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범이 키운 검사장, 치안을 망쳤다
이상주의 검사
2020년 6월 당시 민주당 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가 유세장에서 말했다. “미국은 길거리에 더 많은 경찰을 둬야 안전해진다고 착각해 왔다. 이젠 바꿔야 할 때다.” 경찰 예산을 깎아 커뮤니티 지원 사업으로 돌리겠다는 공약이다. BLM(Black Lives Matter, 흑인 목숨도 소중) 시위대 구호였던 ‘경찰 예산을 삭감하라(defund the police)’에 호응한 것이다. 앞서 그해 5월 백인 경찰 무릎에 목 눌려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그 연장선이다.
민주당 우세 지역에선 실제로 경찰 예산을 깎거나, 조직을 축소했다. LA 코리아타운을 관장하는 올림픽경찰서도 폐지될 뻔했다. 치안 악화를 걱정한 한인 정치인, 단체장 그리고 언론이 한목소리로 막은 끝에 겨우 살렸다.
그러는 동안 범죄가 들끓었다. ‘범죄 스파이크(crime spike)’라는 말이 언론에 자주 나왔다. 경찰과 흑인 시위대가 충돌한 지역 이름을 딴 ‘퍼거슨 효과’와 ‘미니애폴리스 효과’ 같은 신조어도 등장했다. ‘퍼거슨 효과’는 경찰이 여론의 비난을 의식해 몸을 사리는 것을 말한다. 또 ‘미니애폴리스 효과’는 경찰 활동의 위축이 높은 범죄율로 이어진다는 범죄학자들의 가설이다. 흑인들이 상대적으로 더 희생당했다. 2021년 총기로 살해당한 흑인은 10만 명당 55명이었다. 백인은 3명, 히스패닉은 10명 이었다. 흑인 생명을 소중히 하자며 추진한 경찰 축소가 되레 흑인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느슨한 총기 규제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었지만, 사건이 특정 기간에 집중된 원인을 설명하진 못했다.
역설적 현상 앞에서 경찰 축소를 외치는 목소리는 쑥 들어갔다. 해리스 부통령 역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한 입으로 두말한다고 비난할 일이 아니다. 이제라도 현실을 알았으니 그나마 다행 아닌가.
급진적 이상주의를 실천하려다 완전히 실패한 곳이 샌프란시스코다. 주인공은 체사 부딘(42) 전 검사장이다. 2020년 검사장에 당선했을 때 그의 공약은 수감자 감축이었다. 범법자를 가둬두는 교정 행정은 예산 낭비이며, 범죄를 막는 효과도 떨어진다고 봤다. 웬만한 범죄는 기소하지도 않았다. 캘리포니아에선 이미 2014년부터 한 번에 950달러 미만의 절도는 경범으로 취급해 왔다. 그러니 경찰도 상점털이를 굳이 잡으려 애쓰지 않는다.
그는 공약을 지켰지만, 거리는 더 불안해졌다. 폭력배가 거리를 활보하고 마약 중독자들이 행인들에게 시비를 건다. 심지어 ‘범죄를 합법화하라(Legalize Crime)’는 구호도 등장했다. 참다못한 주민들이 2022년 7월 리콜 선거로 그를 내쫓았다.
부딘의 부모는 FBI가 규정한 자생적 테러리스트다. 부친 데이비드 길버트(78)는 테러단체 ‘웨더 언더그라운드’ 조직원이었다. 모친 캐시 부딘도 남편과 함께 범행하다 붙잡혀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때 갓난아기 부딘을 데려다 키운 인물이 ‘웨더 언더그라운드’ 창립 멤버 빌 아이어스(78)였다. 아이어스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후원자이자 멘토이기도 했다. 테러리스트 출신이 제도권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뚫었다고나 할까.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면서 그 상부로 진입하려는 시도를 어떻게 봐야 하나. 1960~70년대 미국 좌파에 사상적 세례를 준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기성 제도 내부로 들어가 그 제도를 뒤집어야 한다고. 1960년대 독일 학생운동의 아이콘 루디 두치케가 표방한 ‘제도권으로의 대장정’과 같은 의미다. 비슷한 시기 테러 활동을 하다 제도권에 눈 돌린 아이어스의 행보가 이와 겹쳐 보인다면, 과민 반응일까.
남윤호 미주중앙일보 대표 yh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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