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방음터널을 걷어내라
구랍 29일, 과천 방음터널 화재로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언론의 진단은 다양하다. 불이 붙기 쉬운 재료, 소방설비를 강제하지 않았던 법규, 차단기가 제때 작동하지 않았던 점. 예의 선진국의 사례가 등장한다. 선진국과 달리 관련 규정이 허술했다고 하지만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선진국에서 방음터널을 본 적이 있었던가?
방음벽은 우리나라 도시에만 있는 특이한 구조물이다. 쾌적한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소음원인 도로에 벽을 세워 소음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그건 도시라는 정주형식에 대한 몰이해 내지는 오해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도시는 공화와 공공선의 의미가 물리적으로 구현되는 공간이다. 공화는 근대 서구의 자유주의를 보완하기 위한 개념인데, 공동체 구성원의 약간의 양보와 기여로 ‘공공선’이 생겨나고 그 혜택으로 공동체는 물론 개인도 훨씬 더 큰 행복을 누린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광장이 있다. 광장이 효과적으로 되려면 일정한 형태를 갖춰야 하는데 대개는 볼록한 형태다. 이를 위해 주변의 건물은 모양이 찌그러지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건물의 쓰임새나 시공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대가로 광장이라는 공공선이 생겨나며, 혜택은 도시 전반이 나눠 갖는다. 특히 건물은 ‘광장 앞 건물’이라는 지위를 얻게 돼 평범한 건물의 몇 배 가치를 갖게 된다. 간단한 산수다.
공공선의 반대 경우도 있다. 공과 사, 전체와 부분을 뒤집은 것이다. 즉, 도시의 내부에 들어와 혜택을 누리며 살면서도 개인의 이익만을 좇아 도시 전체의 공익에 무관심한 태도다. 방음벽이 대표적이다. 도시 미관이나 이웃과의 단절 같은 공동체의 손실에는 관심이 없다. 벽을 세워서라도 고요하고 쾌적한 개인의 주거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주거지역으로 도로가 난 경우도 있지만, 원래 도로가 있었고 거기에 집을 지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애초에 주거로는 적합하지 않은 땅이라면 다른 용도로 쓰거나 건축물 배치나 구조를 바꾸거나 창을 덧대서 스스로 소음을 피하는 집을 짓는 게 마땅한 해결책이었을 것이다. 높은 담을 쌓아 자신을 스스로 가두고 경관을 해치는 일이 도시에서 벌어진다.
철도변이나 공장 등 소음이 심한 곳에만 설치되던 방음벽이 이제는 웬만한 도로마다 있다. 외곽순환도로를 따라 돌다 보면 방음벽이 이어져서 어느새 서울은 견고한 성곽도시로 보일 정도다. 색을 칠해보기도 하고 담쟁이넝쿨로 위장해보기도 한다.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투명한 재료로 바꿔 보지만 새들이 날아와 부딪히는 바람에 새들의 무덤으로 불릴 정도다. 어떤 경우라도 도로변 먼지는 피할 수 없으니 도시 경관은 처참해진다.
방음벽을 점점 높게 짓다가 도로를 향해 구부리기 시작하더니 극단적으로 둘러싸는 형태로 변형되는데 이게 바로 방음터널이다. 멀쩡한 평지 도로에 뚜껑을 씌우고 터널이라 부르며 여기에 환기시설을 갖추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하늘 대신 먼지를 뒤집어쓴 터널 안을 달리는 기분이 유쾌할 리 없다. 공공선의 다른 극단에 있으니 가히 ‘공공악’이라 부를 만하다. 비합리적 모순이며 무모하고 비논리적인 시설이니 선진국 도시에서는 비슷한 사례조차 찾기 쉽지 않다. 이번 사고는 애초부터 있을 필요도 없는, 혹은 도시에 있어서는 안 되는 구조물을 만든 것에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이참에 방음터널은 모두 걷어내는 것이 어떤가? 도로에서 하늘을 빼앗고 도시 경관이나 공동체 의식을 위협하는 공공악이며, 이제는 안전마저 위협하는 흉물임이 드러난 교훈적 사고가 아닌가.
본가로 향하는 새해 아침부터 방음터널을 지나며 폐소공포증이 몰려온다. 언젠가 외신에서 본 팔레스타인 장벽에 어지럽게 적혀있던 낙서가 떠오른다. “다리는 희망을 만들고 장벽은 두려움을 만든다.” 두려움보다는 희망이 가득한 도시에 사는 게 새해 소망이 됐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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