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혐 살인' 악명 높은 멕시코서 198년 만에 첫 여성 대법원장

임주리 2023. 1. 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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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국가 멕시코에서 198년 만에 첫 여성 대법원장이 탄생했다. 멕시코 대법원은 2일(현지시간) 대법관 11명의 표결로 노르마 루시아 피냐 에르난데스(64)를 대법원장으로 선출했다. 1825년 멕시코 대법원이 문을 연 이후 약 200년 만에 새 역사가 쓰였다고 외신은 보도했다.

지난 2일 멕시코의 첫 여성 대법원장으로 선출된 노르마 루시아 피냐 에르난데스가 선서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피냐 에르난데스는 멕시코국립자치대학(UNAM·우남대학)과 스페인 알리칸테대학 등에서 학위를 받은 후 주로 판사로 재직해 왔다. 엔리케 페냐 니에토 전 대통령의 지명으로 대법관이 된 것은 2015년이다. 그는 2일 대법원장으로 선출된 직후 "나는 멕시코 여성을 대표한다"며 "접근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였던 유리천장이 깨졌다"고 소감을 전했다. 대법원장 임기는 2026년 12월 31일까지다.

멕시코는 브라질에 이어 중남미 2위 경제 대국이지만 그간 대통령이나 대법원장이 된 여성은 없었다.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 등 '스타 여성 지도자'가 나왔던 다른 중남미 국가들에 비하면 조용했던 편이다. 다만 국회의원 중 여성의 비율은 48%(2021년 기준)로 높은 축에 속한다.

지난해 7월 멕시코에서 여성 혐오 범죄를 규탄하며 벌어진 시위. AP=연합뉴스

멕시코 안팎의 언론은 첫 여성 대법원장 탄생이 여권 신장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멕시코는 중남미에서도 여성 혐오 범죄가 심각한 곳으로 꼽힌다. 페미사이드(Femicide·여성이란 이유로 살해)는 날로 증가하는 추세로, 2021년에만 멕시코에서 살해된 여성이 1000명이 넘고, 실종된 여성은 2800여 명에 달한다. 2020년 이후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봉쇄 영향으로 가정폭력이 급증했다. 멕시코의 성평등지수는 2021년 기준 75위(한국 15위)에 머물고 있다.

멕시코 일간 엘우니베르살은 "에르난데스는 '낙태 처벌 위헌' 등을 끌어낸 바 있다"며 "양성평등에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고 이날 보도했다. 멕시코 대법원은 에르난데스 등 여성 대법관들(총 4명)의 주도로 2021년 9월 낙태 처벌이 위헌이란 판결을 내렸다. 에르난데스는 지난해 11월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첫 여성 대법원장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며 "멕시코에서 가장 해결이 시급한 사안은 바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막는 일"이란 소신을 드러낸 바 있다.

지난해 11월 멕시코 치아파스에서 여성 혐오 범죄로 살해된 이들을 추모하는 현장. EPA=연합뉴스

일각에선 지나치게 좌편향이란 비판을 받고 있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행보에 피냐 에르난데스 대법원장이 균형추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엘파이스는 "에르난데스는 진보적인 성향이지만 사법부의 독립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여러 번 강조해왔다"며 "여러 이슈에서 오브라도르 대통령과의 마찰을 불사하며 균형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애초 멕시코 첫 여성 대법원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후보는 야스민 에스키벨 대법관이다. 그러나 30여년 전인 학부 시절 논문 표절을 했다는 의혹을 받아 낙마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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