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브리핑] 2017 MBC 잔혹사 ②-88인의 조리돌림

황기현 2023. 1. 3.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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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노조, 비파업기자 88명 축출…쫓겨난 기자들, 창고에 유폐되고 이름조차 생소한 부서 배치
특파원 12명, 절차 무시하고 전원 귀국 조치…보도국 한 가운데서 '특파원의 섬' 고립·격리
배현진, 자유한국당 입당하며 '조명창고 유폐' 폭로…대법원, 회사 측 위법 인정 판결
"해고는 살인" 외치던 언론노조, 줄줄이 해고 자행…순혈주의 무너뜨린 경력직에 대한 강압·차별 극심
MBC노동조합(제3노조)가 2022년 연말에 펴낸 '2017 MBC 잔혹사'.ⓒ MBC노동조합(제3노조)

이름조차 찬란했던 '적폐몰이'의 광기 속에 강제와 유폐, 모욕과 수모만이 악랄하게 반복됐다. 배신자 낙인이 찍힌 비파업자들의 유배지는 다양했지만 하는 일은 단순하고 처량했다. 새벽 한기를 입에 물고 차디찬 아스팔트 위에서 난생 처음 타보는 중계차는 ‘도로 위의 감옥’이었고, 평생 해 오던 내 뉴스도 아니고 남이 던져놓은 뉴스를 하루 종일 눈이 빠져라 복사와 첨부를 눌러대며 색인하는 작업은 당장 다가올 내일 아침을 더욱 구슬프게 만들었다. 그 시절, 상암동에서는 도저히 밥이 안 넘어간다며 마포역까지 와서 기자와 점심을 먹던 한 선배의 황량했던 뒷모습도 애잔하게 남아 있다. 특유의 사려와 하심(下心)으로 매사 긍정적이고 한없이 낙관적이었던 선배도 배갈이 한 잔 들어가면 “저들은 도대체 왜 저러는 것인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가?”라며 울분을 토했다. 짧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회사로 돌아갈 무렵이 되면 점점 어두워지는 선배의 낯빛에 두터운 연민과 안쓰러움은 배가됐다. 부영각의 부추복어살을 유난히 좋아했던 그 선배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친정을 떠났다. 아직도 아무리 돌아가더라도 가양대교와 월드컵대교는 타지 않는다고 한다. -편집자主-


MBC노동조합(제3노조)는 '2017 MBC 잔혹사' 두 번째 장에서 사장까지 일사천리로 몰아낸 언론노조 MBC본부의 '비파업기자' 축출과 보도국 점령 과정 그리고 이를 전후로 그들이 저질렀던 폭거와 만행에 대해 상당 부분을 할애하며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2017년 12월 8일, 김장겸 전 MBC 사장이 해임된 지 25일 만에 보도국으로 들이닥친 언론노조는 보직자석과 각 부서 내근 데스크석 등을 유린하듯이 점거했다. "인사 발령이 없는데, 무슨 근거로 이러느냐"는 일부 보직자들의 분노와 항변이 있었지만 하나마나한 저항이 돼 버렸고, 파업에 가담하지 않은 기자 88명의 이름은 그렇게 뉴스에서 사라졌다.


이날 MBC는 '뉴스데스크'를 통해 "재정비 기간 MBC 보도가 시청자 여러분께 남긴 상처를 거듭 되새기며, 철저히 반성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전했다. 언론노조의 제작 거부에 맞서 뉴스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막고자 안간힘을 썼던 비파업자 88명은 그렇게 '반성의 대상'으로 몰락했다.


쫓겨난 88명에 대한 공식 인사발령이 나기까지는 최소 닷새가 걸렸는데, 이들은 이 시간 동안 가족에게조차 아무 말도 못하고 평소처럼 출근해 회사 근처 카페에서 속앓이를 해야 했다. 3년 남짓 경력의 평기자는 물론, 20년 이상 MBC에 헌신한 국장급 기자도 처지는 마찬가지였다.


2017년 12월 13일, 대규모 인사발령이 났다. 비파업자 대부분은 취재기자가 가는 일이 거의 없던 자리에서부터, 새로 만들어져 이름조차 생소한 부서로 유배됐다. 회사에 자기 자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을 삼아야하는 기막힌 세월이었다.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인사발령 속에서도 '생방송뉴스팀' 발령은 가장 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 보도국을 이끌었던 보도국장은 물론, 뉴스데스크 편집부장, 청와대 출입 기자가 한꺼번에 중계차 PD가 됐다. 이 자리는 현장에 나간 취재기자와 기상캐스터 등을 지원하는 포스트로, 평소 이런 일을 전혀 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추운 겨울 내내 차가운 아스팔트를 딛고 무딘 손놀림과 헛발질을 반복해야 했다. 이밖에도 주말뉴스부장에게 경영직 업무를 맡기거나 보도국 소속 직원을 기술연구소로 보낸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비파업자 축출을 마무리한 '점령군'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2017년 12월 19일 소집한 'MBC 특파원 평가 위원회'에서 특파원 전원(12명)에게 2018년 2월 28일까지 귀국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조직 개폐는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절차가 무시된 공지였다. 임차 기간이 남은 탓에 뉴욕과 런던지사가 물어야 하는 10억 원 안팎의 위약금도 회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언론노조가 장악한 보도국 한 가운데는 소환당한 특파원들이 '조리돌림' 당하며 격리, 고립돼 있는 '특파원의 섬'이 생겼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뉴시스

그렇게 언론노조의 광기가 수위를 높여가던 2018년 3월 9일, 배현진 전 뉴스데스크 앵커가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배 전 앵커는 영입환영식에서 "조명기구 창고에서 업무 발령을 기다리며 대기 상태로 지냈다"고 폭로했다. 배 전 앵커를 포함, 전직 보도간부 6명이 사실상 유폐된 채 몇 달을 비참하게 견뎠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MBC 측은 "사무실 바깥쪽 복도에 조명기구가 쌓여있긴 했지만 창고가 아닌 사무실"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20년 9월 '조명창고'에 발령났던 박용찬 전 논설실장이 제기한 소송에서 회사 측의 위법을 인정,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라는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명창고' 논란 이후 한 달이 지난 2018년 4월 16일, MBC는 보도본부 산하에 '뉴스데이터팀'을 신설했다. 이 팀에는 '조명창고'에 유폐됐던 사람들과 귀국한 특파원 일부, 전임 보도본부장과 시사제작국장 등이 모였다. 언론노조는 이들에게 파견직 직원들이 맡았던 '복사'와 '첨부' 등의 단순 업무를 맡겼다. '뉴스투데이'를 리포트 별로 편집, 서버에 등록하며 색인을 입력하는 게 이들이 하는 일의 전부였다. 20~30년 경력의 취재기자들은 조롱과 멸시를 넘어서는 모멸감에 하루 하루가 아득해졌다.


'뉴스데이터팀'에 발령받지 않은 비파업자 가운데 일부는 보도 NPS부 산하 '영상관리팀'에 유배됐다. 이 곳에서 차장급 기자들은 사실상 '속기사' 업무를 수행했다. 이 역시도 카메라 기자가 촬영한 원본 파일에 담긴 질의응답 내용을 워딩 그대로 받아쳐서 입력하는 단순 작업이었다. '업무 부여'라기보다는 '모욕'에 가까운 처사였다. 2021년 10월 27일 서울고등법원은 "뉴스데이터팀의 업무가 기자 업무로 볼 수 없는 단순 반복 작업이었다"며 "종사했던 기간 기자 업무수행을 통해 이뤄지는 인격적 실현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당했다"고 판시했다. 2022년 8월에는 뉴스데이터팀과 영상관리팀에서 일했던 6명에게 1인당 700만~1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야근 업무도 당연히 비파업자들의 몫이었다. 2020년 4월 23일, 당시 국제부장이던 모 씨가 '국제부 야근 업무 부담을 줄이겠다'며 비파업기자 3명에게 야근 전담 업무를 지시했다. 국제부에서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3일 주기로 교대 근무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야근 전문기자'로 지목된 3명은 예외없이 모두 비파업기자였다.


임신 중인 여기자에게 영상편집 업무를 지시하며 교육을 강요해 유산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2020년 1월 15일 자 MBC노동조합 성명에 따르면, 이 여기자는 교육 담당 부장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고 태아를 위해 강제 교육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부장은 "육체적으로 특별히 무리를 주는 커리큘럼이 아니고, 무리한 스케줄로 운영하고 있지 않다"며 거절했다. 며칠 후 태아는 사망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전경.ⓒ 데일리안 DB

"해고는 살인"이라고 절규하던 사람들의 해고는 더 무서웠다. 2018년 5월 11일, 워싱턴 특파원으로 있다가 소환돼 정상위원회 조사를 받아온 현원섭 기자가 해고됐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논문 표절 의혹을 보도한 것이 사규 및 취업규칙 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후 현 기자는 재판을 거쳐 복직 결정이 난 뒤에도 또다시 '정직 6개월'이라는 보복성 징계에 처해졌다. 현 기자 뒤로도 모 아나운서와 카메라기자, 보도제작국 부국장 등이 줄줄이 해고됐다.


경력기자들을 향한 강압과 차별은 더욱 집요했다. "너희가 MBC에 있어야 할 이유를 대라"는 모욕과 "조사 결과에 따라 채용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겁박이 매일 매일 반복됐다. 견딜 수 있을 줄 알았던 응어리가 어느덧 켜켜이 쌓여 정말 살려고 도망치듯이 회사를 떠났던 한 명예퇴직자는 "2017년 언론노조가 저렇게까지 잔인하고 잔혹하게 보복한 이유 중에 하나가 자신들의 빈 자리를 경력기자들이 채웠기 때문"이라며 "오랜 파업의 동력으로도 볼 수 있는 MBC라는 드높은 자부심, 이 근간을 이루는 순혈주의의 틈새를 경력직들이 무임승차 하듯이 파고드는 현실을 도저히 묵과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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