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구멍 뚫린 신변보호
신변보호의 명칭이 ‘범죄피해자 안전조치’로 바뀐 건 2021년이다. 그해 연이어 터졌던 보복 살인사건의 영향이 컸다.
2021년 11월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30대 여성이 전 연인 김병찬(37)에게 스토킹 협박 끝에 살해당했다. 100m 이내 접근 금지나 스마트워치 지급 같은 비교적 강력한 조치가 이뤄졌지만, 피해자는 경찰이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사이 자신이 살던 오피스텔에 잠깐 들렀다가 참극을 당했다.
직후 12월에는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연인 A씨의 어머니를 살해한 이석준(26)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A씨가 자신을 성폭행 혐의로 경찰에 신고하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 이석준이 흥신소를 통해 알아낸 A씨의 거주지에 택배기사를 사칭해 침입할 때까지 경찰의 신변보호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경찰이 이후 신변보호 시스템 개편에 나섰다. 보복 범죄 우려가 큰 경우에는 인공지능 폐쇄회로(CC)TV 등 첨단 장비를 지원해 보호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112시스템 등록과 맞춤형 순찰을 제공하는 등 위험도에 따라 단계별로 대처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새해에도 신변보호 중 범죄 피해를 보는 일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일에는 경기도 안성에서 한 50대 남성이 전처 B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B씨는 지난해 12월 20일 경찰에 ‘범죄피해자 안전조치’를 요청해 다음 달 19일까지 보호대상이었다.
신변보호 기간 중 위협을 느껴 다시 신고한 2차 신고 건수는 폭증세다.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994건이었던 2차 신고는 2021년 7240건까지 늘었다. 지난해에는 7월까지 접수된 신고 건수만 4521건에 달했다.
경찰은 B씨가 주소 노출 등을 꺼려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신 112 신고가 접수됐을 때 다른 신고에 비해 우선 출동할 수 있도록 112시스템 등록만 했다고 한다. 사건 당일 B씨는 112에 신고하지 않았고, 경찰은 결국 피해자 보호에 실패했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세분화한 신변보호 매뉴얼이 제 역할을 못 했다는 의미다. 정부가 더 적극적인 피해자 보호 대책을 강구할 때다.
한영익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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