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그녀의 지휘 기다린다
“극적인 건 좋지만 감정 과잉은 안 돼요. 비브라토를 줄이고 좀 더 드라이하게 갑시다.”
2일 KBS교향악단 여의도 연습실. 단원들에게 지휘자 성시연(47)이 주문했다. 슈베르트의 ‘아다지오’. 현악 5중주 2악장을 작곡가 박혜진이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한 작품이다. 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대원문화재단 신년음악회에서 세계 초연을 앞두고 있다.
성시연은 지난해 10월 뉴질랜드 오클랜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임명됐다. “캐나다·호주 출신 단원들이 많고 음악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오케스트라”라고 소개한 성시연은 “두 차례 지휘하며 ‘케미’가 잘 맞아서 좋아했었는데 오케스트라에서 제의해 기뻤다. 보수적인 분위기인데 말러를 비롯해 새로운 음악을 많이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2021년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와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을 잇달아 지휘한 성시연은 지난해에는 영국 로열 필 포디움에 섰다. 반응이 좋다. 바이에른은 올해, 로열 필은 내년에도 초청받았다.
“좋은 오케스트라일수록 단원들이 지휘자의 음악적인 영감을 더 요구합니다. 콘세르트허바우 단원들은 저와 시선을 맞추며 경청하더군요. 리허설 땐 울림이 심했는데 관객이 차니 아름다워진 음향도 기억나요.”
성시연은 초등학교 때까지 아버지 직장 때문에 부산에서 살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에는 바다와 부산시향의 연주가 자리하고 있다. 원래는 피아니스트를 꿈꿨다.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던 성시연의 진로를 바꾼 건 지휘자 푸르트벵글러와 아바도였다.
“아바도 지휘 베를린 필의 리허설과 연주를 보면서 가슴이 뜨거워졌죠. 푸르트벵글러가 단원들의 세포 속에 있는 걸 끄집어내서 거대한 음악으로 만드는 영상을 보고 지휘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물어봤다. 지휘자가 되는 게 가능할지. 대부분 말렸다. 이미 나이가 많고 앞으로 시간도 많이 걸린다고. 여자가 하기 어려운 직업이라고도 했다. “인생이 70년이면 2~3년 공부는 결코 긴 시간이 아니라는 어느 지인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는 성시연은 “이렇게 힘든 일인 줄 그때 알았다면 시작도 안 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막상 지휘를 하려니 할 일이 태산이었다. 피아노 공부를 끝내지도 않았는데 시험부터 다시 봤다. 독학으로 스코어 보는 법을 익히며 한스 아이슬러 대학 지휘과에 합격했다. 성시연은 “음악을 숭고하게, 종교처럼 생각하라”던 롤프 로이터 교수의 가르침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숄티 콩쿠르 우승과 말러 콩쿠르 1위 없는 2위 등 잇단 지휘 콩쿠르 입상의 비결을 묻자 “굴하지 않는 성격 덕분”이라고 했다. “숄티 콩쿠르 때 저만 학생이라 주눅이 들더군요. 2차에서 스트라빈스키 ‘불새’를 연주할 때 앙상블이 꼬여서 트럼펫이랑 어긋났는데 금관 주자들끼리 비웃듯 떠드는 거예요. 화가 나서 정색을 하고 다시 처음부터 하자고 단호하게 얘기했죠. 두 번째는 잘 됐어요. 지휘자의 음악적 아이디어가 반대에 부딪히면 설득해야 돼요. 여기서 쉽게 포기하면 단원들에게 존중 못 받죠.”
성시연의 새해 목표는 ‘본질에 충실한 연주’다. 팬데믹을 겪으며 본질에 더 집중하게 됐다고 했다. “피상적인 음악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요. 올해는 한국 연주가 몇 차례 있어서 우리나라 청중과 만날 수 있어 기쁩니다.”
류태형 객원기자·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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