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도 R의 공포…금값↑ 증시↓ '안전자산' 돈 몰려
[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이른바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새해 첫 거래일부터 글로벌 금융시장을 짓눌렀다. 금, 달러, 국채 등 안전자산에 돈이 쏠리면서 국제 금값은 6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이대로라면 금값이 조만간 역대 최고치로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반면 대표적 위험자산인 뉴욕증시는 빅테크 대장주인 애플의 시가총액 2조달러가 무너지는 등 새해 첫 거래일에도 웃지 못했다. 국제유가도 4% 낙폭을 기록했다.
◇안전자산 선호에 치솟는 금값
3일(현지시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지난 한 해 뉴욕증시를 짓눌렀던 고금리, 고물가, 경기침체 우려가 지속되면서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확인됐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2월 인도분 금은 전 거래일보다 온스당 1.1%(19.90달러) 오른 1846.1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6월16일 이후 6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금값은 지난해 11월 초부터 경기침체 우려가 부각되며 금융시장 부진이 이어지자 오름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여기에 각국 중앙은행이 ‘탈달러’ 전략에 따라 역대 규모로 금 매수에 나선 것도 금값 상승세를 지지했다.
삭소방크의 올레 한센 상품전략부문장은 "경기침체와 증시의 밸류에이션 리스크, 약달러 전망, 인플레이션 우려, 중앙은행의 금리가 피크를 찍을 것이라는 예상 등이 맞물리고 있다"며 이러한 안전자산 선호 심리를 분석했다.
위험자산에서 빠져나온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으로 몰리면서 금값이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특히 미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한 중앙은행들의 피벗(pivot·방향 전환) 여부가 금 가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AuAg ESG 골드마이닝 상장지수펀드(ETF)를 운용하는 에릭 스트랜드는 올해 금값이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고 온스당 2100달러를 돌파하며 "새로운 장기 강세장"을 열 수 있다고 예상했다.
공포감은 채권 금리도 끌어내렸다. 이날 뉴욕 채권시장에서 벤치마크인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전거래일 대비 14bp(1bp=0.01%포인트) 낮은 3.74%선을 기록했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금리도 12bp 낮은 4.39%선까지 밀렸다. 국채 금리 하락은 그만큼 안전 자산인 국채에 수요가 몰리면서 국채 가격이 올랐음을 의미한다. 외환시장에서도 금값 상승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안전 자산인 달러 강세가 확인됐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달러화지수)는 전장 대비 1.13% 상승했다.
◇증시도 부진… 애플 시총 2조달러 붕괴
이러한 안전자산 선호 심리는 새해 들어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등 주요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경기침체 경고음이 쏟아지면서 증시 등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된 결과로 보인다.
여기에 애플, 테슬라 등 주요 빅테크를 둘러싼 실적 우려도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이들 주가는 새해 첫 거래일인 이날 뉴욕증시의 주요 지수를 일제히 끌어내렸다.
특히 애플은 전장 대비 3.7% 하락해 시총 2조달러 선이 무너졌다. 이날 종가를 기준으로 한 시총은 1조9900억달러를 기록했다. 애플의 시총이 2조달러 아래로 내려간 것은 2021년 3월 이후 처음이다. 경제매체 CNBC는 "애플이 시가총액 3조 달러를 돌파한 최초의 미국 기업으로 이름 올렸던 1년 전과 비교되는 주가 하락세"라고 전했다.
지난 한 해동안 무려 65% 폭락한 테슬라도 우울한 새해 첫 거래일을 맞았다. 테슬라는 전장 대비 12.2% 낮은 108.1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지난해 전기차 인도 실적이 수요 둔화 우려를 키웠다. 이에 월가 투자기관 가운데 최소 4곳이 테슬라의 목표주가와 향후 수익 추정치를 하향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유가는 경기침체 우려로 새해부터 급락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2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4.2%(3.33달러) 떨어진 76.93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이는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12월20일 이후 최저치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3월물 브렌트유도 4%대 낙폭을 기록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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