이상을 유지하면서 천연가스 시장은 당분간 하락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3일 전했다.
설상가상 우크라이나 전장의 러시아군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습이다. 특히 지난 1일 밤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군 임시 훈련소 폭격은 러시아 측에 큰 충격을 줬다. 우크라이나군의 다연장로켓인 고속기동포병로켓체계(HIMARS·하이마스) 4발이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州) 마키이우카의 훈련소를 타격하면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당초 러시아군이 밝힌 사망자는 63명이었으나, 3일 현재 89명으로 늘었다. 우크라이나군은 실제 사망자가 수백 명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에 숨진 러시아 신병들은 지난해 9월 푸틴이 발동한 부분 동원령으로 징집된 인원이었다고 BBC는 전했다.
다른 격전지에서도 러시아군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는 "지난달 31일 남부 헤르손의 출라키우카 지역에서도 러시아군 500명이 죽거나 다쳤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전쟁 발발 이후 지난 2일까지 약 10만 7440명의 러시아군 장병이 전사한 것으로 집계했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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