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꿈 이뤘지만…산 넘어 산 '납품대금 연동제'

최동현 2023. 1. 4.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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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일단 개문발차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산하 대·중소기업 상생 특별위원회에서 최근 100일간의 활동을 마친 한 위원이 '납품대금 연동제' 법안 통과를 두고 한 말이다. 그의 이 발언은 연동제 도입을 둘러싼 중소기업계의 두가지 시선을 잘 대변한다. 14년간의 숙원이었던 연동제 법제화에 그만큼 간절했다는 것과 법안이 그 자체로 아직은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연동제 10월4일 본격 도입…부작용은

중소기업계가 납품대금 제값받기를 위한 기자회견을 연 모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정부는 납품대금 연동제를 담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지난 3일 공포했다. 시행은 10월4일부터다. 납품대금 연동제란 원청업체와 하청업체가 거래를 할 때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대금에 자동으로 반영하도록 하는 제도다.

개정안의 핵심은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납품대금 상승폭을 약정서에 기재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납품 대금에서 주요 원재료가 차지하는 비율이 10% 이상인 경우 연동제를 적용한다. 조정 요건은 주요 원재료 가격이 계약 주체 쌍방이 정한 비율(10% 이내) 이상 변동하는 경우다.

문제는 지난해 11월 여야가 연동제 법안 최종안을 다듬는 과정에서 슬그머니 끼어든 '예외조항'이다. 위탁기업이 소기업이거나 납품대금 1억원 이하, 90일 이내의 단기 계약, 계약 주체 쌍방이 연동하지 않기로 합의한 경우엔 납품대금 연동에 관한 내용을 약정서에 적지 않아도 된다.

이와 관련해 중소기업계에서는 벌써부터 각종 꼼수가 난무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부산·경남지역에서 20년째 철강업을 하고있는 김모 대표는 "발주처가 연동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합의하자고 하면 솔직히 거절할 자신이 없다"면서 "납품대금 조정협의제처럼 유명무실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2009년 연동제 대신 납품대금 조정협의제를 도입했지만 여태껏 단 한건도 이 제도를 현장에서 활용한 사례가 없다. 갑의 위치에 있는 발주처에 단가를 올려달라고 하면 계약이 취소될 것을 우려해 제도를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이른바 '쪼개기'를 통해 연동제를 우회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인천 서구 경서동 경인주물공단 내 한 기업 임원은 "법인을 소기업 단위로 분할하거나 1년짜리 계약을 90일 이내의 단기 계약 4~5개로 바꿔 작성하면 되지 않겠나"라며 "왜 이런 뻔한 구멍을 만들어뒀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연동제를 적용하는 원재료 범위가 협소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행대로라면 단순 원재료의 가격 변동만 납품대금에 반영하면 그만이다. 인건비·운임·전기·난방비 등의 인상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김남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변호사)은 "납품대금 연동 기준은 원자재 가격이 아닌 공급원가로 해야 한다"며 "원자잿값으로 하면 인건비 비중이 높은 조선업 등에서는 인건비가 올라도 납품대금을 조정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연동제 안착 위해 정부역할 중요"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수도권평가부에서 본지와 인터뷰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법에 허점이 많은 만큼 연동제 조기 안착을 위한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연동제를 적용한 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지원에서 배제하는 등 상생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주무부처와 관계기관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21일 발표한 '2023년 경제정책방향'을 보면 연동제를 도입한 대·중견기업에 1조원 규모로 특례대출·보증을 공급하는 등 인센티브를 마련해 놓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연동제 계약 체결 여부 등에 따라 하도급 평가 때 가점을 제공하는 하도급 분야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 기준을 개정했다. 동반성장위원회도 올해 동반성장지수 평가 지표에 연동제 도입 여부를 포함하는 것을 검토중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연동제 시행을 위한 하위 법령을 오는 2월까지 마련하고 이 과정에서 인센티브 강화와 관계기관 협업 등 연동제 안착을 위한 활동도 이어갈 계획이다.

중기부는 향후 법안이 시행되면 직권조사와 실태조사 등을 통해 위반 사례에 적극 대응할 방침이다. 독소조항 악용할 경우 법개정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영 중기부 장관은 최근 본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모법이 있을때 법을 개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면서 "자율적으로 하라고 했더니 안되면 입법할 것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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