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청소년 자살률… 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모나?
'온라인 갈등' 등 '원인'들 증가… 교육과 치료 병행돼야
◇관련 지표 모두 증가…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도 ‘자살’
지난달 말 통계청이 발표한 ‘아동 청소년 삶의 질 2022’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0~17세 아동 청소년 자살률은 2021년 기준 10만명당 2.7명에 달했다. 2000년대 들어 가장 높은 수치로, 2009년 2.6명을 기록한 뒤 수년째 감소했으나 2018년 이후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연령별로 보면 15~17세 자살률은 10만명 당 9.5명으로 10명에 육박했으며, 12~14세 또한 2016년 1.3명, 2018년 3.1명, 2021년 5.0명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실제 자살률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지난 1년 간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한 비율(자살생각 비율), 시도한 비율(자살시도율) 역시 각각 12.7%, 2.2%로 전년(2020년 10.9%·2.0%)보다 늘었다. 사망 원인별로 봐도 ‘고의적 자해(자살)’가 10~19세 사망원인 중 가장 많은 비중(43.7%, 통계청 사망원인 통계)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성·급성 요인 복합적 작용… 충동적일수록 더 위험
성인이 그렇듯 청소년 역시 극단적 선택의 이유를 1~2가지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대부분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만성 위험요인’과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데 직접적 원인이 된 ‘급성 위험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로 미친다. 청소년의 경우 학대, 방임, 불화 등 가정 문제를 비롯한 환경적 요인과 이로 인한 트라우마, 우울증, 불안,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성격 등이 만성 위험요인이 된다. 이 같은 문제들이 직접적 영향을 미치진 않아도 정신적으로 취약해지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청소년기 학업 스트레스와 부모, 또래와의 관계에서 겪는 대인관계 문제 등은 급성 위험요인으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학업에 대한 지나친 부담과 함께 온라인상에서 발생하는 문제들도 극단적 선택을 촉발시키는 급성 위험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SNS상에서 또래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거나 언어폭력, 협박 등을 당한 후 정신적 충격을 입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사례들을 종종 보게 된다.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권용실 교수는 “사이버불링과 같이 온라인상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이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며 “충동적인 성향이 강할 경우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위험이 더욱 높다”고 말했다.
◇위험요인 늘지만 보호·관리체계는 부족… 코로나19도 영향
더 큰 문제는 국내 청소년 자살률이 매년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와 온라인상에서 발생하는 대인관계 문제 등 청소년 정신건강을 악화시키는 요인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반면, 이를 정상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권 교수는 “극단적 선택의 위험요인은 늘었지만,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지지체계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며 “지지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해도, 결과적으론 정서적 어려움을 해결할 만큼 실효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최근 3년은 코로나19의 영향도 컸다. 지난 3년 간 청소년들은 성인들 못지않게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등교와 휴교를 반복했으며, 친구를 만나지 못한 채 집에서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동안 대부분 청소년 정신건강 관리 프로그램이 학교와 연계해 진행돼 왔는데, 코로나19로 정상적인 프로그램 운영이 불가능해지면서 적절한 관리를 받지 못하는 청소년 또한 많았다.
◇적극적인 도움 요청 필요… 지원·교육도 확대돼야
청소년들의 극단적 선택을 줄이기 위해서는 당사자와 주변 사람뿐 아니라 학교, 국가 등 사회 전반적인 관심과 협조가 필요하다. 우선 당사자인 청소년에게는 적극적으로 어려움을 표현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무작정 참거나 문제가 아니라고 치부하기보다, 문제가 있음을 인지·인정하고 도움을 구해야 한다. 주변에서는 청소년들이 보내는 위험 신호에 관심을 갖고, 도움을 요청했을 때 적극적으로 손을 잡아줘야 한다.
이 같은 인식을 갖도록 돕는 것은 학교의 몫이다. 청소년들의 정신건강 인식 증진 교육과 함께 주변 사람이 위험 신호를 조기에 발견해 도울 수 있도록 ‘게이트키퍼’ 교육을 강화하고,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이 전문 기관을 통해 치료받는 과정 또한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 전문가는 청소년의 경우 초기 치료가 매우 중요하고 치료 방식이 성인과 다른 만큼, 정부에서도 초기 치료비 지원과 함께 청소년 입원·치료를 위한 보호 병실을 확충하는 등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권용실 교수는 “청소년은 전문적이고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함에도, 성인에 비해 숫자가 적다보니 전문 치료기관이 많지 않고 주로 학교·가정에서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며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청소년이 치료 받을 수 있는 보호 병실 또한 많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예방을 위해서는 교육만큼 치료 역시 중요하다”고 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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