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 위기는 가짜다” 尹정부 작심 비판한 교수
“시행 전후 누적적립금 차이 없어…초음파·MRI 남용 영향도 미미”
GDP 대비 공적 의료비 지출, OECD 평균 6.8%…한국 4.8%
국고지원 제도 결국 일몰
‘문재인 케어’ 시행 이후 국민건강보험이 재정 위기를 맞았다는 윤석열 정부 주장에 전문가들이 반기를 들었다. 오히려 보장성을 지금보다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건강보험 흔들기 배경에는 민간보험사 배 불려주기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건강보험 재정이 위기에 처해있어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윤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무회의를 통해 “건강보험의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건보 재정 위기 주범으로 전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인 문재인 케어를 꼽았다. 초음파와 자기공명영상(MRI)이 문재인 케어 첫 해인 2018년 1800억원에서 지난해 1조8000억원으로 3년새 10배 급증했다는 근거를 들었다. 외국인 무임승차나 자격도용도 막지 못했고 연평균 보험료율 인상도 박근혜 정부 때보다도 높았다는 입장이다.
여당과 복지부도 청와대와 보폭을 맞췄다. 여당은 ‘건보 기금화’ 안을 내놨다. 지난해 11월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은 건보 사업에 사용하는 기존 적립금을 건보 기금으로 변경, 설치해 정부가 관리 운영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금화가 되면 건보는 다른 사회보험 재정과 마찬가지로 기획재정부가 총괄하게 된다. 또 기금 운용계획은 국회 심의, 의결을 거쳐 확정되고 국회에 결산 보고를 하게 된다. 복지부는 지난달 MRI, 초음파 보험 적용을 축소하고, 의료쇼핑·무임승차자 방지책을 담은 대책을 발표했다. 외래 과다 이용자에게는 본인부담을 최대 90%까지 끌어올리는 방안도 포함됐다.
건강보험 재정, 정말 위험할까…“동의 못 해”
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참여연대와 무상의료운동본부 등 주최로 ‘윤석열 정부의 긴축기조에 따른 건강보험 보장성 정책 후퇴 문제점과 대응 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김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건강보험 재정 위기는 ‘가짜’”라고 못 박았다. 건강보험은 1년 단위로 수입과 지출 규모가 결정되는 단기 사회보험이다. 재정위기라고 말하려면 건강보험이 진료비를 지급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야 한다. 적립금을 많이 쌓아둘 이유가 없다. 김 교수는 “단기보험에서 적절한 수준의 적립금은 보통 20%(14조원)에서 많이 책정하면 30%(21조원)”이라며 “현재는 적정 수준 이상 적립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역시 “2021년 말 기준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은 약 20.2조원으로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문재인 케어 이후 재정위기가 심화됐다는 주장도 앞뒤가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정부 주장대로라면 문재인 케어 시행 이후 적립금은 줄었어야 한다. 하지만 누적적립금 추이를 살펴보면 문재인 케어 시작 전인 지난 2016년에는 20조1000억원이었다가, 2021년 말에는 20조2000억원이었다. 별 차이가 없었던 셈이다. 건강보험 재정 누수 원흉으로 지목된 MRI, 초음파로 낭비된 재정은 얼마나 될까. 김 교수는 감사원 보고서를 들어 초음파와 뇌 MRI 검사 중 남용은 약 9% 수준이고, 이로 낭비된 진료비는 약 2000억원으로 1년 건강보험 진료비 100조원의 0.2%에 불과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김 교수는 오는 2040년 누적 적자가 678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감사원, 기재부 추계에 대해서는 오는 2026년부터 2040년까지 정권이 세번 바뀌는 동안 보험료 인상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면서 “매우 비현실적”이라고 꼬집었다.
“건강보험 지출 많다? 너무 적어서 문제”
그렇다면 왜 윤석열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위기론을 자꾸 거론하는 걸까.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윤 대통령 당선 직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건강보험제도의 높은 보장성이 기업 재정 부담을 높인다는 보고서를 냈다. 윤 정부는 반년 만에 건보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면서 “건강보험 보장성 축소는 기업에게 여러모로 이롭다. 건강보험이 축소되면 민간보험 시장이 확대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특히 건강보험공단 인력 감축으로 당뇨, 고혈압 등 일차의료 담당 부서가 축소·폐지를 앞두고 있고 이를 대신 민간보험사들이 할 수 있도록 복지부가 시범사업 중이라는 점을 들었다. 대기업 민간보험사들은 정부 보험을 대체할 수 있는 포괄적 보험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 전 국장은 “윤석열 정부가 건강보험을 공격하는 것은 철저히 경총 같은 기업주들의 입장을 고스란히 대변한 것”이라며 “민간보험을 활성화시켜 미국식 의료제도로 향하는 시도”라고 우려했다.
건강보험 지출이 많아서 문제가 아니라 너무 적어서 문제라는 게 시민단체의 지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한국 정부가 지출하거나 건강보험으로 보장하는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4.8%다. OECD 평균 6.8%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부가 지금보다 공적 의료비 1.4배를 더 써야 가까스로 OECD 평균에 근접한다는 뜻이다. 반면 민간보험에 의존하는 비율이나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의료비의 GDP 대비 비율은 한국이 3.3%로 OECD 평균 2.2%보다 1.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고지원 제도 결국 종료…“정부 무슨 노력 했나”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 제도가 종료된 점도 도마에 올랐다. 국민건강보험법 제108조는 정부가 매년 ‘예산 범위에서 건보료 예상 수입액의 20%에 상당하는 금액’을 일반회계에서 14%, 담뱃세(담배부담금)로 조성한 건강증진기금에서 6%를 각각 충당해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일몰 기한을 5년 연장하는 방안을 제시한 반면, 야당은 일몰제를 아예 폐지하고 지속적인 국고지원을 해야 한다고 맞서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제갈현숙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강사는 “정부는 일몰제와 관련해서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계속 고령화를 언급하며 불안을 조성하면서도 보장성 축소 논리를 내세우는 것 외에 다른 무슨 노력을 했나”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비롯해 건강보험과 관련한 정책 결정에 의료인, 정부 등 공급자 참여 비율이 너무 높다. 가입자들이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제한적”이라고 짚었다.
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은 현재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고령화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손호준 복지부 보험정책과장은 “지난달 내놓은 개편안은 건강보험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 공공보험을 축소하거나 그런 시도는 절대 아니다”면서 “재정을 좀 더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는 방안들, 제도·구조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 올해 진행되는 건강보험 2차 종합계획에 담아 발표하도록 하겠다”고 부연했다.
마지막으로 이날 토론 참석자들은 전 정부, 이번 정부 할 것 없이 건강보험을 정쟁에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한 목소리로 촉구했다. 김 교수는 “건강보험은 건강, 의료비 부담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필수적인 사회적 장치”라면서 “건강보험을 제발 정쟁 소재로 삼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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