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폐 기로 선 9·19군사합의…尹대통령 "효력 정지 검토"

정영교 2023. 1. 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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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4일 무인기를 동원해 영공을 침범하는 등의 대남 도발을 이어가고 있는 북한을 향해 경고장을 보냈다.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는 지시를 직접 내리면서다.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비공개회의에서 국가안보실과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국방과학연구소(ADD)로부터 북한의 소형 무인기에 대한 후속 조치를 보고받은 뒤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와 관련한 지시를 했다고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전했다.

김 수석은 윤 대통령의 지시에 대해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국군 통수권자로서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도 "북한의 군사합의 위반이 일상화되는 비정상적인 나날이 지속됐다"며 "국민이 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단호한 대비 태세를 주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검토 지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행정수반이자 국군 통수권자로서의 결단에 따른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윤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오전 회의에서 합동 드론부대 창설 및 스텔스 무인기 연내 개발을 지시했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이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9·19 군사합의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9월 19일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부속 문서로 체결됐다.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의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해 MDL로부터 10~40㎞ 이내에 비행금지와 해상 적대행위 중단 구역 등을 설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당시 합의는 북한의 지속적인 합의 파기로 이미 유명무실해졌다.

국방부에 따르면 북한이 9·19 군사합의를 명시적으로 위반한 사례는 17차례에 달한다. 특히 지난해 10월 이후 두 달 넘게 15차례의 합의 위반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지난달 26일 무인기 5대를 서울까지 침투시킨 것은 군사합의 위반을 넘어선 정전협정까지 어긴 중대 도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부는 이번 무인기 침투 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노골적 합의 위반과 관련해 정치권을 중심으로 '선(先) 폐기 선언' 등이 제기됐음에도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남측이 먼저 약속을 파기하는 데 따른 북한의 역공 가능성 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9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의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을 교환을 지켜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공동취재단

그러다 이날 윤 대통령 직접 합의 파기 검토를 지시한 것은 '한국만 일방적으로 합의를 지키며 안보위협을 당하지 않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 독트린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달 26일 북한 무인기가 침범하자 맞대응 차원에서 우리 군의 무인정찰기를 북측으로 보내는 '팃 포 탯(tit for tatㆍ맞불놓기)' 전략을 보여줬다. 북한이 고체연료 추진체를 발사한 직후인 지난달 30일엔 똑같이 '고체추진 우주발사체 시험 발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지난달 무인기 도발 직후 드론부대 창설을 지시했던 윤 대통령은 이날도 "감시·정찰과 전자전 등 다목적 임무를 수행하는 합동 드론부대를 창설하고 탐지가 어려운 소형 드론을 연내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라"고 지시했다. 또 "연내 스텔스 무인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신속하게 드론 킬러, 드론 체계를 마련하라"며 북한의 무인기 공격에 대한 철저한 대응을 당부했다.

김은혜 수석도 "윤 대통령이 회의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한 비례적 수준을 넘는 압도적 대응 능력을 대한민국 국군에 주문했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30일 충남 태안의 국방과학연구소(ADD) 안흥 종합시험장의 해상 발사장에서 고체추진 우주발사체가 점화 후 날아가고 있다. 뉴시스

'추가 도발이 있을 시'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이날 윤 대통령이 직접 군사합의 폐지 검토를 지시하면서, 9·19 군사합의는 4년 3개월만에 존폐 기로에 서게됐다.

일각에선 " 9·19 군사합의는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남북관계발전법) 제23조에 명시된 '남북합의서의 효력 범위' 조항에 근거해 효력정지가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해당 항목은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기간을 정하여 남북합의서의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9·19 합의는 군사적 긴장 완화라는 취지에 부합되게끔 상호 준수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유지해왔다"며 "군은 확고한 대비태세를 유지한 가운데 북한의 행보를 주시하면서 향후 북이 추가 도발 시 9·19 효력 정지를 포함해서 필요한 조치를 냉정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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