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사면 고맙다" 말 안했지만 윤 대통령 위해 기도했다 [서승욱 논설위원이 간다]

서승욱 2023. 1. 4.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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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욱 논설위원

수사지휘하고 사면한 윤 대통령,MB와의 기막힌 인연

이명박(MB) 정부와 청와대를 옮겨 놓은 듯했다. 사면·복권된 MB가 서울대병원을 퇴원한 지난달 30일 오후 1시 56분 논현동 자택 앞 풍경이다. 300여명의 인파로 폭 5m 좁은 비탈길이 가득 찼다. 친 MB계 좌장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의 모자 쓴 모습이 먼저 눈에 띄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와 윤증현(기획재정부)·김성환(외교통상부)·맹형규(행정안전부) 전 장관, 류우익·임태희·하금렬 전 비서실장과 김두우ㆍ홍상표ㆍ최금락 전 청와대 홍보수석, 현역 의원 중엔 권성동·조해진·윤한홍·박정하 의원 등 MB계 핵심들이 모였다. 과거 MB 청와대를 실질적으로 움직였던 실세 비서관·행정관도 수두룩했다.

지난달 30일 신년 특별사면으로 논현동 자택에 돌아온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MB "일부러 어깨에 힘 줬다"

"내가 어깨 꾸부정하게 다 죽은 모습으로 나타나면 어떻겠나. 여러분들 내 앞에선 '혈색이 좋다'고 말하겠지만 속으론 '다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겠나. 그래서 일부러 더 어깨에 힘을 팍 주고 꼿꼿하게 서려 했다." 이날 자택에서 만난 옛 동지들에게 MB가 했다는 말이다. 그는 2018년 구속된 뒤 밤잠을 이루지 못했던 구치소 생활도 떠올렸다. "18종류의 약을 처방받았는데 다 소용없더라. 그래서 나중엔 먹는 척하고 다 버렸다. 밤에 사람들 얼굴이 많이 떠올랐다. 내가 교회 장로 아니냐. 성경은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는데, 기도할 때 용서까지는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사랑까지는 안되더라”라고 말해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현장에 있었던 인사는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없는 말을 지어냈거나, 자신의 잘못을 MB에게 덮어씌운 이들을 향한 이야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MB는 이날 자신을 사면한 윤석열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 윤 대통령은 "빨리 건강을 회복하시길 바란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역할을 해주시라"고 했다. MB는 "정부가 성공하도록 열심히 기도하겠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과 MB는 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장과 피의자의 관계였다. 수사 중간발표는 윤 대통령의 오른팔인 한동훈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현 법무부 장관)이 했다. MB 입장에선 자신을 잡아넣은 검사가 대통령이 됐고, 그 대통령에 의해 사면·복권되는 기막힌 운명을 겪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의"밝힌 박근혜와는 달랐다

MB가 구속(2018년 3월)되기 전인 2017년 말이었다. 주일 특파원 부임을 앞뒀던 필자는 출국 인사를 위해 삼성동 사무실로 그를 찾아갔다. 그때 이런 대화가 오갔다.
▶필자="대통령님, 윤석열 중앙지검쪽에선 구속까지는 안 갈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MB= "하하, 그걸 누가 알겠어? 윤석열 마음속에라도 들어갔다 왔다는 얘기야?"

MB는 당시 필자의 전언에 아주 냉소적이었다. 어떤 우여곡절을 거칠지 모르지만, 검찰이 결국은 자신을 구속하리라는 느낌이었을까.

둘 사이엔 앙금이 아주 없을 수 없다. 앞서 사면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교하면 MB의 반응은 분명 차이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말인 2021년 12월 전격적으로 특별사면·복권됐다. 사면이 발표된 날 박 전 대통령은 대변인격인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많은 심려를 끼쳐드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며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사면을 결정해 주신 문 대통령과 정부 당국에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고 했다. 반면 MB는 국민에 대한 송구함은 밝혔지만 사면에 대한 입장·소회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엔 "지금 더 할 말은 없고, 앞으로 더 할 기회가 있겠죠"라고 말을 아꼈다. 대국민 메시지에서도, 윤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도, '사면해 줘 고맙다'는 취지의 확실한 언급은 없었다. 복잡미묘한 감정선이 읽힌다.

윤 대통령과 정책·인적 네트워크 겹쳐

앞서 문재인 정부 말에도, 윤석열 정부로의 권력 교체기에도 MB 사면설이 돌았지만 무산됐다. 그래서 MB 측에선 지난해 8·15 특사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 그러나 경제인 위주의 특사 명단에 MB의 이름은 없었다. 결정적인 순간 윤 대통령 측 핵심 인사가 "사면하면 국정 지지율이 더 떨어진다"고 반대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래서 일부 MB 참모들은 사면에 반대했다는 윤 대통령 주변 인사들에 격분했다. 하지만 MB와 김윤옥 여사의 반응은 달랐다고 한다. "나라가 잘되는 게 중요하다. 정권이 또 반대쪽으로 넘어가면 되겠는가. 윤 대통령과 나라를 위해 기도하자"며 말해 참모들이 놀랐다는 것이다. 밤 9시로 시간을 정해 MB 부부와 참모들이 동시에 윤 대통령과 나라의 성공을 기원하는 '중보기도(仲保祈禱)'를 하기도 했다. 중보기도는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하는 기도다.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 특별사면으로 사면·복권된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논현동 자택에 도착해 대국민 메시지 발표하던 도중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연합뉴스]

서로 반목하기엔 윤 대통령과 MB 사이엔 공통분모가 많다. 특히 현 정부가 MB 정권 시즌2로 불릴 정도로 인적 네트워크가 겹친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요직은 MB 사람들이 꿰차고 있다. 김대기 비서실장은 MB 정부에서 통계청장으로 발탁된 뒤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청와대 경제수석-정책실장으로 승승장구했다. '왕수석'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은 MB 청와대 비서실장실 선임행정관 이후 산자부 핵심 보직을 거쳤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MB 청와대 대변인,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은 2007년 MB 대선 캠프 출신이다. 김태효 안보실 1차장은 MB의 외교 과외선생이었고, 한오섭 국정상황실장은 MB 청와대 정무비서관실의 중추였다. 국민의힘 내 '윤핵관'들도 마찬가지다. 권성동 의원은 MB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했고, 서울시 공무원 출신의 윤한홍 의원은 MB가 청와대 인사비서관실에 발탁됐다. 장제원 의원도 원래 친MB계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2007년 '이명박 대통령당선인 대변인' 출신이고,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MB 청와대 춘추관장·대변인을 지냈다.

자원외교·에너지 분야서 역할 가능성

정책 방향도 유사한 만큼 MB가 전직 대통령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 복잡미묘했던 과거 역정과 악연을 뛰어넘어 윤 대통령을 도울 공간이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미 김대기 비서실장은 지난달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했을 때 윤 대통령 친서와 함께 MB의 서신을 함께 전달했다. 수감 중인 전직 대통령의 서신을 외교에 활용하는 건 이례적이다. 기업인 시절부터 대통령 재임 시까지 UAE 등 중동에 깊은 인맥을 키워온 MB였으니 가능한 일이다. MB는 2015년 출간한 저서 『대통령의 시간 2008-2013』에 "우리나라와 사회로부터 배운 것, 얻은 것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썼다. 향후 행보에 대해 MB의 핵심 측근은 "정치적 행보는 하지 않겠지만, 자원외교나 원전 등 에너지 분야에서 역할이 필요하다면 마다치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측근은 "모든 짐을 다 털어 냈으니,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사시라고 했다"고 전했다.

■ MB의 옆을 지킨 사람들

「 서울대병원에 머물러온 이명박 전 대통령(MB)의 옆을 지킨 이는 부인 김윤옥 여사다. 사면·복권되기 4개월쯤 전부터 병실에서 MB와 함께 생활했다. 밤에도 서울 논현동 자택으로 돌아가지 않고 보호자용 소형 침대에서 지냈다. MB의 측근은 "항상 성경책을 옆에 두고 두 분이 기도하셨다"고 했다. TV도 함께 보곤 했는데 MB는 "채널 선택권이 보호자에게 있다"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고 한다. 김 여사가 계속 병원에 머물렀기 때문에 친구들이나 소망교회 동료 신자들이 병원 휴게실에서 함께 기도하는 일이 잦았다.
김 여사 외엔 장다사로 전 MB 청와대 총무기획관과 이진영·김윤경 전 행정관이 있다. 이들 세 명은 MB 퇴임 뒤 '전직 대통령비서관'이란 별정직 공무원 신분이었다. 징역형으로 MB에 대한 전직 대통령 예우가 박탈된 뒤 면직됐지만, 끝까지 MB 곁을 지켰다. 장 전 기획관은 윤 대통령 취임식에 김 여사, MB의 장남 시형 씨와 함께 초청받았다. 청와대 부속실에서 일했던 이·김 전 행정관은 MB가 재임 시절 “어느 참모도 대신할 수 없는 두 여성 능력자”라고 치켜세우며 신임했다.

서승욱 논설위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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