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팔리는 TV·반도체…삼성·LG전자 재고만 68조원대
지난해 9월 삼성전자의 재고자산은 57조3198억원이었다. 2021년 말부터 불과 9개월 새 15조9354억원이 불었다. 이 기간에 자산에서 재고가 차지하는 비율은 9.7→12.2%로 커졌다. LG전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2021년 말 9조7540억원이던 재고자산은 같은 기간 1조4531억원 늘어나 11조2071억원이 됐다.
코로나19 재확산과 금융시장 불안 등으로 인한 글로벌 경기 침체로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재고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 3일 중앙일보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국내 재계 15대 그룹 주력 계열사의 재고 현황을 집계했더니 모든 조사 대상 기업의 재고가 전년 말보다 늘어났다.
SK이노베이션은 2021년 말 7조8491억원이던 재고가 지난해 3분기 13조6471억원으로, 같은 기간 현대자동차는 11조6456억→14조7432억원으로 증가했다. 포스코홀딩스 역시 15조2151억→17조4296억원으로 2조2145억원이나 늘었다. 이렇게 주요 5개 기업에서만 28조4984억 원어치의 재고가 늘었다.
기간을 늘려 2020년 말과 비교하면 재고 증가 폭은 더 두드러진다. 한 예로 삼성전자의 2020년 말 재고자산은 32조431억원이었다. 1년 9개월 만에 25조2767억원이 늘었다. 다른 기업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사실 재고 증가를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시장 수요가 늘어나면 기업은 생산을 늘려 대응한다. 또 제품 공급이 끊이지 않도록 넉넉히 재고를 쌓아둔다. 문제는 수요가 늘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쌓이는 재고다. 익명을 원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가전제품은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펜트업 효과(Pent-up effect·억눌렸던 수요가 급속히 살아나는 현상)’가 확연히 사라지고 있고, 반도체 역시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로 당분간 재고가 계속 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현재 쌓이는 재고는 ‘나쁜 재고’란 의미다.
이는 재고 소진 속도를 뜻하는 ‘재고자산 회전율’로도 확인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2021년 말 4.5회였던 재고자산 회전율이 지난해 3.8회로 나빠졌다. 재고 회전 일수가 종전 81일에서 지난해 3분기에는 96일로 길어졌다는 의미다. 좋은 재고라면 회전 일수가 상대적으로 짧다.
나쁜 재고의 증가는 결국 투자와 생산·고용 감소를 불러온다. 이는 다시 소비 위축과 재고 증가라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진다. 삼성이 사장단 회의를 소집하고, SK는 총수가 나서서 ‘위기 극복’을 강조하는 이유다.
주요 대기업은 조금씩 가동률을 낮추는 식으로 대응 중이다. 지난해 3분기 삼성전자 모바일기기(HHP) 공장의 가동률은 72.2%로 전년 말(81.5%)보다 9.3%포인트 하락했다. TV 같은 영상 기기를 생산하는 LG전자 HE사업본부의 공장 가동률은 2021년 말 96.6%에서 지난해 3분기에는 81.1%로 떨어졌다.
나쁜 재고의 증가는 국내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10월 글로벌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는 미국 완성차 회사인 포드와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 등을 과잉 재고 위험이 큰 업체로 꼽은 바 있다.
실제 마이크론은 최근 반도체 수요 부진 등을 이유로 올해 안에 직원의 10%(약 4800명) 감원 계획을 밝혔다. 또 다른 반도체 기업인 인텔 역시 실적 악화 등을 이유로 오는 2025년까지 100억 달러(약 12조7200억원)의 비용 절감 계획을 내놓았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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