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디테일에'…중대선거구제, 지역 대표성 오히려 떨어질수도
승자독식 대안? 2인 선거구, 오히려 심화
3인 이상 선거구가 정답? 지역 대표성 약화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총선거를 앞두고 화두로 떠오른 중대선거구제는 명과 암이 뚜렷한 제도다. 승자독식 폐해를 막는 개혁 의제가 될 수도 있지만, 양당 독점의 숨겨진 안전판이 될 수도 있다. 명과 암을 가르는 핵심은 숫자 2와 3의 차이다.
중대선거구제는 지역에서 당선자를 2~4명까지 뽑는 제도다.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더라도 당선자를 2명 뽑느냐, 3명 이상 뽑느냐에 따라 주요 정당 희비는 엇갈릴 수 있다. 당장은 중대선거구제 자체가 개혁의 일환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실제 제도 개편 논의에 들어갈 경우 정당의 샅바 싸움이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중대선거구제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이 긍정 기류를 내비친 제도다. 여야 정당에서도 별다른 반대 의견이 나오지 않고 있다.
중대선거구제가 단숨에 정국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한 것은 3일 보도된 윤 대통령의 조선일보 인터뷰와 관련이 있다. 윤 대통령은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대표성을 좀 더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힘을 실었다.
윤 대통령은 "소선거구제는 전부 아니면 전무로 가다 보니 선거가 너무 치열해지고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이 깊어졌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당 당권 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도 윤 대통령 제안에 즉각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연일 윤 대통령과 각을 세웠던 유 전 의원이 모처럼 힘을 싣는 메시지를 내놓은 셈이다.
유 전 의원은 2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역과 이념의 대립구도를 넘어 보수도 호남에서 진보도 영남에서 국민을 대변하고,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할 부분은 중대선거구제는 총선이 있을 때마다 등장한 논의 과제라는 점이다. 특정 지역구에서 한 명의 당선자를 뽑는 소선거구제의 대안으로 중대선거구제가 논의됐다.
한 지역구에서 2명 이상의 당선자를 뽑는다면 아쉽게 떨어진 차점자가 구제될 수 있다. 특히 각당의 정치 불모지로 인식되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 호남에서 국민의힘이 당선자를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정의당과 같은 제3정당의 지역구 당선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할 경우 당선자를 2명으로 할지, 3명 이상으로 할지가 선거 승패를 좌우하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좋은 사례다.
당시 기초의원 선거에서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했다. 서울 용산의 구의원 선거의 경우 용산 가, 용산 나, 용산 다, 용산 라 지역구는 2인 선거구였다. 용산 마 선거구는 3인 선거구였다.
당시 용산 마 선거구에서 정의당 설혜영 후보는 15.97% 득표율로 3위를 차지하며 당선됐다. 1명만 뽑는 소선거구제도, 2명만 뽑는 중대선거구제였다면 설 후보는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하는 상황이었다. 3인 선거구와 달리 2인 선거구를 채택한 용산의 나머지 전 지역은 민주당과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지역구마다 각각 1명씩 당선자를 배출했다.
용산 라 지역구에서 58.62%를 득표한 민주당 장정호 후보와 25.35%를 득표한 자유한국당 최병산 후보가 모두 당선자가 된 것도 중대선거구제 덕분이었다. 2위 득표율은 1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두 사람 모두 구의원 당선자가 됐다. 이처럼 2인 선거구를 채택하면 거대 양당(국민의힘&민주당)의 안전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3인 이상 선거구 채택이 합리적인 대안일까. 당선 인원을 늘리면 지역구 관할 면적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강원도는 8명의 국회의원이 배정됐다. 강원도에 3인 이상 선거구를 채택할 경우, 동해시·태백시·삼척시·정선군·속초시·인제군·고성군·양양군·홍천군·횡성군·영월군·평창군이 단 하나의 지역구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해당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인구가 더 많은 지역 출신이 당선될 확률이 높아지게 되고, 다른 곳은 자기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길이 사실상 막히는 효과가 나타난다. 중대선거구제의 폐해로 지역 대표성 약화가 지적되는 이유다.
아울러 중대선거구제는 참신한 정치신인보다는 인지도가 높고 지역 기반이 탄탄한 중진 정치인들에게 유리한 제도라는 지적도 받는다. 중대선거구제 자체를 개혁으로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과 달리 기득권 정치인들의 안전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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