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보수 20명의 반란…공화당 내분, 美하원 멈춰세웠다
폴리티코 "스리 스트라이크, 아웃은 아냐"
“하원의장이 선출되지 않았습니다.”
미국 118대 의회가 출범한 3일(현지시간) 의회 서기의 외침이 세 차례 의사당에 울려 퍼졌다. 하원은 이날 의장 선거에서 다수당인 공화당 내부 분열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1차 투표에서 과반(218표)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2차, 3차 투표까지 진행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첫 투표에서 하원의장 선출이 무산된 건 1923년 이후 100년 만이다. 앞으로 임기 2년과 2024년 대선까지 공화당 리더십의 혼란을 보여주는 예고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 11월 중간선거에서 435석 가운데 222석을 얻은 공화당은 이탈표가 없는 한 민주당(213석 승리, 1명 사망)과 표 대결에서 하원의장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공화당 주류가 내세운 하원의장 후보는 케빈 매카시 대표(캘리포니아). 이에 반해 소수파인 극보수 진영은 1차 투표에서 앤디 빅스 하원의원(애리조나)을 추천했고 2, 3차 투표에선 짐 조던 하원의원(오하이오)을 밀었다. 민주당은 이날 원내대표로 선출한 하킴 제프리스 하원의원(뉴욕)을 단독 후보로 냈다. 매카시는 1, 2차에서 203표를 얻었고, 3차에선 1표가 추가로 이탈해 202표를 얻는 데 그쳤다. 민주당이 일치단결해 세번 모두 밀어준 제프리스 후보(212표)에게 숫자로는 뒤지는 ‘굴욕’을 안았다.
공화당이 다수당 탈환을 축하해야 할 날에 100년 만에 기록을 쓴 건 공화당 내 중도파와 극보수 진영 간 충돌에서 비롯됐다. 극보수 진영 20명이 ‘반란’을 일으킨 데는 매카시 대표가 민주당과 조 바이든 대통령에 충분히 강경하지 않고, 정치적 파워에만 연연하는 기득권 정치인이라는 비판이 깔렸다. 매트 게이츠 하원의원(플로리다)은 매카시에 반대하는 연설에서 “늪(swamp)의 물을 빼내고 싶다면 가장 큰 악어에게 그 일을 맡길 순 없다”고 말했다. 늪(swamp)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워싱턴 기득권층을 비판할 때 쓰는 용어로, 고인 물이란 의미다.
그동안 극보수주의자 최소 5명은 공개적으로 매카시에 대한 지지를 유보했다. 그간 조용하던 15명이 이날 추가로 속내를 드러냈다. 이날 오전 열린 공화당 원내 회의에서 고성이 오가고 욕설도 나오는 등 물밑 협상에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어느 정도 혼돈은 예상됐다.
반대파 20명 가운데 18명은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바이든에게 승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선거 부정론자(election denier)’라고 워싱턴포스트는 분석했다. 하지만 정작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매카시 대표를 하원의장으로 공개 지지했다. ‘하이힐 신은 트럼프’로 불리는 마조리 그린 테일러 하원의원(조지아)도 세 차례 모두 매카시를 뽑았다.
극보수 진영 의원들이 반기를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5년 당내 온건파인 존 베이너 하원의장을 축출하고 2018년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재선 출마를 포기하도록 한 전력이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하원은 4일 정오에 다시 모여 4차 투표를 시작할 예정이다. 의회 관례에 따라 과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투표는 계속 진행된다. 1차 투표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한 1923년에는 9차 투표 끝에 결론이 났다. 남북전쟁 직전인 1855년에는 두 달간 133번 투표 끝에 하원의장을 선출했다.
이번에도 투표가 상당 기간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 매카시 대표는 끝까지 가겠다고 공언하고, 극보수주의 진영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매카시 후보는 이날 2차 투표와 3차 투표 사이에 기자들을 만나 “나는 우리가 이길 때까지 할 것”이라며 “시간이 좀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 진영도 “우리는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밥 굿 하원의원ㆍ버지니아), “우리는 눈을 깜빡이지 않을 것”(칩 로이 하원의원ㆍ텍사스)이라며 강경한 입장이다. 이번 하원의장 선거는 겁먹고 먼저 피하는 사람이 지는 “치킨 게임이 됐다”고 CNN은 논평했다.
협상 가능성도 남아 있다. 매카시 측은 화해를 위해 반대파 20명 중 일부와 대화를 시작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반란파가 밀었던 빅스 하원의원이 10표, 조던 하원의원이 20표밖에 얻지 못한 것을 고려하면 아직 매카시 대표가 가장 유력한 후보다. 폴리티코는 "매카시가 스리 스트라이크를 받았지만, 아직 아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교착상태가 풀리지 않고 의회 마비 사태가 장기화하면 제3 후보를 고려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조던 하원의원이나 매카시 최측근인 스티브 스캘리스 하원의원(루이지애나)을 후보로 추대할 가능성이 있다. 조던 하원의원은 2차 투표 직전 "케빈 매카시가 우리를 이끌 적임자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그를 중심으로 결집해야 한다”고 공개 지지 발언을 하고. 실제로 세 차례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조던 발언 직후 극보수 진영에서 조던을 후보로 제청하고 19표를 몰아주는 드라마틱한 장면이 연출됐다. BBC는 "100년간 보지 못한 정치 드라마가 펼쳐졌다"고 전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협력을 모색할 가능성도 주목된다. 민주당 내 온건파 표를 매카시가 가져오거나, 공화당 내 온건파가 제프리스에게 투표하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상대에게 하원 권력을 넘겨줬다는 부담 때문에 가능성은 작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park.hyunyou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60대 최민식 확 젊어졌다…얼굴·목소리 싹 30대로 바꾼 마법 | 중앙일보
- 출시 20년만에 왕좌 올랐다…그랜저 꺾은 국내 판매 1위 차는 | 중앙일보
- "옷 벗어보세요, 살 뺄거죠?" 여승무원 '속옷 면접' 본 항공사 | 중앙일보
- 역대급 '70억 로또' 터졌다…외면 받았던 뚝섬 아파트의 반전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 중앙일보
- '미국 1위' 수학 천재소녀의 잘못된 연애…'40조 사기' 공범된 사연 | 중앙일보
- "살인해서 죄송합니다" 얼굴 꽁꽁 숨기고 나타난 이기영 | 중앙일보
- 1000만개 팔린 닭가슴살 소시지..."탄수화물 8배" 충격 폭로 | 중앙일보
- 올리비아 핫세 "15세때 성착취"…'로미오와 줄리엣' 영화사 고소 | 중앙일보
- "키 작은 게 축복…키 큰 건 한물갔다" 미 베스트셀러 근거 보니 | 중앙일보
- '입장료 30만원' 강남 스와핑...클럽주 처벌, 손님 26명 무죄 왜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