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보호하려다 불법 사금융 내몰 판…법정 최고금리 손본다
금융당국이 법정 최고 금리를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리 상승으로 자금 조달 부담이 늘어났지만, 법정 최고 금리는 연 20%에 묶여 그 이상의 이자를 받지 못하는 제2금융권·대부업체들이 대출을 중단하고 있어서다. 이러면 대부업체 등을 주로 이용하는 저소득 계층의 돈줄이 마르게 된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막혀있는 서민 금융의 물꼬를 터주고 접근성 확대 방안 중 하나로 법정 최고 금리 조정을 검토 중이다. 법정 최고 금리는 금융기관이 취급하는 대출상품의 금리 상한을 법으로 정한 제도다. 금융사가 협상력이 떨어지는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금리를 책정해 저소득층이 과도한 이자를 내는 일이 없도록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다.
2002년 처음 도입 때는 연 66%였다. 이후 7차례 조정돼 현재는 연 20%다. 현행 대부업법은 최고 금리를 연 27.9% 이내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7월 시행령을 바꿔 법정 최고 금리를 연 24%에서 20%로 낮췄다. 서민의 이자 부담을 줄여주자는 취지로 그간의 조정은 모두 하향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이 방향성을 바꾸려는 건 현재 법정 최고 금리 수준이 낮은 게 오히려 취약계층의 제도권 금융 이용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2금융권 등의 조달금리 흐름을 볼 수 있는 신용등급 AA+ 카드채·기타금융채 3년물 금리는 2021년 말 2.37%에서 지난해 11월 말 5.92%로 약 1년 새 3.55%포인트 뛰었다. 금융기관 입장에선 대출 원가가 크게 뛴 것이다. 그러면 대출 상품의 가격인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법정 최고 금리인 연 20% 이상으로 이자를 받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들 회사의 선택은 대출 중단이다. 업계 1위 대부업체인 아프로파이낸셜대부가 지난달 26일 신규 대출 중단을 선언한 것을 비롯해 대부업체 상당수가 신규 대출을 중단했다. 제2금융권 관계자는 “자금 조달 비용이 많이 늘어난 상황에서 연체 가능성이 큰 저신용자를 상대로 20% 이하의 대출 이자를 받을 순 없다”고 토로했다.
결국 유탄은 시중 은행 문턱을 넘을 수 없는 서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법정 최고 금리로 돈을 빌리는 이들은 대체로 소득이나 신용등급이 낮은 취약 계층”이라며 “조달금리가 인상되면 이들이 비제도권 금융시장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2020년 11월 법정 최고 금리를 연 24%에서 20%로 낮출 경우 31만6000명이 대출 만기가 도래하는 3~4년에 걸쳐 민간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이 중 12%인 3만9000명은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정부는 시장연동형 최고 금리 제도 등을 도입해 법정 최고 금리를 시장 상황에 맞게 조절할 수 있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금리 인상 시기에는 법정 최고 금리를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대부업법이 정한 연 27.9% 한도 내에서 올리는 방안도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서민층의 금융 접근성 제고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는 단계로, 구체적인 정책 방향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인상까지는 가시밭길이다. 현재 국회에는 되레 최고 금리를 인하하겠다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된 상황이다. 익명을 원한 금융권 관계자는 “가계 전반의 빚 부담이 늘어난 상황에서 법정 최고 금리를 올리자고 주장하기에는 정부와 정치권 모두 정치적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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