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눈물버튼된 나문희 "젊은 애들은 날 '호박고구마'로 안다"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역 나문희
“그 장면 촬영할 때 정말 기가 막혔어요. 얼마나 북받치겠어요. 여기(목)까지만 차가지고 그 안에서 경련을 했죠. 표출은 일부러 덜 했는데, 속마음은 정말 ‘슬프다’는 말로 다 안 됐죠.”
배우 나문희(82)는 하얼빈 거사 후 투옥된 아들 안중근에게 수의를 만들어 보낸 조마리아 여사의 마음을 이렇게 돌이켰다. 처음 도전한 뮤지컬 영화 '영웅'(감독 윤제균)에서 조마리아 역을 맡은 그가 4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취재진을 만났다.
“엄마에겐 열 살이어도, 서른살, 쉰살이어도 내 자식은 다 아이”라는 그는 “조마리아 여사님 속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먹울먹해진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영화에서 조마리아 여사는 일본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아들에게 “뒤돌아보지 말고 네 뜻을 이루라”는 편지를 보낸다. 눈물을 삼키며 수의를 지어 보내는 그가 아들의 배내옷을 어루만지며 뮤지컬 넘버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를 부르는 대목은 관객을 울게 하는 ‘눈물 버튼’으로 꼽힌다. 지난달 21일 개봉한 ‘영웅’은 14일간 180만 관객을 동원했다.
'영웅' 눈물버튼 나문희 "그 엄마 속 생각하면 저도 울먹"
인터뷰 도중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를 다시 불러보던 그는 “자식을 희생시키려면 엄마한테 ‘힘’이 얼마나 필요하겠나. 조마리아 여사의 그 힘에 내가 누를 끼칠까 봐, 처음엔 (출연을) 망설였다”고 했다.
여자 교도소 합창단을 그린 영화 ‘하모니’(2020) 제작자로 만난 윤제균 감독을 믿고 마음을 돌렸다. 1969년 드라마 ‘이상한 아이’(MBC)로 연기에 입문하기 전에 MBC 성우로 활동했던 그가 60여년 목소리 내공을 발휘했다.
‘영웅’ 촬영은 2019년 12월에 끝났지만 코로나19로 개봉이 계속 밀렸다. “역사적 인물을 연기할 땐 아무래도 사명감이 대단하다”는 그는 3년여 전 촬영 당시 기억을 생생히 돌이켰다.
Q : -감정은 어떻게 잡았나.
“실제 내 가족의 일이라면 어떨까 가정해봤다.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 현실에선 이런 일이 없어야 하니까 아침저녁으로 ‘천수경’을 외면서 부처님께 기도도 한다.”
Q : -노래 연습은 어떻게 했나.
“피아노 치는 큰딸에게 레슨을 받았다. 걔가 날더러 ‘호흡’은 좋다더라.(웃음) 예전에 악극할 땐 연습을 별로 안 했는데 ‘영웅’이나 지난해 ‘뜨거운 싱어즈’(배우들의 합창단 도전을 그린 JTBC 예능)는 부지런히 했다. 지금도 기도하고 스트레칭할 때 노래를 흥얼흥얼한다. 연습한 게 줄어들까 봐.”
Q : -노래 장면은 만족스럽나.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는 라이브 끝나고 윤 감독이 자꾸 더하라 그러더니 결국 맨 처음 걸 쓰더라. 처음에 나오는 감정보다 좋은 게 없다. (‘영웅’ 출연 배우) 조재윤 씨가 자기네 촬영할 때 윤 감독이 내 노래를 틀어주기도 했다더라. 그런 감정을 참고하라고. 기분이 좋았지. 관객들이 많이 울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내가 아직 그런 힘이 있나. 인정받은 것 같아 감사하다.”
"아들 역 정성화, 뮤지컬 공연도 해보라더군요"
Q : -안중근 역 정성화와 모자 호흡은 어땠나.
“정성화 씨가 우리 딸보다 어리지만, 그냥 아들처럼 처음부터 다가왔다. (영화에서 안중근을) 보낼 때도 정말 아들 보내는 것 같았다. 정성화가 나더러 뮤지컬도 뛰라는데 힘들어서 그건 못 할 것 같고.”(웃음)
Q : -노래할 때와 대사할 때 가장 큰 차이라면.
“차이는 못 느낀다. 그냥 하라면 한다. 많이 늙었잖나. 그냥 사는 날까지, 관객이나 시청자 만날 때 열심히 하려 한다. 최근엔 틱톡(숏폼 콘텐트 플랫폼)도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번 준비해서 세상 사람들, 특히 아이들하고 만나는 게 재밌어서 하길 잘했구나 싶다. 돈도 바라지 않고 내가 항상 움직인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나이 먹어서 굳어지는 건 싫다.”
"할머니라고 무거울 필요있나? 제2 호박고구마 기다린다"
“카메라 앞에서 재밌게 놀다가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할머니라고 무거울 필요는 없잖아요.”
Q : -여전히 원톱 주연 배우인데 더 욕심나는 부분은 없나.
“아니다. 내가 일찌감치 엄마, 할머니 등 작은 역을 많이 했잖나. 주인공보다 조그만 역으로 똑 따먹는 거 하고 싶다.”(웃음)
Q : -연기에 대한 갈망은?
“잘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TV에서 영화를 찾아본다. 후배 배우 중엔 김혜수, 김희애, 예수정도 아주 잘하더라. 어디서 그렇게 훈련이 됐는지 잘하는 후배, 좋은 극이 많아졌다. 나도 욕심 내지 말고 내 것을 잘 찾아서 하자는 편이다.”
나문희의 '내 연기' "반복하다 보면 메주가 쒀지더라"
Q : -배우 나문희에게 ‘내 것’이란 뭘까.
“집에선 쩔쩔매고 산다. 기운도 모자라고 남편 비위도 건드리면 안 되니까. 그러다 보니 사람이 조금 약아진다. 사회생활 할 때도 어지간히 참는 건 잘한다. 근데 연기는 순간 튀어나오는 게 좋다. 옷만 해도 입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막상 몸에 걸치면 잘 안 되는 때가 있잖나. 연기도 대본을 받았을 땐 엄두가 안 나고 이걸 어떻게 하나 그러는데 자꾸 들여다보고 반복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메주가 쒀지더라.”
주연 영화 ‘수상한 그녀’로 865만 흥행을 맛본 그다. 팬데믹 기간에도 ‘정직한 후보’‘오! 문희’ ‘담보’ ‘룸 쉐어링’ 등을 잇따라 극장 개봉하며 활발히 활동했다.
“올 6월엔 여든셋 나이에서 두 살 줄어든다. 11월생(1941년11월30일)”이라며 “할머니들도 일을 조금 더 많이 하면 좋겠다”고 소탈하게 웃는 그에게 새해 목표를 물었다.
“우선 건강하고, 폐를 끼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영감님이 잘 계셔서 나를 마음으로 많이 도와주면 좋겠다”고 그는 답했다.
Q : -건강관리 비결은?
“집에서 20분씩 타는 자전거. 하체 건강이 중요한 것 같다. 스트레칭 하고 불경 외는 걸 쭉 잘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매일 동네 목욕탕에 간다.”
Q : -대중탕은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나.
“그러거나 말거나! 머리숱 빠지듯 몸도 젊을 때랑 달라 불편한데 그냥 간다. 목욕탕 직원들에게 음료수도 하나씩 사드리고, 목욕탕도 계속 잘 다니고 싶다.”(웃음)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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