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운 칼럼] 비례대표만 노린 위성정당 출현 차단해야

전석운 2023. 1. 5.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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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제안 중대선거구제
민주당 의원들도 많이 발의

승자독식 등 정치 양극화극복
문제의식은 외견상 같아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설계도 운용도 실패한 실험

거대 양당의 탐욕과 꼼수로
위성정당 만든 과거 반성하고

유권자들의 선택과 지지가
올바로 반영된 선거제 내놔야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 벽두에 던진 중대선거구제 도입 제안이 정치권의 핫 이슈로 떠올랐다. 그런데 지난해 9월부터 본격 가동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접수된 선거제 개편안들을 보면 중대선거구제를 지지하는 내용이 가장 많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대표발의한 선거법 개정안들은 대부분 중대선거구제 도입이 핵심이다. 승자독식·지역주의 심화 등 정치 양극화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현행 소선거구제를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윤 대통령이나 중대선거구제를 지지하는 민주당 의원들이나 외견상 같다. 오히려 국민의힘 의원들이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신중한 반응들이다. 영남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은 중대선거구제를 기득권의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사실 호남이든 수도권이든 지역구 기반이 탄탄한 현역 의원들은 굳이 중대선거구제를 반길 이유가 없다. 그런 점에서 중대선거구제 도입의 걸림돌은 현역의원들의 저항이다. 그러나 중대선거구제로 전환하는 것이 정치 발전이라는 여론이 형성되면 한 세대가 넘도록 고착화된 소선거구제가 일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소선거구제는 1987년 민주화의 산물이다. 대통령 직선제와 더불어 선거구별로 1명씩 국회의원을 뽑는 소선거구제가 환영받았다. 그러나 이 제도가 시행된 지 35년이 흐르면서 소선거구제의 폐단이 부각됐다. 선거구별 1위 득표자만 국회에 진입하다 보니 2위 이하 득표자들을 지지한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대표를 가질 수 없었다. 2020년 4월에 치러진 21대 총선만 하더라도 투표자의 43.7%(1256만7432명)가 던진 표는 사표(死票)가 되고 말았다. 소선거구제 역사가 깊어질수록 거대 정당들의 카르텔은 공고해졌지만 그만큼 정치 불신이 쌓였다.

준연동형비례대표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이 제도는 입법 과정에서부터 변질됐으며, 운용 과정에서 편법과 꼼수가 난무했다. 당초 취지는 유권자들의 선택과 지지를 충실히 반영하기 위해 정당별 득표율과 의석수를 연동해서 가급적 일치시키자는 것이었다. 가령 특정 정당이 전국 득표율 10%를 기록했다면 전체 의석 수 300석 중 30석을 갖도록 배려하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국회의원 정원에서 지역구 의석 수와 비례대표 의석 수를 동일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2019년 국회에서 개정된 선거법은 비례대표 의석 수를 지역구 의석 수(253석)의 5분의 1도 되지 않는 47석으로 축소했다. 그나마 득표율에 연동되는 의석 수 배분은 30석으로 제한했다. 태생부터 불완전하고 미완성이었다. 비례대표제 앞에 준연동형이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이다. 그래도 전국 득표율 3%만 얻으면 비례대표 의석을 배정받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창당 러시가 일었다. 이로 인해 역대 최다인 35개 정당이 중앙선관위에 등록했고, 인쇄할 정당 이름이 많다 보니 투표용지 길이가 48.1㎝에 달했다.

그러나 개표 결과 국회를 양분하는 거대 정당으로 표가 쏠리는 현상은 더 심해졌다. 민주당과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이 비례대표만 공천하는 위성정당들을 내세우는 꼼수를 부렸기 때문이다.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등에서나 등장했던 편법을 모방한 것이다. 신설 정당들이 난무하는 와중에도 의석 수의 94.3%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그리고 그 위성정당들이 싹쓸이했다. 지역주의 현상도 심해졌다. 국민의힘은 영남에서 56%의 득표율로 86%의 의석을 차지했고, 민주당은 호남에서 69%의 득표율로 96%의 의석을 가져갔다. 위성정당 창당의 꼼수를 먼저 부린 건 국민의힘이었지만 제도를 희화화한 건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이 반칙이라며 비난했던 민주당에도 위성정당을 표방하는 정당이 2개나 생겼다. 유권자를 우롱하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비례대표 후보만 내세우는 위성정당의 출현을 차단하는 내용으로 선거법을 고쳐야 한다.

현재 정개특위에서 논의 중인 중대선거구제 도입안들은 대부분 비례대표제 유지를 전제로 하고 있다. 비례대표 제를 유지하려면 지금의 어정쩡한 준연동형은 폐지하든지, 완전 연동형으로 바꾸는 게 옳다. 무엇보다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거대 양당이 또 다른 꼼수를 부린다면 정치개혁은 헛말에 그칠 것이다. 정치권은 진심으로 유권자들의 선택을 두려워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전석운 논설위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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