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세계 어디서도 안 밀려…문제는 노벨상 컴플렉스”

홍지유 2023. 1. 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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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이상, 서정주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밀리지 않는다. 한국 문학을 한국에 가둔 것은 노벨상 컴플렉스다.”

지난해 10월 국립한국문학관장에 취임한 문정희 관장은 “해외에서 유명한 상을 받아야만 그 작가를 달리 보는 세태가 아쉽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에 있는 보석은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남이 봐주기만을 기다린다”는 게 한국 문학계를 보는 그의 시각이다. 국립한국문학관이 들어설 서울 은평구 기자촌 터에서 지난달 29일 문 관장을 만났다.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되며 등단해 54년째 시를 쓰고 있는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문학관장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문정희 국립한국문학관장이 2021년 12월 29일 오후 서울 은평구 진관동에 설립될 국립한국문학관 부지 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최초의 국립 문학관…2025년 첫 선보인다

2025년 개관하는 국립한국문학관은 국내·외 한국문학 관련 자료를 전시·연구하는 최초의 국립 문학관이다. 문 관장은 개관하기까지 3년 동안 흩어진 문인들의 작품을 집대성하는 역할을 맡았다.

지금까지 세종시 수장고에 확보된 작품은 약 8만점. 백석 시인이 100부만 발행해 주변 문인들에게 나눠줬다는 전설의 시집, 손에 넣지 못한 윤동주가 필사해 간직했다는 그 유명한『사슴』 초판도 그중 하나다.

문 관장의 임기는 3년이다. 2025년 문학관 개관과 동시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만큼 자료를 수집·복원해 세상에 선보이기까지의 과정 전체가 오롯이 그의 손에 달려있다. 문 관장은 자료 기증자를 찾고 작품을 복원하는 작업에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최다 기증자는 서지학 전문가인 고 하동호 공주사대 교수다. 하 교수는 백석 시인의 시집 『사슴』과 김소월의 시집『진달래꽃』 초판 등 근·현대 한국 문학 자료 5만점을 기증했다. 남편인 고 김윤식 서울대 교수의 유산 30억원을 쾌척한 가정혜씨, 생전 수집한 모든 한국 문학 자료를 사후 기증하겠다고 약속한 오무라 마쓰오 일본 와세다대 명예교수(한국 문학 연구가)도 주요 기증자다.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왼쪽), 증보판, 문고판이 지난 4일 청와대 춘추관에 전시돼 있다. 초판은 서지학 전문가인 고 하동호 공주사대 교수가 국립한국문학관에 기증했다. 홍지유 기자


문 관장은 중책을 맡게 된 때를 회상하며 “문학적 허영심이 후끈했다”고 했다. 시인 출신인 문 관장은 스스로를 “문학주의자”라고 부른다. “사랑하는 한국 문학을 수집해서 전시하고 존귀하게 전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문 관장은 “고등학생 때 입시를 위해 시 몇 편을 외우는 수준”의 문학 향유 세태가 아쉽다며 “모두의 삶에 문학이 녹아들게 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문학관의 롤모델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대문호, 제임스 조이스를 기리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제임스조이스 센터다. 센터 근처에는 더블린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박물관도 있다. 문 관장은 “아일랜드는 나라 전체가 문학관”이라며 “한 명의 위대한 작가는 하나의 세계”라고 했다. 조이스는 20세기 초 식민지 아일랜드의 사회상을 담아낸 소설 『더블린 사람들』로 조국에 ‘문학의 나라’라는 명성을 선물했다.

백석 시집 『사슴』초판. 100부 한정으로 발행돼 대부분 소실되고 현재는 약 5부가 남은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 서울옥션, 케이옥션


“문학은 포용…논란 작가도 조명할 것”


문학관을 통해 특별히 조명하고 싶은 문인이 있냐는 질문에 문 관장은 “역사를 골라서 가질 순 없다”고 했다. “친일, 월북, 독재 옹호 등 논란이 있는 작가라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다. 그러면서 “무솔리니를 옹호했다는 이유로 에즈라 파운드의 작품을 내다 버릴 순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에즈라 파운드는 T.S. 엘리엇과 함께 1900년대 모더니즘을 주도한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미국 출신인 파운드는 1924년 39세의 나이로 이탈리아에 정착해 무솔리니를 만났고 이후 수십 년 동안 파시즘 옹호 활동을 했다. “문학은 포용해야 한다”, “문학사의 상처는 상처대로 안고 가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여성 문학의 진면목을 드러내겠다는 포부도 내놨다. 문학 연구가들은 고대 문학 중 ‘무명시’로 알려진 작품 대부분이 여성의 손에서 탄생했다고 본다. 도입부 ‘가시리 가시리잇고’로 유명한 고려가요 ‘가시리’도 “작자 미상으로 알려졌지만 여성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고 문 관장은 말했다. “고려가요 가시리, 조선 시대 황진이부터 근대 작가인 나혜석, 김명순까지 한국 여성 작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전시를 꾸릴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지난 2021년 12월 21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재진 및 관계자들이 문학 특별전시 '이상, 염상섭, 현진건, 윤동주 청와대를 거닐다'전시품을 둘러보고 있다. 서촌 일대에서 활동했던 근현대 문인들의 대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이번 특별전시는 1월 16일까지 진행된다. 뉴스1

“나라 전체가 문학관이 되길 바란다”는 그의 다음 목표는 단순한 전시 공간으로서의 문학관이 아닌 연구소를 만드는 일이다. 일단은 “문학 작품을 모으고 복원해 일반인들에게 선보이는 작업이 먼저”지만 궁극적으로는 “문학관이 한국문학과 한국학 연구자들의 구심점이자 연구 허브가 되길 원한다”고 했다.

그가 관람객에게 바라는 것은 “번갯불이 치는 경험”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문학을 읽으며 소설 속 주인공의 일이 내 일인 양 느끼고 위로를 받는다. 그 순간이 바로 “마음 속에 번갯불이 치는 순간”이란다. “한국 문학이 시대의 파도를 넘어 이렇게 건재하게 살아남았음에 전율을 느낀다”는 그는 “결국 모든 문인의 꿈은 희망을 주는 것”이라며 웃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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