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위 감독을 시즌 도중 경질…‘비상식’ 흥국생명은 변하지 않았다 [V리그]
과거 수 많은 문제 제조한 흥국생명…김연경 FA로 구단 떠날 가능성도 제기
흥국생명이 또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흥국생명 배구단은 2일 “권순찬 감독과 헤어지기로 결정했다”고 밝히며 “권 감독은 당분간 고문 형태로 팀에 계속 조언 등을 해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해 4월 박미희 전 감독에 이어 흥국생명 사령탑으로 부임한 권 감독은 9개월여 만에 물러나게 됐다. 사실상 경질에 가까운 처사다. 권 감독의 자리는 당분간 이영수 수석코치가 대신한다.
수뇌부 입김 앞에, 감독은 하루살이
흥국생명은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부합하지 않다”고 언급했을 뿐, 구체적인 경질 사유는 언급하지 않았다.
흥국생명은 지난 시즌을 6위(승점 31점)로 마감했다. 이 과정에서 8년간 팀을 이끌어온 박 전 감독과 계약을 종료하고, 지난 4월 권 감독을 선임했다. 흥국생명은 권 감독을 선임할 당시 “선수들과의 소통, 과학적 분석과 체계적 훈련 등을 통해 흥국생명 배구단을 새롭게 바꿀 적임자”라고 표현했다.
권 감독은 흥국생명의 기대대로 팀을 빠르게 개편하는 데 성공했다. 3라운드 종료 시점에서 팀을 2위로 올려놓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14승 4패(승점 42점)로 선두 현대건설(승점 45점)에 3점 차로 뒤지고 있어 선두까지 내다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흥국생명이 순항한 까닭으로 해외 무대에서 복귀한 ‘월드 클래스’ 김연경의 공도 컸지만 이주아, 김나희 등 일부 선수들이 권 감독 밑에서 성장해 팀을 상위권으로 도약하는 데 힘을 보탰다.
이런 상황에서 뜬금없이 권 감독의 경질이 결정됐다. 선수단과의 갈등이나 내부 불화는 전혀 없던 것으로 파악된다. 권 감독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구단 수뇌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권 감독은 지난 2일 KBS와 인터뷰에서 “내가 일을 저질러서 경질된 거면 억울하지도 않다. 단장이 문자로 (선수 기용에 대해) 오더를 내리는 게 있었다”라면서 “내가 그걸 안 들었다. 말을 안 듣는다고 (상부에) 보고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감독의 인터뷰가 공개되고 많은 구단 관계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현대 프로스포츠에서는 현장과 프런트, 모기업의 영역을 정확히 구분한다. 설사 구단주라고 할지라도 선수 기용이나 전술 등 현장의 영역에 간섭하는 것은 ‘금기’로 여겨진다.
다른 종목의 스포츠 구단 관계자 A씨는 “모기업 고위층에서 구단 운영에 간섭한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순간 ‘내가 1990년대에 와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면서 “물론 그들의 지원이 있기에 구단이 운영될 수 있지만, 그들은 스포츠 전문가가 아니지 않나. 선수 기용은 온전히 감독의 탓이다. 윗선은 조금 더 뒤에서 지켜보고 구단 전체를 통솔해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비상식’ 흥국생명 배구단, ‘트러블 제조기’란 웃지 못할 별명도
흥국생명의 비상식적인 구단 운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흥국생명은 김연경이 해외무대에서 전성기를 누리던 2010년대 초반 당시 FA자격 문제를 놓고 장기간 법정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2021년에는 학교폭력 논란으로 무기한 출전 정지를 내렸던 이재영과 이다영 자매를 4개월 만에 복귀시키려다 팬들의 반발에 밀려 마지못해 철회하기도 했다.
배구계 관계자들이나 팬들의 반응은 비슷하다. “이해할 수 없다”라는 반응이 지배적인 가운데 “또 흥국생명이냐”면서 그들의 행정을 비꼬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배구계 관계자 B씨는 “흥국생명은 올 시즌 2위로 호성적을 거두고 있고, 흥행은 압도적인 1위였다”라면서 “흥국생명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다. 구단의 분위기가 좋은 상태에서 권 감독을 자르는 흥국생명의 행동은 ‘자승자박(自繩自縛)’에 가깝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흥국생명의 팬이라고 밝힌 30대 팬 김모씨는 “왜 항상 이런 일이 흥국생명에서 자주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나는 김연경 선수가 좋아서 흥국생명 팬이 됐는데, 2년 전도 그렇고 지금도 문제가 있다”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FA 앞둔 김연경, 흥국생명 떠날까
이번 권 감독의 경질로 인해 가장 피해자로 거론되는 인물은 김연경이다.
김연경은 지난 2020~2021시즌 흥국생명 1차 복귀 당시 쌍둥이 자매의 학교 폭력 논란으로 코앞에서 우승 기회를 놓쳤다. 올 시즌에도 흥국생명으로 돌아와 팀을 상승세로 견인하던 도중 구단의 훼방으로 물거품이 될 위기다.
일각에서는 김연경이 올 시즌이 끝나면 팀을 떠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김연경은 곧 FA 신분이 된다.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이 김연경이 타 구단으로 이적할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배구계 관계자 B씨는 “이번 사건으로 김연경이 흥국생명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진 듯하다”라면서 “많은 구단이 그를 영입하기 위해 큰 노력을 할 텐데, 흥국생명이 그를 잡을 명분이 있을까. 그들이 원하는 리빌딩은 내년에 할 것으로 보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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