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없이 나아가라"...'센 언니' 키키 스미스가 전하는 것
조각, 판화, 태피스트리 140점
전시몰입 위해 '향기나는 전시'로
1994년, 미국 뉴욕에서 작업하던 미술가 키키 스미스는 세계적인 갤러리 페이스 전속 작가가 됐다. 그의 나이 마흔 살이었는데, 당시 갤러리에 소속된 기라성 같은 작가들을 보며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분들은 20년도 넘게 나보다 먼저 자유낙하를 하고 있었구나. 나 자신, 내 작업에 대한 믿음으로,두려움이 없이,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1980~90년대 여성성과 몸을 다룬 구상조각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온 그는 이번에 한국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을 열며 전시 제목을 '자유낙하'라고 지었다. 1994년 그의 판화 작품에도 붙였던 제목 '자유낙하'는 생동하는 에너지를 뜻한다. 스미스의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열리고 있다. 조각, 판화, 사진, 태피스트리 등 총 140여 점을 소개하며 그의 40여 년 작업을 조망하는 자리다.
화가, 조각가, 판화가 그 사이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에게 이 작가의 정체는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벽에 프레임도 없이 이불처럼 걸린 대형 종이 작품들에 놀라고(화가인가?), 달걀노른자를 똑 떼어다 놓은 것 같은 조각('노른자')부터 여성 가슴 한쪽 모양의 투명한 조각( '작은 산')까지 익숙한 것들을 해체해 완성한 작품에 다시 놀란다(조각가인가?). 위에서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자기 머리를 화면에 계곡과 물줄기처럼 표현한 작품 '폭포'는 또 어떤가. 나중엔 세로 3m, 가로 2m에 달하는 대형 태피스트리 작품까지 마주하게 된다. 이보배 학예연구사는 이를 가리켜 "시대에 순응하다가도 역행하며 거슬러 오르고 주제와 도상을 달리하면서 실험해온 '자유낙하'의 정신"이라고 설명한다. 거침없이 실험하고 도전하며 낙하해온 '센 언니'의 전시다.
키키 스미스는 누구?
미국 미니멀리스트 조각가 토니 스미스(1912~1980)의 딸인 그는 1970년대 후반 제니 홀저 등과 함께 뉴욕 행동주의 미술가 그룹에 참여했고, 1980년대 인체 내 장기를 묘사한 작품으로 이름을 알렸다. 가정폭력, 임신중절, 에이즈, 배설 등 신체를 둘러싼 이슈도 거침없이 다뤘다. 1990년대 초반 여성의 몸에 관한 작품들을 쏟아냈고, 이후 그의 관심은 인간과 동물, 우주, 자연과의 만남 등으로 옮겨갔다.
'종이'를 사랑한 작가
전시 제목과 같은 '자유낙하'(1994)도 전시에 나왔다. 판화가 자미엘로와 함께 제작한 이 작품은 자신의 나체 사진을 적외선 필름으로 동판 위에 옮겨 완성했다. 스미스는 지난달 개막을 앞두고 한국 기자들과 한 영상 인터뷰에서 "한국이 내게 정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선 바닥에 한지를 깔고 방바닥에서 열이 나오게 하는 온돌이 있다는 어릴 때 들었다"며 "이후 종이에 대한 내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종이를 조각적으로 생각하게 됐고, 겹치는 방식으로 작업하게도 됐다"고 말했다.
조각부터 태피스트리까지
옛이야기 속 여성의 모습을 새롭게 형상화한 작품도 눈에 띈다. 한 여성이 늑대의 배에서 걸어 나오는 형상을 담은 '황홀'이 그중 하나다. 우화 '빨간망토'에서 사냥꾼이 늑대의 배를 가르자 할머니와 함께 나왔다는 소녀 대신 스미스는 늑대를 밟고 나오는 당당한 신체의 성인 여성을 만들어냈다. 작가는 이 작품을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 비교했다고 한다.
이 학예연구사는 "과거 스미스의 작품이 과격하고 도발적이었다면, 2000년대 들어서 서정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며 "다양한 작품 유형을 경유하는 중에도 그는 주변의 '크고 작은 생명들'과 그 에너지에 늘 주목해왔다"고 전했다.
한편 스미스는 인터뷰에서 "그동안 코로나 19에 세 번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어서 기쁠 따름"이라며 "작품은 작품 스스로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 한국 관람객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전시는 3월 12일까지. 관람료 무료.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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