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도 토큰으로 거래 … STO 새 시장 열리나
증권업계, 신규 먹거리로 사업 준비 박차
[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증권형 토큰(STO)의 제도권 진입이 가시화되면서 금융투자업계가 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는 1월 중 STO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에 발맞춰 업계가 사업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4일 금융당국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는 곧 STO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국회의 디지털자산기본법(가상자산업권법) 제정 속도가 더뎌 행정부가 별도의 가이드라인을 공개해 시장의 혼란을 막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증권성을 갖춘 토큰의 정의와 유통을 위해 가이드라인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게 금융위의 입장이다.
당초 정부의 자본시장 분야 국정과제 중 하나인 '증권형 토큰의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 후속 조치로 지난해 말에 기준을 발표하기로 했지만, 준비 작업이 늦어지면서 해를 넘겼다. 최근 가상자산 시장에서 잇따라 사고가 터져 STO 가이드라인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크다. 관련 사업을 명확하게 운영하기 위한 금융당국의 기준 제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금융위 측은 "1월 안에 공개할 것"이라며 "시세조종이나 불공정거래 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STO의 발행·유통 시장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디지털자산은 크게 STO와 같은 증권형 자산과 가상자산과 같은 비증권형 자산으로 나뉜다. STO는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과 달리 주식처럼 실물 가치에 기반을 두고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토큰 형태로 발행된다는 점에서 증권성을 갖춘 것으로 분류된다. 자본시장법상 증권에 해당하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감독하는 제도권에 편입되면 다양한 투자자 보호장치가 적용될 예정이다.
무엇보다 고가 미술품, 자동차, 저작권 등 증권화가 어려웠던 자산을 수천, 수만개 토큰으로 발행하는 게 가능하다. 토큰을 보유하면 해당 자산의 지분을 보유하는 것과 같은 효력이 생긴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고가의 미술품·부동산 등 실물자산을 작은 단위로도 쪼개서 투자할 수 있다. 다양한 자산을 분할 소유(조각투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으며, 실물 가치에 근거하기 때문에 다른 디지털자산보다 위험(리스크)하지 않다.
금융당국에 발맞춰 유관기관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5월 전략기획부 산하에 '신사업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STO 시장 진출을 준비해온 한국거래소는 STO를 거래하는 디지털증권시장을 열기로 했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올해 STO를 상장하고 거래하는 디지털증권시장을 개설할 계획"이라며 "아직 증권형 토큰 시장이 크지 않아 작게 시작하지만 앞으로 새로운 본부를 설치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부산에 본부를 설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는 증권사와 함께 대체거래소(ATS) 설립을 준비 중이며, ATS에서 STO 거래를 다룰지 검토 중이다.
증권업계는 실물자산을 유동화하기 쉽다는 장점에도 정부의 가상자산 시장 진출 규제에 막혀 섣불리 STO 사업에 뛰어들지 못했다. 그러나 새 정부가 STO와 관련해 자본시장법 규제 체계에 따라 발행할 수 있도록 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발행이 허가되면 증권사는 일반 증권에 비해 저렴한 비용으로 증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증권업계가 STO를 신규 먹거리로 삼고 사업 준비에 속도를 내는 배경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어떤 기초자산이든 토큰화할 수 있는 플랫폼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의 계열사이자 블록체인 전문 기업인 람다256과 협업 중이며, STO 플랫폼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기능 검증(PoC)에 착수했다.
신한투자증권도 블록체인 컨설팅을 지원하는 람다256과 제휴를 맺고 STO 플랫폼 사업을 추진 중이다. ▲블록체인 인프라 구축 ▲디지털 지갑 설계 ▲토큰 발행·청약·유통 ▲기존 금융시스템과 연동 등 증권형 토큰 관련 기술을 내재화할 계획이다. 신한투자증권 관계자는 "증권형 토큰 플랫폼 구축 사전 태스크포스를 꾸렸고, 당국의 가이드라인에 발맞춰 내부 시스템을 설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KB증권은 최근 STO 플랫폼 핵심 기능 개발과 테스트를 완료했다. 토큰 발행, 지갑으로의 분배, 스마트 콘트랙트를 활용한 상품 거래 등의 기능 테스트를 진행했다.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 공개 후 상반기 안에 플랫폼을 공개할 방침이다.
키움증권은 부동산 유동화 수익증권을 디지털 증권으로 발행하는 플랫폼인 펀블과 디지털 부동산 수익증권 관련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부동산 디지털 수익증권 거래소 카사와 업무협약으로 플랫폼 사업 협력도 검토 중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증권사가 STO 기술력을 이미 갖췄기 때문에 시장이 열린다면 바로 관련 사업을 할 수 있다"며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이 발표되면 이에 맞춰 본격적인 선점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장자산 업계도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 발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가상자산의 증권성을 따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금융당국이 자본시장법 규칙을 구체화해서 행정 가이드라인을 제안하는 수준에서 발표할 것으로 보여 가상자산의 완벽한 증권성을 검증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금융위는 STO 가이드라인을 일반 증권과 동일한 수준으로 정의 중이다. 가이드라인에는 가상자산의 증권 판별 가능성이 큰 경우와 작은 경우, 투자성이 높은 경우, 사용 가치가 높은 경우 등의 예시를 담을 예정이다. 토큰에 적용하기 위한 증권 개념을 신설하는 게 아니라 자본시장법상 증권의 개념으로 정의되는 토큰과 그렇지 않은 토큰을 거래자·금융당국·발행자가 명확히 예측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게 목적이다.
금융위의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가상자산 발행사·거래소들은 자신들이 발행·유통하는 가상자산의 증권성을 따져보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증권형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자산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가장자산 업계 관계자는 "리플의 증권성 여부를 두고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리플랩스의 소송 결과가 국내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에도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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