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된 신인왕 정철원, "내 자신감의 원천은 가족"
지난해 프로야구 신인왕 정철원(24·두산 베어스)은 1999년생 토끼띠다. '검은 토끼의 해'인 계묘년(癸卯年)을 맞아 더 높은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새해의 시작과 함께 기쁜 소식도 접했다. 4일 발표된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최종 엔트리 30인에 이름을 올렸다.
바야흐로 정철원의 '성공시대'다. 그는 입단 5년째인 지난해 5월 1군에 데뷔한 뒤 빠른 속도로 두산의 필승 불펜 한 자리를 꿰찼다. 58경기에서 72와 3분의 2이닝을 던지면서 4승 3패 23홀드 3세이브, 평균자책점 3.10으로 활약했다. 그 결과 평생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최우수 신인선수상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세계 최고 선수들이 겨루는 WBC에 출전하게 됐다. 정철원은 "내심 국가대표를 꿈꿨다. 군대에서 1년 6개월간 이미 '태극마크'를 경험했으니, WBC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자신 있게 공을 던지겠다"며 기뻐했다.
정철원은 2018년 신인 드래프트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고 두산에 입단했다. 그때 두산 1군에는 쟁쟁한 불펜 투수가 많았다. 병역부터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2019시즌이 끝난 뒤 현역 포병으로 입대했다. 1년 반 동안 공 대신 수류탄을 던지면서 어깨와 팔꿈치를 아꼈다. 정철원은 "투수에게는 휴식이 꼭 필요한 것 같다. 현역 복무가 프로야구 선수에게 불리하다는 편견을 깬 것 같아 다행"이라며 "앞으로 현역으로 복무하게 되는 선수들도 너무 큰 부담감은 느끼지 말라고 응원하고 싶다"고 했다.
정철원은 안우진(키움 히어로즈), 강백호, 김민(이상 KT 위즈), 곽빈(두산) 등과 동기다. 이들 모두 정철원보다 한 발 먼저 1군에서 자리를 잡았다.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는데, 그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했다. "그 친구들 모두 나와 고교 시절 같이 경쟁하면서 야구했던 사이다. 나보다 일찍 1군에서 잘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기회만 주어진다면 충분히 통할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됐다"며 "1군에 처음 올라왔을 때도 잘 던질 거라는 자신감이 있어서 (내 성적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아직은 친구들보다 부족한 점이 많으니 더 열심히 해서 따라잡을 것"이라고 했다.
정철원은 올해 1군에서 보내는 두 번째 시즌을 맞는다. '2년 차 징크스'라는 불길한 단어가 서서히 따라다닐 시기다. 그러나 그는 짐짓 "난 프로 2년 차가 아니라 5년 차"라고 장난스럽게 강조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으니 선수로는 벌써 17년 차다. '2년 차 징크스'라는 단어는 나와 거리가 멀다"며 "작년보다 올해가 더 좋으면 좋았지, 나빠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지켜보고 계실 팬분들께 '올해도 말보다 실력으로 보여드릴 테니, 기대만 해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남다른 자신감의 원천은 가족이다. 부모님과 두 살 터울의 남동생,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이 늘 그에게 지치지 않는 힘을 준다. 정철원은 "집에 가면 부모님이 즐겁게 장난치시고, 나와 동생들은 그걸 보고 깔깔거리면서 맛있게 밥을 먹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그래서 내가 말하는 것도 좋아하고 자존감도 높아진 것 같다"며 "부모님이 그동안 열심히 버신 돈을 내가 야구 하면서 많이 썼다. 앞으로는 나도 집안에 보탬이 되고 싶다"며 즐거워했다.
실제로 대학에서 검도를 전공한 아버지는 졸업과 동시에 태어난 아들을 키우기 위해 20년 넘게 스키장과 골프장에서 일했다. 아들이 프로에서 자리를 잡은 뒤에야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검도장을 차렸다. 어머니 역시 학습지 교사로 일하며 세 남매를 뒷바라지하는 한편 틈틈이 봉사활동도 하며 '나누는 삶'을 가르쳤다. 정철원은 그런 부모에게 지난 연말 여러 시상식에서 받은 신인상 상금을 모두 드렸다. 월급 역시 고스란히 가족에게 보내고 용돈을 받아서 쓴다. "가족이 있어 내가 있다"는 마음 때문이다.
정철원에게는 부모만큼 애틋한 또 한 명의 가족도 있다. 부모님이 맞벌이하는 동안 외할머니가 삼 남매를 살뜰하게 키웠다. 그는 "할머니가 어릴 때부터 맛있는 걸 많이 해주셔서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자랐다. 내가 2군에 있을 때도 '철원이가 언제 나올지 모른다'며 병원에서 계속 TV로 두산 야구 경기를 보셨다고 한다"고 했다.
그랬던 외할머니가 지난해 6월 세상을 떠났다. 정철원이 마침내 1군 마운드에 선지 한 달 만이었다. 병세가 악화해 끝내 손자가 잠실구장 마운드에 선 모습도 보지 못했다. 원통 해할 줄 알았는데, 그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할머니가 지금도 옆에서 저를 보고 계실 거라고 생각을 해요. 제 눈에만 안 보이는 거죠." 정철원의 마음속 가족은, 여전히 여섯 명이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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