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대의 은퇴일기⑯] 부부만의 온전한 배낭여행
환갑을 넘긴 나이에 떠나는 해외 배낭여행은 쉽지 않을 수도 있는 데다, 여행 도중에 이견이 생겨 일행과 헤어져 우리 부부만이 여행을 계속하게 되었다. 난감하고 두려움이 앞섰지만, 자신 있게 대처하자 오히려 배낭여행의 진정한 묘미를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
2019년 1월 아내와 지인 2명과 함께 베트남, 라오스, 태국, 미얀마 등 동남아 4개국으로 한 달 배낭여행을 떠났다. 젊지 않은 나이에 모든 것을 스스로 챙겨야 하는 여행이라 어려움도 많았지만,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어 훨씬 재미있었다. 늦게까지 야시장에서 맥주를 마시며 즐기다 느긋하게 일어나 모닝커피 마실 수 있는 것은 자유여행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베트남 북부지역 산간마을인 사파에서 토요일 오전에만 열리는 시골 장을 보기 위해 열 시간 동안 침대 버스를 타고 갔던 일은 눈에 선하다. 전통복장을 한 원주민들이 넓은 광장에 펼쳐놓은 각양각색의 물건을 보자 밤새도록 달려온 고생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
라오스 르왕프라방에서 태국 치앙마이까지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보트 타고 메콩강을 거슬러 2박 3일에 걸쳐 가기도 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때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보트 안에서 순박한 현지 주민들과 라면을 안주 삼아 술잔을 나누던 일과 비탈진 강기슭에 보트가 머리를 맞대면 물건을 사 달라고 달려오는 어린아이들에게 토산품 하나 사 주지 못한 것이 아직도 가슴을 아리게 한다.
대부분 주민은 불교 정신이 몸에 배어 있어 심성이 고왔으며, 우리 70년대의 경제 수준과 비슷하여 향수와 함께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다.
태국 치앙라이에서 미얀마로 갈 때는 여행용 가방을 끌고 루악강 입구의 국경 검문소를 지나 다리 중간쯤에 도착하자 미얀마 국경심사대가 나왔다. 비자도 필요 없고 짐 검사도 하지 않은 채 우리나라 여권을 보고는 그냥 스탬프를 찍어준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에 비하면 아주 간단하여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다리 하나를 건너온 것뿐인데 경제 사정은 훨씬 더 어려워 보이고, 피부 색깔도 검은 데다, 체구도 깡말랐으며, 거리도 지저분해 보였다. 친절했던 태국의 분위기와는 달리 인상이 상당히 날카로워 보여 긴장감이 감돈다.
국경 근방의 가게에 들어가 인레호수로 가는 버스 편을 알아보자 산길을 15시간 이상 달려야 하는데 도중에 반군들이 총을 쏠 수도 있어 위험하다고 한다. 할 수 없어 비행기를 타고 가려고 공항을 찾아갔더니 대합실이 우리 시골의 버스터미널보다 못한 수준이며, 비행기도 하루 한편밖에 없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확인한 우리 일행 중 두 명은 불안해서 미얀마 여행을 할 수 없다며 다시 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지금까지 여행한 베트남이나 태국보다 환경이 열악하고 치안도 불안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함께 간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설득해도 막무가내다. 황당하다. 할 수 없어 우리 부부만 다음날 인레호수로 떠나는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일행과 함께 국경 부근 숙소로 돌아왔다.
송태우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 아내는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눈시울을 붉힌다. 내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가만히 잡아준 아내의 손은 신들린 사람처럼 떨리고 있었다. 지난 보름 동안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일행이 우리만 두고 떠나는 데 대해 서운한 감정을 넘어 배신감이 솟아오르면서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러자 마음속에서는 가다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꼭 해결하고 보란 듯이 무사히 배낭여행을 마무리하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솟아오른다.
그동안 함께 사용하던 공용경비를 반으로 나누어 돌려주고 일행이 다시 국경 다리를 건너 태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지켜본 다음 공항으로 갔다. 터미널에 외국인은 우리 부부밖에 보이지 않는다. 외국 관광객이 이용하는 코스가 아니라 그런지 세관 직원은 “어제저녁에는 어디에서 묵었느냐?. 도착하는 숙소는 어디냐?”는 등 꼬치꼬치 캐묻는다. 대합실에는 의자만 몇 개 덜렁 놓여있고, 40분이나 비행기가 늦어도 궁금해한다든지 이유를 물어보는 사람도, 아무런 안내도 없다.
다행히 비행기가 무사히 이륙하여 50분 만에 인레호수가 있는 혜호공항에 도착했다. 탑승객 짐을 손수레에 싣고 와 내려준다. 그동안은 네 명이 여행하다 보니 진정한 혼자만의 배낭여행은 아니었다. 내가 아니라도 의지하는 기둥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내와 함께 온전히 헤쳐나가야 한다.
부킹닷컴을 통해 호텔을 예약했다. 택시를 타고 예약한 호텔을 알려주자 알겠다고 한다. 석양을 맞으며 인레호수를 행해 달린다. 붉은 태양은 서쪽 저 멀리 산허리로 넘어가고 동쪽 하늘에는 보름달이 둥그렇게 떠 있다. 주위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포장은 했지만 털털거리는 시골길이다. 사방은 넓은 평원이고 야트막한 산이 보일 뿐이다.
우리는 인레호수에서 보트를 타고 수상마을을 둘러보면서 열악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가정을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열 시간 동안 야간버스를 타고 새벽에 도착한 바간에서 본 열기구의 장관은 꿈속의 동화 나라처럼 아름다웠다.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다양한 색깔로 장식된 셀 수 없이 많은 파고다와 화려한 불탑을 보면서 그들의 불심에 경외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만달레이 우베인 다리의 교각 사이로 떨어지는 일몰의 광경은 세계 각국에서 온 수천 명의 관광객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여행자 거리에서 처음 만나는 세계각국의 여행객들과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잔은 모든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청량제였다. 이런 멋진 경험을 하지 못하고 되돌아간 일행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만 남겨두고 떠난 일행 덕분에 배낭여행의 진가를 배우고 맛볼 수 있어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일행과 떨어져 홀로 남겨진 우리 부부는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숙소 구하고, 버스나 비행기 예약하고, 맛있는 것 먹는 방법을 터득하였으니 그럴만하지 않겠는가. 해외여행의 진정한 맛을 음미해 보려면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지금 배낭여행을 떠나라.
조남대 작가 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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