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신문 발행인

오창경 2023. 1. 4.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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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마을신문 <동기부여> 발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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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경 기자]

글을 쓰고자 하는 은밀한 욕구를 숨기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부여 지역공동체 활성화 재단에서 발행하는 <동기부여> 마을신문 발행에 참여하면서 알게 되었다.

어쩌다 내가 신문 발행인이 되었다. 부여에서 활동하며 인쇄 매체에 내 이름이 박히는 일들이 종종 생겼고 마을신문 발행이라는 가보지 않은 길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기사는 써봤어도 신문발행은 처음이었다. 시작은 이랬다.

일단 부여의 각 마을에서 기사를 써줄 기자들을 모집해서 교육부터 해야 했다. 10명이 모였고 기사 쓰는 법을 가르쳤다. 국문학 전공이라는 얄량한 이력과 꾸준히 기사 쓰기를 했다는 경력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교육 교재를 만드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글쓰기는 가르쳐 본 적이 없으니 남들이 만든 교재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 부여 마을신문 기자단 양성교육 이 교육을 통해 부여 마을 신문 기자들이 기사를 썼다.
ⓒ 오창경
교육생으로 참여한 기자들의 열정으로 나의 부족함이 메워지면서 교육이 회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기사다운 글들이 나왔다. 곧이어 종이 신문으로 발행하는 절차가 닥쳐왔다. 담당 직원도 새내기였고 나도 신문발행에 대한 기초 지식이 전혀 없었다. 하필이면 대선과 지방선거가 이어져 나라가 들썩일 때였다.

지방선거는 지방에서 더 치열하고 첨예하다. 그 치열한 게임 속에서 난 전사로 나선 후보자였다. 내 명함을 돌려야 했고 당의 일정에 따라 선거운동에 앞장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재단에서 제작회의를 하면서도 마음은 선거판에 있었다. 선거 캠프에서 전략회의를 할 때면 재단의 제작회의가 마음에 걸렸다. 갈팡질팡의 시간이었다. 꽂혀서 해도 모자랄 일 두 가지를 부여잡고 정신을 못 차렸다. 두 가지 일을 다 잘하고 싶은 욕심의 끝은 예상한 대로였다.

첫 신문이 나왔다. 나의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난 흔적은 당연히 찾을 수 없었다. 실수투성이 신문이었다. 내가 발행한 신문이라고 떳떳하게 공개하지 못할 정도였다. 초보자의 솜씨라는 것이 면면에 보였다. 어설펐고 볼거리도 없었다. 깜박 잊고 발행인에 내 이름을 넣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처음이라 그렇다고 자위하기에는 혼을 갈아 넣을 정도의 열정도 쏟지 않은 것도 마음에 걸렸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 끝에

두 번째 신문발행을 앞두고 있었다. 마을 기자들의 글 쓰는 실력은 나아져 있었으나 나의 멘탈이 바닥이라 제대로 교정을 하지 못했다. 빨리 인쇄를 넘기고 쉬고 싶었다. 선거 패배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을 때였다. 열패감에 젖어 무기력했고 우울했다. 기사의 내용은커녕 활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제작 방향을 내가 설정하고 가야 하는데 의욕이 없으니 아이디어도 없었다. 마을신문이라는 특성을 살리기 위한 고심의 여력은커녕 재단의 눈치만 보았다.

두 번째 신문이 나왔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발견되었다. 기자의 이름이 뒤바뀌어 인쇄되어 있었다. 꼼꼼하게 교정을 하지 않은 탓이었다. 인쇄를 탓할 문제가 아니었다. 배포하기 전에 발견한 것이 다행이었다. 라벨지에 두 기자의 이름을 인쇄해서 오려 붙이는 긴급 처방을 하기로 했다.

땜질된 이름으로 나간 기자들이 항의할까 두려웠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교육을 진행하는 동안 쌓인 정이 있어서 차마 항의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발행된 신문 5백 부를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바뀐 기자의 이름들을 덮어씌우는 동안 자괴감만 생겼던 것은 아니었다. 사진 배치와 전체적인 조화, 독자들이 읽고 싶어지는 욕구가 생기는지 등의 분석이 저절로 되는 것이었다. 내가 신문발행의 주체일 때와 독자일 때와는 다른 관점이었다. 어렴풋이 신문 발행인으로서 자존감이 밑바닥에서 끌어올려지는 기분을 맛보기도 했다. 실패와 실수를 통해 배운다는 말이 이렇게 증명될 줄이야.

세 번째 신문발행 시기는 내가 학수고대했다. 나는 자존감을 완전히 회복했고 마을신문의 기능에 충실하면서 볼거리 읽을거리가 충분한 비장의 아이템을 마련해놓았다. 이번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12월 한 달 안에 새로 지원한 마을 기자들 교육과 동시에 기사를 받아야 했다. 교육이 아니라 실전이었다. 그들이 미리 써온 기사들을 가지고 토론하는 교육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살아온 경력이 글쓰기의 기본인 '읽기와 생각하기'를 뛰어넘는 기자들에게는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이 우선이었고 격려가 교육이었다. 남이 쓴 교재로 수업의 양만 채우기에 바빴던 교육은 효과가 없었다.

5회의 기사 쓰기 교육을 마치는 동안 기사 모집이 끝났다. 기자단 교육 세 번 만에 이토록 심플하게 의욕적으로 기사 모집이 끝난 경우도 처음이었다. 나머지는 내 몫이었다.

면벽참선하는 수행자 모드로 오로지 기사들을 교정하고 편집하는 데 집중했다. 마을기자단들이 보여 준 열정은 나의 일을 즐기게 해주었다. 지루할 틈이 없었고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다'는 지경에 도달할 때까지 다시 읽었고 만족할 때까지 수정해서 인쇄를 넘겼다. 출판사에서 시안이 왔고 다시 수없는 교정본이 오갔다. 마지막 교정본이 넘어가고 인쇄 허가가 떨어졌다.

'혹시 시안 좀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기자단 중에 한 분에게서 톡이 왔다. 자신 있게 시안을 보내주었다. 얼마 후, 그의 기사에서 발견한 탈자에 굵은 싸인펜 표시가 넘어왔다. 이미 인쇄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문장부호 한 개가 빠져있었다. 자기 기사를 직접 교정하는 기회를 줬어야 했다. 그것이 최고의 교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펼쳐보고 싶은 욕구 자극하는 신문
 
▲ <동기부여> 마을 신문 우여곡절 끝에 세번째 발행에서 내 이름을 올린 신문.
ⓒ 오창경
드디어 삼세번의 신문발행을 앞두게 되었다. 조금 서운한 감정을 보탠 감동이 몰려왔고 가슴이 벅찼다. 지난 두 번의 발행에서 느끼지 못했던 무거운 책임감과 보람도 밀려왔다.

사진, 삽화, 기사 등 모든 것이 잘 나왔다. '부여군 마을공동체 이야기 <동기부여> 마을신문 창간 준비 4호'(창간호는 내가 개입하지 않았다)는 이렇게 나왔다. 물론 이번에는 발행인에 내 이름을 당당하게 썼다.

신문이 배포될 시기는 새해 첫 주였다. 1면에 해돋이 사진(부여에서 활동하는 전문 사진가를 섭외해서)을 넣었더니 맛난 음식이 앞에 있는 것처럼 신문에서 구미가 확 당겼다. 펼쳐보고 싶은 욕구를 자극했다. 소식지를 만들기 위해 출판사에 동행했던 마을 사람들이 내 신문을 보더니 다른 샘플들은 보지도 않고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복잡한 과정이 없는 계약이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사는 이야기 섹션에 사진과 함께 삽화를 넣은 것도 신문을 고급스럽게 보이게 했다. 마을 기자들의 이름도 사는 지역명과 함께 기사의 앞머리로 배치했다. 지난 번처럼 이름이 바뀌는 실수도 줄이고 자존감을 높여주고자 하는 의도였다. 시행착오를 통해 배운 것이었다.

'다들 기사 좋다고 칭찬도 많이 해주시더라구요. 우리 기자단 활동과 마을 이야기가 널리널리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어설픔을 규격화로 전환해 가며 기자단 활동도 이끌고 신문 배포까지 담당하며 '열 일'을 한, 부여 지역공동체 활성화재단의 성혜연 주임의 한 마디에 부여 마을신문 기자단들의 단톡방에 웃음꽃이 피었다.

어쩌다 마을신문 기자로 이름을 걸었다가 <동기부여> 마을신문에 기사가 실린 계기로 글쓰기에 동기부여가 되는 활력이, 2023년에는 부여 마을신문 기자단에게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 <동기부여> 마을신문 <동기부여> 마을신문의 내용들
ⓒ 오창경
 
▲ <동기부여> 마을신문 마을신문의 마지막 면을 삽화와 사진으로 볼거리를 더했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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