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동철 칼럼] 노동 개혁 성공하려면
개혁 필요성 거듭 강조하고
강력한 추진 의지 피력해
경제 성장 견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 등 명분에도
일방 추진으론 성과 기대 어려워
노사 이익 균형 꾀할 패키지
정책들로 사회적 대타협
모색하는 게 현실적인 해법
“노동 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 나가야 합니다. 변화하는 수요에 맞춰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바꾸면서 노사 및 노노(勞勞) 관계의 공정성을 확립하고 근로 현장의 안전을 개선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새해 첫날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낭독한 신년사의 한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을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하고 그중에서도 노동 개혁을 우선 추진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신년사와 2일 5부 요인 등이 참석한 신년인사회, 이어진 경제계 신년인사회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3대 개혁, 특히 노동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에 초강경 대처 이후 지지율 회복에 고무된 듯 올해는 노동 개혁을 과감하게 밀어붙일 태세다.
노동 개혁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기존 노사 관계가 포괄하지 못하는 특수형태근로 종사자 급증, 비정규직 증가와 노동시장 양극화 심화, 평생 직장의 퇴조, 인공지능(AI)의 노동력 대체 등 환경 변화에 맞춰 철 지난 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개혁은 노동시장 종사자들의 임금, 근로시간 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기존 제도에서 상대적으로 혜택을 누리는 이들의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다. 개혁 방향과 내용이 특정 집단이나 계층만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 확대로 이어질 것이란 공감대가 형성돼야 추진 동력이 생기고 그래야 이행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정부가 중립적인 중재자로서, 노사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이익의 균형을 도모하겠다는 입장을 취하는 게 필요한 이유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정부의 개혁 방향과 추진 방식은 우려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다. 윤 대통령과 노동 당국 고위 관계자의 발언, 정부의 의중이 반영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지난달 권고안 등을 종합해 보면 개혁의 초점은 노동의 유연성을 높이고 기업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쪽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 기간 확대, 연공형에서 직무·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 개선 등이 핵심 과제인데 재계가 줄곧 요구해 온 사안들이다. 노동계, 특히 민주노총을 기득권 집단으로 낙인찍고 양보를 압박하는 듯한, 고압적이고 일방적인 추진 방식도 문제다. 과도한 요구와 일탈 행위, 강경 일변도 행태 등으로 불신을 받고 있는 노조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일부의 문제를 일반화해 노조를 적폐로 몰아가는 것은 노동계의 반발을 키울 뿐이다.
정부는 경제 성장 견인과 함께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개혁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사회적 불평등과 노동 자원의 적절한 배분을 저해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이중구조 해소의 해법을 노동 기득권의 축소에서 찾는 것은 번지수가 틀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현격한 임금 격차는 우월적 지위의 대기업이 거래 중소기업과 하청기업에 합당한 몫을 지불하지 않거나 인건비를 줄일 목적으로 사내하청, 외주화 등을 무분별하게 확대해 온 게 더 큰 원인이다. 노조 조직률이 14%를 약간 웃도는 현실에서 노사 자율로 근로시간 선택권을 확대하는 것은 노조가 없는 대다수 영세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만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하려면 근로시간 제도·임금체계 개편과 함께 불공정 거래 행위 규제, 근로감독 강화, 플랫폼종사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에 대한 안전망 확충, 재취업 교육 강화, 노동기본권 확대 등의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노동 개혁은 노동계의 협조나 양해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노조의 동의가 필요하고 근로기준법 등 법 개정이 필요한 과제들이 상당수여서 정부가 ‘중꺾마’로 밀어붙인다고 성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노동계를 개혁의 동반자로 인식하고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미래노동시장 연구회가 추가 과제로 권고한 근로조건 격차 해소 및 상생방안 모색,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구현 방안 모색, 플랫폼종사자 보호 등과 연계해 노사정 대타협을 추진할 필요가 있겠다. 인식의 차이가 크더라도 끈기 있는 논의를 통해 접점을 확대해 가고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의 협조도 구하는 게 그나마 노동 개혁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일 것이다.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기영 집 혈흔 4명 것이었다…동거녀 시신 “땅에” 번복
- 달에서 본 지구, 신비로워라…‘다누리’가 보내온 사진 [포착]
- “주유소 날릴 뻔” 주유기 꽂은채 출발한 아우디 [영상]
- 간호조무사가 600번 넘게 제왕절개·복강경 봉합 수술
- 국민연금, 두 갈래 길…‘더 내고, 더 받나’ VS ‘돈만 더 내나’
- “밤낮없이 우는 아기 죄송”… 이웃 “반가운 소리” [아살세]
- “이기영, 2번 결혼했다 이혼…아들도 있다” 지인 증언
- 딸 데려간 러군…우크라 엄마, 버스타고 11일간 달렸다
- ‘월 1200만원’ 벌어야 서울에 집 산다… 사상 최고 경신
- “6층 미화 아줌마예요”…택배속 ‘뜻밖의’ 돈과 편지 [아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