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리스크, 오너 리스크 [김현기의 시시각각]
■
「 정치는 시스템 부재에 당수 리스크
기업은 친기업 기류에 경영권 승계
국민 이끌 리더가 희망 아닌 리스크
」
#1 불과 얼마 전까지 일본에서 선풍적 인기를 구가한 대표적 인물은 르노-닛산 자동차의 리더, 카를로스 곤 회장이었다.
그의 별명은 '코스트 킬러(cost killer)'. 닛산 전체 근로자의 15%, 2만명을 정리해고했다. 일본 내 5개 공장을 폐쇄하고 대리점도 300개 이상 없앴다. 심지어 회사 중역들에게도 필기구를 자비로 사서 쓰게 했다. 당연히 회사 재무구조는 나아졌다.
하지만 그 한편에서 곤 회장 본인은 매년 274억원을 챙겼다. 절정은 2014년 3월 베르사유 궁전을 통째 빌려 개최한 자신의 60살 생일잔치. 전 세계 셀럽과 미슐랭 셰프, 친구 150명을 불러 초호화 가면무도회를 했다. 이날 하루에 쓴 돈만 8억원. 그것도 개인 재산이 아닌 회사 공금을 썼다.
생일잔치를 '르노-닛산 제휴 15주년 파티'로 둔갑시켰다. 하지만 르노, 닛산 관계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프랑스 속담에 "물고기는 머리부터 썩는다"고 했다. '리더 리스크'는 곤 회장 개인, 회사 닛산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곤은 국제수배범으로, 닛산은 2류 회사로 전락했다.
#2 뉴욕타임스가 최근에 보도한 '트위터 사옥의 화장실 휴지' 기사는 충격적이었다.
두 달 전 트위터를 인수한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바로 50%의 정규직 직원을 해고했다. 샌프란시스코의 기존 사옥 4개 층을 폐쇄하고 극한의 비용절감에 나섰다. 심지어 청소·경비를 포함한 각종 용역 계약까지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본사 건물에는 직원들이 먹고 남긴 음식물 악취가 진동했다. 더러워진 화장실에는 휴지마저 사라졌다. 그래서 트위터 직원들이 집에서 화장실용 휴지를 챙겨 출근하는 처지가 됐다.
닥치는 대로 해고를 하다 보니 필수요원까지 사라져 이제 와 "다시 트위터로 돌아와 달라"고 하소연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인력은 반 토막 났는데, 주말 포함 주 80시간 이상 고강도 장시간 업무를 시키니 살아남은 직원들마저 썰물같이 빠져나간다.
아무리 오너가 개인기에 능하고, 세계 최고 부자라도 이런 독재적 리더십으로는 버틸 수 없는 세상이다. 지난해 테슬라의 주가 하락률 65%는 '오너 리스크'를 상징한다.
#3 '리더 리스크' '오너 리스크'는 우리 정치, 기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원칙과 상식의 리더십으로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보면 권위에 빠져든 역대 대통령들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의사결정 구조가 시스템이 아닌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즉흥적 판단에 의존한다.
그러다 보니 북한의 무인기에 상공이 뚫린 뒤 나온 첫마디가 "전 정권 때문"이 되고, 미국과의 핵 연습 논의를 둘러싸고 윤 대통령과 바이든 미 대통령이 어긋난 메시지를 낸다. 국민 입장에선 "지금 대통령이 누구지?" "누구 말이 맞지?"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오랜 정부 논의 끝에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반도체 세제지원 8%안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불과 나흘 만에 15%로 뒤바뀌어 추진된다. 대통령이 정부의 권위를 부인한 셈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나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마찬가지다. 온갖 편법을 동원해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당사자가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가 절대 후퇴해선 안 된다"고 하고, 사법처리 직전의 야당 당수가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국민을 위해 싸우겠다"고 한다. 툭 하면 국민, 국민 하는데 듣는 국민은 짜증만 난다.
대기업들도 현 정부의 '친 기업' 분위기를 틈타 3, 4세 승계작업에 박차를 가한다.
대기업 오너들은 자식들에게 빛과 같은 속도의 초고속승진을 시킨다. 실적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좋게 하기 위해"라 명분을 댄다. '오너 리스크'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비정상이 정상이 돼 버렸다.
우리를 이끌고 희망을 줘야 할 나라의 리더들의 사고 회로가 오히려 우리에게 가장 큰 리스크가 돼 가고 있다.
그러니 어쩌나. 올 한 해 우리 국민 각자가 정신줄 꽉 잡고 살아가는 수밖에.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kim.hyun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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