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대부분 길몽? 꿈을 성실히 기록한 조선 사대부
[정윤섭 기자]
인류의 역사를 통해 보면 꿈(夢)은 고대 사람들이나 지금 사람들이나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오가며 끊임없이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예측하게 하였다. 고대 사람들에게 꿈은 신의 계시와도 같이 여겨졌다. 따라서 꿈속에서 일어난 일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고 믿기도 하였다. 현대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꿈을 통해 미래나 일상생활의 운세를 판단하기도 한다.
유명한 인물이나 장군들의 탄생기를 보면 한결같이 어머니가 꿈에 현몽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나중에 큰 인물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위인열전이나 영웅담 이야기에 나오는 이러한 탄생설화는 꿈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꿈을 해석하는 것을 해몽이라고 하여 점쟁이나 꿈 해몽가는 그 사람의 미래를 꿈을 통해 내다보기도 한다. 근대에 들어와 꿈에 대해 연구한 이들은 꿈이 무의식의 표출이라고 말한다. 무의식 연구의 장을 넓힌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꿈은 과거의 기억과 같은 잠재적인 요소가 꿈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일상생활에서 이 꿈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였으며 꿈을 소재로 하여 여러 문학작품이 써지기도 하였다. 17세기 대표적인 문인인 서포 김만중(1637~1692)이 쓴 <구운몽>은 꿈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기도 하다.
▲ 미암 유희춘의 <미암일기> 미암일기에는 유독 꿈에 대한 기록이 많아 당시 사람들이 일상에서 꿈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 미암박물관 |
<미암일기>를 읽다보면 하루 일기의 가장 첫줄에 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일기에는 지속적으로 꿈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고 있어 유희춘의 일상에 꿈이 아주 중요하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미암일기> 첫날의 기록은 이렇게 시작한다.
1567년 10월 초1일
아내가 꿈에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갠 것을 보았다고 했는데 이는 수심이 없어지고 근심이 풀릴 징조다.
유희춘은 아내의 꿈을 스스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해몽한다. <미암일기>는 그가 유배에서 해배되고 나서부터 기록된 것이라는 것을 보면 그가 꿈을 길조로 풀이해 보려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1567년 10월 초2일
아내가 꿈에 어린애를 안아보고, 또 손자가 꽃을 머리에 꽂은 것을 보았는데 사내였다고 한다.
유희춘은 그 다음날 일기에서도 꿈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두 번 다 아내의 꿈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의 꿈 이야기를 쓰지 않고 굳이 아내의 꿈 이야기를 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567년 10월 초9일
아내가 꿈에 뱀이 가는 것을 보고 또 뱀을 죽이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묘시(5시~7시)에 서남쪽에서 까마귀가 울었다.
1567년 10월 19일
아내가 나를 홍문관으로 부르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미암일기>의 첫달인 10월 일기를 보면 하루가 멀다하고 꿈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는데 대부분은 아내의 꿈 이야기다. 또한 흉조라고 여겨지는 까마귀가 운 것과 아내가 뱀에게 물린 꿈을 길조라고 예측하고 있다.
아마도 유희춘의 의식세계를 프로이트의 무의식 세계로 연결해 보면 유배에서 풀린 후 그가 좋은 관직에 복귀하게 될 것이라는 무의식의 세계가 많이 차지한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미암일기>에 나타난 유희춘의 꿈 이야기를 보면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을 만났다는 이야기도 많다. 지금 사람들도 꿈에 이런 유형의 꿈을 많이 꾸는 것을 볼 수 있다.
1567년 12월 21일
꿈에 아버님을 모셨는데 장기 놀음에 대해 말씀을 하신 기억이 난다.
1568년 8월 11일
꿈에 어머니를 뵙고 깨고 나니 슬픈 생각이 난다.
1569년 6월 3일
꿈에 퇴계 이선생을 뵈었다.
유희춘이 일기에서 꿈에 대해 스스로 해몽한 것을 보면 대부분 길조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까마귀가 우는 것도 길조로 해석하고 꿈을 통해 불길한 징조라고 생각하는 경우 보다는 길조로 해몽하여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보고 있다.
1568년 4월 16일
묘시(5시~7시)에 까마귀가 서남방에서 울고 까치도 정남방에서 지저귀었으며 꿈도 길했다.
1568년 6월 14일
꿈에 어머니를 모시고 승정원에 들어갔다. 이는 좋은 징조다.
1569년 7월 초5일
꿈에 전하를 붙들어 안아 작은 수레에 올렸고 또 얻어맞은 꿈도 꾸었으니 재물을 얻을 징조다.
때론 유희춘의 꿈이 모두 길조는 아니었다. 아들 경염의 꿈을 누군가에게 풀이해달라고 했는데 아들이 벼슬을 그만둘 징조라고 말하기도 한다.
1569년 7월 초10일
경염이 꿈에 말을 달려 어전御前에 이르렀다가 스스로 떨어졌다고 했다. 곁에 있던 사람이 풀이하기를 뜻대로 벼슬을 하다가 오래지 못하여 그만 둘 징조라고 했다.
▲ <미암일기>를 보관했던 모현관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에 있는 모현관은 <미암일기>를 보관했던 곳으로 지금은 바로 옆 미암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
ⓒ 정윤섭 |
우리가 꿈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항상 악몽을 꾸었을 때다. 쫓길 때 도망치려 해도 다리가 떨어지지 않거나, 상대를 때려야 하는데 주먹이 나아가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분리된 상태에서 답답하게 몸부림치다 꿈에서 깨어난다. 오늘날 꿈을 자주 꾸는 것은 스트레스와도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 특히 이러한 스트레스는 주로 사건과 관련된 악몽을 꾸게 한다.
지금도 사람들은 꿈을 통해 하루나 미래를 예측하려고 한다. 유희춘이 흉몽보다는 주로 길조로 해몽하려했던 것을 보면 그의 일상에 대한 긍정적인 마인드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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