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브리핑] 2017 MBC 잔혹사 ③-정상화위원회의 '칼춤'

황기현 2023. 1. 4.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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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전 MBC 사장 부임 직후 'MBC정상화위원회' 출범…262명 조사, 12명 징계 요구
'언론노조' 소속 징계자 단 한 명도 없어…허무호 전 위원장 5차례 조사 "김장겸 지시" 답변 요구
최승호 사장 재임기간 19명 해고…정상화위원회 강압조사, 사 측이 대부분의 소송전서 패배하는 원인
감사국 '이메일 불법사찰 사건'도 큰 논란…아직까지도 책임자 처벌 이뤄지지 않고 있어
MBC노동조합(제3노조)가 2022년 연말에 펴낸 '2017 MBC 잔혹사'.ⓒ MBC노동조합(제3노조)

극단으로 무너진 심신을 부둥켜 안고 MBC를 떠난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MBC정상화위원회' 악몽을 꾼다고 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지키려고 몸부림 칠 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된다고 했던가. 그 마지막 자존감마저 세치혀로 매질당하던 그날의 강압과 모멸감은 오늘 밤에도 숱한 이들을 사나운 꿈에 시달리게 한다. -편집자主-


MBC노동조합(제3노조)이 펴낸 '2017 MBC 잔혹사'를 보면, 'MBC정상화위원회'(이하 정상화위원회)는 최승호 전 MBC 사장이 부임한 직후인 2018년 1월 19일 출범했고, 2017년 파업을 주도한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 MBC본부가 중심이 됐다. 당시 정형일 보도본부장을 비롯한 3명이 주요 조사를 담당했다.


정상화위원회는 2008년 2월부터 김장겸 전 MBC 사장이 해임된 2017년 11월까지 사내에서 벌어진 ▲방송 독립성 침해 ▲사실의 은폐·왜곡 ▲부당한 업무지시 ▲방송 강령 위반 ▲부당 해고 및 징계 등의 인과 관계를 규명하겠다고 공표했다. 그리고 모두 262명을 조사해 12명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12명 가운데 8명은 MBC노동조합과 MBC공정방송노조 소속이었다. 비노조원은 4명이었으며, 언론노조 소속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정상화위원회의 주 조사 대상자는 역시 언론노조 주도의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기자들이었다. 조사 과정은 강압적이었다고 한다. 조사 방식에 불만을 제기하거나 조사에 불응하면 대기발령 조치가 내려졌고, 지정된 장소에서 대기하지 않으면 무단결근 처리를 하겠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허무호 전 MBC노동조합 위원장도 조사 대상에 올랐다. 정상화위원회 조사위원들은 허 전 위원장이 2015년 3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보도국 사회2부장으로 재직하며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의도적으로 흠집 내는 기사를 보도했는지 ▲그 과정에서 취재기자에게 객관성 없는 특정인을 인터뷰하도록 강요한 사실이 있는지 ▲편향적 집회 시위를 보도하는 것을 주도한 사실이 있는지 등을 5차례에 걸쳐 조사했다.


조사위원들은 특히, 일명 '보수 편향적' 집회·시위 보도와 관련해 당시 보도본부장이었던 김 전 사장의 지시를 받았는지 집중 추궁했다. 허 전 위원장이 "내 판단에 따른 보도였다"고 답변했음에도 이들은 김 전 사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취지의 답변을 계속해서 요구했다. 답변하지 않을 경우 혼자 모든 책임을 진다거나 수사 의뢰·중징계가 이뤄질 수 있다고 겁박했다. 이러한 사실은 2022년 1월 26일 자 서울고등법원 제1민사부 판결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22년 6월 16일, 대법원 제2부는 허 전 위원장이 MBC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관련해 "MBC는 원고에게 1000만 원의 위자료와 법정이자를 지급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 재판부는 "조사 과정에서 징계처분 또는 수사 의뢰를 도구로 비위행위를 자백하도록 강요받음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격권,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받았다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피고(MBC정상화위원회)는 원고(허무호)에게 정신적 고통으로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 밖에도 도쿄 특파원으로 근무했던 전 모 기자와 정치부 국회팀 반장이었던 정 모 기자 등도 수난을 겪었다. 전 기자는 추간판이 돌출되는 증상(허리디스크)이 심해져 병가와 휴가를 신청, 귀국일을 늦춰줄 것을 회사 측에 요청했지만 처절하게 묵살당했고, 정 기자는 '정치적 편향성'에 대해 집중 추궁을 받으며 이미 짜여진 답변을 강요받았다. 조사위원들은 "뭐가 문제냐"에 대한 정 기자의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하면서 "문제가 있다"고 단정한 뒤 "문제가 있는 이 리포트를 누가 시켰냐"고 되물었다.


2022년 11월, 허무호 전 MBC노동조합 위원장(사진)외 3인이 최승호 전 MBC 사장과 박성제 현 MBC 사장 등 5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공동강요) 혐의로 서울 마포경찰서에 고소했다. 피고인 5명은 MBC정상화위원회라는 임의조직을 만들어 고소인들을 조사하고 부당한 징계절차를 진행하며 출석과 조사를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해고와 징계도 끊이지 않았다. 최승호 전 사장 재임 기간 MBC는 무려 19명의 직원이 해고됐고 '정직 6개월' 등 중징계가 이어졌다. 징계 대상자 상당수는 언론노조 주도 총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던 직원들이었다.


전 시사제작국 부국장이었던 박상후 기자는 세월호 사건 당시 전국부장이었다는 이유로 정상화위원회의 조사를 받아야 했다. 이른바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 때문이었는데, 위원회는 '전원 구조 오보'의 책임이 당시 전국부장이었던 박상후 기자에게 있다고 몰아부쳤다. 박 기자는 '전원 구조 오보'를 낸 것은 노모 기자를 비롯한 언론노조원들이라고 반박하고, 세월호 참사에서 많은 인명 피해가 난 것은 '전원 구조 오보'로 골든타임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강변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자 위원회는 박 기자 관련 조사 사항에 '박원순 서울시장 관련 보도'라는 항목을 추가했고 결국, 박 기자는 3개월 대기발령 후 2018년 6월 해고됐다.


2018년 4월에는 언론노조를 향해 비판적인 글을 쓰며 회사 경영진의 입장을 대변한 데 대한 보복으로 홍보국 정책홍보부장이었던 김 모 기자가 해고됐다. 2018년 5월에는 이른바 '사내 블랙리스트 작성'에 개입한 의혹이 있다며 '정직 6개월' 징계 처분을 받았던 신동호 전 아나운서 국장이 법인카드 사용 실태 특별 감사로 추가로 정직 6개월 징계를 받았고, 신 전 국장은 결국 회사를 떠나야 했다.


정상화위원회의 강압적 조사는 이후 MBC 사 측이 거의 대부분의 소송전에서 패배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서울고등법원은 2019년 12월 4일 정상화위원회 활동에 대해 "채무자(정상화위원회)가 징계 내지 형사처벌의 염려가 있는 채권자들에 대해 그 자유의사에 반해 출석·답변의 의무를 부과하거나, 불이행 시 정상화위원회 사무실로 대기발령을 하고, 이 사건 규정 제6조 제2항에 의하여 징계요구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위 각 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채권자들의 신체의 자유 등을 과도하게 제한·침해하는 것으로서 근로기준법 제7조 등의 취지에 반한다"라고 판결했다.


2022년 8월 8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1민사부는 MBC 기자 6명이 MBC 사 측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MBC)는 원고들이 청구한 6000만 원 중 54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화해권고를 결정했다. 앞서 재판부는 강명일 전 MBC 도쿄특파원이 MBC를 상대로 제기했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언급하면서 "확정된 관련 사건의 판결 내용과 두 사건 유사성, 원고들의 전보처분 경과와 대기발령 기간의 유무 또는 장단, 그 외에 현재까지 분쟁 및 변론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다"라고 판시했다.


재판부가 거론한 강명일 기자는 2017년 8월 도쿄특파원으로 발령받아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최승호 사장 부임 직후인 2017년 12월 19일, MBC 본사로부터 'MBC 특파원 12명 전원 소환조치'에 따른 소환 통보를 받고 이듬해 3월 5일 복귀했다. 복귀 후 '뉴스데이터팀'에서 자료 정리 업무를 하다 라디오뉴스 중계 PD로 전보된 뒤 MBC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 1심과 2심에서 모두 이겨 5786만 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미러맨' 동상.ⓒ 연합뉴스

정상화위원회와 보조를 맞춘 감사국의 '이메일 불법사찰 사건' 역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최 전 사장 취임 다음 해인 2018년 상반기, MBC 경영진이 언론노조 주도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소속 직원들의 이메일 내용을 들여다본 것이다. 감사국은 '노조', '좌파' 같은 키워드를 이용, 이러한 단어가 검색되는 이들의 이메일을 특정해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커지자 MBC 감사국은 오히려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는 적법한 방법으로 이메일을 열람했다"며 "파업 불참자를 감사한다거나, 정당한 감사행위를 음해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사규에 따라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이후 'MBC 언론인 불법사찰 피해자 모임'과 MBC노동조합은 최 전 사장과 감사국 직원 등 9명을 통신비밀보호법 제16조 제1항(전기통신불법감청) 위반 혐의로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고발했으나 아직까지도 책임자 처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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