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사건처리 지연 실태 통계 공개
판검사 증원… 책임소재 분명히
실용적 소송절차 도입 효과 클듯
우리 헌법 제27조 제3항에서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상 권리가 지켜지고 있을까?
형사, 민사사건 구분 없이 경찰, 검찰, 법원에 미제사건이 쌓여가고 있다. 국민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고소해도 검찰, 경찰 간에 사건이 핑퐁식으로 오갈 뿐 2년∼3년 동안 결론을 내지 않는 등 수사 단계 장기 미제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사안이 복잡하면 수사하는 데 몇 년이 걸리고, 재판이 마무리되는 데 또 몇 년이 걸린다.
일선에서 송무를 담당하는 변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사건 처리 지연의 심각성을 말한다. 통계상으로도 문제점이 드러난다. 재작년 기준으로, 전국 법원의 1심 민사본안 사건은 접수 후 첫 기일이 잡히기까지 평균 5개월 정도가 걸리고, 항소심은 8개월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1년이 지나 첫 기일이 잡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전국 법원의 형사공판은 사건 접수 후 첫 기일이 열리기까지 1심은 평균 80일, 항소심은 평균 125일이 걸렸다. 1심 판결만 받는데도 2, 3년씩 걸리는 경우가 허다한 실정이다.
실상이 이렇다면 피해를 당한 국민의 권리 구제나 범죄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재판의 당사자가 된 국민들의 불편과 고통도 심각하다. 수사나 재판절차의 지연은 분쟁 해결 기능의 상실을 의미하고, 이는 곧 국가의 경쟁력 저하로 직결된다.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에 신속한 분쟁 해결이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 국제적 평가였는데 이러한 장점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첫째, 경찰·검찰·법원의 사건 처리 지연실태를 정밀하게 조사해 모든 통계를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확한 진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둘째, 검사나 판사를 획기적으로 증원해야 한다. 작년 판사증원법과 검사증원법이 개정돼 올해부터 5년에 걸쳐 판사 370명, 검사 220명을 증원하게 됐다. 2014년 이후 8년 만에 판사, 검사 증원이 이뤄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일 년에 수십명의 판사, 검사를 늘리는 것 정도로 사건 처리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판검사 증원은 지금까지 기본적으로 사건 수를 기준으로 해 이뤄졌고, 이는 실질적인 업무량을 반영하지 못한다. 과거에 비해 한 사건을 처리하는데 소요되는 업무량이 몇 배나 늘어났다. 적정 판사, 검사 인력을 확보하는데 이런 부분이 계량적으로 정확하게 반영돼야 한다.
셋째, 수사권 조정의 부작용으로 검경 간 사건 처리 지연에 대한 책임 소재가 모호하게 됐다. 경찰이든, 검찰이든 책임 수사 체제를 확립해 수사 지연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
넷째, 사법행정의 차원에서 재판 지연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법원 내에 법관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고, 대법원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재판 지연에 대한 관리는 국민에 대한 책임일 뿐 재판의 독립과는 무관하다. 미국 뉴욕주는 판사별로 재판 지연 통계를 모든 판사에게 공개하고, 기소 후 6~9개월 이내에 배심 재판을 열지 않으면 지체 사건으로 특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의 경우 2011년 재판 지연 보상법을 만들어 재판이 1개월 지연될 때마다 100유로씩 보상하고 있다. 이처럼 선진국들도 재판 지연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플리바겐 제도와 같이 대부분의 사건을 간이한 방식으로 처리하고, 당사자 간 다투는 사건에 심리를 집중하는 영미식의 실용적인 소송절차를 도입할 때가 됐다. 판사, 검사를 몇 배 증원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 올해는 계묘년 토끼의 해다. 토끼처럼, 국민의 권리가 신속하게 구제되고, 분쟁도 빨리 종결되는 우리 사법 시스템의 전통과 장점을 복원하는데 정부와 사법부가 발 벗고 나서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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