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 예산 일방 지원은 위험, 정체성도 고민해야"

이선필 2023. 1. 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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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위기론' ②] 암흑기에 조심스럽게 피어난 '긍정론'

[이선필 기자]

 평창국제평화영화제의 주상영관 노릇을 했던 어울마당의 모습.
ⓒ 박장식
 
☞ [영화제 '위기론' ①] 전 세계에서 부는 위기론, 영화제는 어디로 가는가?

변화 혹은 위기에 직면한 국내외 영화제들은 자의든 타의든 분명 선택 기로에 서 있다. 예산 편성과 집행 문제로 불거진 국내 여러 영화제들의 잇따른 폐지 사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조직 구성의 변화를 택한 세계 주요 영화제들이 그 방증일 것이다.

지난 기사에서 살핀 직면 과제를 두고 여러 영화제들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까. 더불어 우리가 참고할 만한 영화제 모델은 없는지 국내 주요영화제 프로그래머들에게 물었다. 이들이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여러 의견이 돌아왔다.

"영화제 예산 자부담률 높이고, 개성 찾아야"

폐지나 중단 상황에 놓인 국내 여러 영화제들을 두고 영화제 프로그램 전반에 관여하는 프로래머들은 공통적으로 '예산 창구의 다변화'를 말했다. 더불어 영화제들마다 분명한 정체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공통 의견이었다.

전주국제영화제 등을 경험하고 현재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프로그래머직에 있는 장병원 프로그래머는 "국내 영화제들 예산이 지자체 의존도가 높거나 편중된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지자체에서 없애겠다고 마음먹으면 대안이 별로 없는 것"이라며 "지방 정부의 지원중단이 곧 영화제 폐지로 연결되는 것이 현실"이라 진단했다.

이어 장 프로그래머는 "연속성과 정체성도 중요하다. 강릉영화제나, 평창영화제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그 토대를 올리는 중에 지자체 결정으로 흔들린 경우"라며 "비교적 이들보다 역사가 오래된 국내 영화제들도 영화제가 자체 수입을 조달할 수 있는 사업을 잘 개발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김영덕 프로그래머는 "해외 여러 영화제들의 갈등은 그 원인이나 양상이 다양해 보이는데 한국영화제들 경우엔 두 가지 같다. 하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따라온 경제 위기이고, 다른 하나는 정권 변화에 의한 정치적 압력"이라 분석했다. 김 프로그래머는 "문화 사업 특성상 영화제가 그 성과를 (수치적으로) 입증하기 어렵기에 정책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는 것 같다"며 "지금 우리나라가 내세울 수 있는 건 문화와 과학기술인데 이것을 너무 산업적으로만 보지 말고 관에선 충분히 투자하는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영화제에서도 더이상 전문가 중심의 주도성보단 관객 및 공동체와 연결성을 생각하며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등을 경험한 김봉석 프로그래머는 "중앙정부, 지자체 예산 비중이 높으면 결국 끌려갈 수밖에 없다. 강소영화제를 추구한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건 재정 구조와 정체성"이라며 "각 영화제만의 특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주산골영화제 등 국내 대표적인 강소영화제를 맡아온 조지훈 프로그래머는 "강릉, 평창보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지자체장 의지로 (정준호) 집행위원장을 맡긴 상황을 의미심장하게 볼 필요가 있다"며 "코로나19 전까진 정관 등을 개정하며 지자체로부터 나름 독립성을 확보해왔는데 팬데믹 이후 정권 교체기와 맞물려 지자체 힘이 다시 강해졌다. 해외영화제들은 나름 세대교체 사례도 있는데 한국은 영화제나 사무국 수장들이 통째로 날아가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고 우려 섞인 진단을 전했다.

이어 그는 "영화제 자체가 올드한 플랫폼이 된 게 아닌가 싶다. 어느 순간 관객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라기 보단 영화제를 즐기기 위해 찾는 것 같다. 그런 부분을 함께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영화제는 영화 자체를 방어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일인 10월 5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을 찾은 시민들이 부산국제영화제 로고 앞을 지나가고 있다.
ⓒ 유성호
 
이들 프로그래머의 말을 종합하면 우리 상황에 딱 들어맞는 특정 모범 사례는 찾기 어려웠다. 다만 각 해외영화제들의 특출한 장점을 취해 연구하는 방법이 있었다. 음악 축제와 결합한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 장르영화제로 오랫동안 입지를 쌓아온 시체스나 판타스포르영화제, 그리고 독립예술영화들의 축제로 잘 알려진 선댄스나 샌프란시스코영화제 등이 그것이다.

<오마이뉴스>는 그중 33년 역사를 지닌 다큐멘터리영화제이자 해당 지역을 대표하는 강소영화제로 자리매김해 온 프랑스 마르세유영화제(FID) 관계자를 접촉했다. 마르세유영화제(FID)는 팬데믹 한복판이던 2020년에도 행사를 열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해당 영화제를 총괄하고 있는 파비안느 모리스 프로그래머는 "프랑스 정부, 마르세유시는 물론이고, CNC(국립영화영상센터)와 문화통신부, 그리고 지역 내 여러 예술 관련 단체들과 강력한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며 "영화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제작 플랫폼을 1년 내내 상시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르세유영화제 예산은 약 13억 원 수준이다. 이 중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받는 예산 비중은 80% 정도이고 나머지는 영화제 자체 수익 사업과 개인 스폰서 지원으로 충당한다. 파비안느 모리스는 "(외부 간섭 등을 막고자) 지난해부터 영화제 관리 위원회를 출범, 수평적 의사소통과 유기적 소통을 강화했다. 1년 내내 상근 인원 4명이 관리 위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고 답했다.

미래 비전을 묻는 말에 파비안느 모리스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다른 영화제들처럼 보편적이고 잘 조직된 행동, 특히 지금부터 고민해야 할 환경과 생태 문제를 염두에 두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을 비롯해 많은 영화제들이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 알고 있다"면서 "영화와 예술은 곧 투쟁적이면서 지구력을 요구하는 스포츠와 같다. 영화가 산업이 아닌 예술로 남으려면 다양성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영화제는 도전적인 영화를 존재하게 하고 영화 자체를 방어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라고 그 존재 당위성을 강조했다.

"위기가 곧 촉매제 될 것"

이밖에도 부분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영화제들이 꽤 있어 보인다. 장병원 프로그래머는 지자체와 영화제 기획자, 창작자들이 이상적으로 결합한 사례로 스위스 비종드릴영화제와 오스트리아 비엔나영화제를 추가로 언급했다.

김봉석 프로그래머는 "뉴욕영화제는 프리미어(다른 영화제보다 우선해서 상영하는 권리)를 따지지 않고 좋은 영화면 일단 상영한다는 콘셉트가 있는데 그런 명확한 특성을 우리도 가져가야 한다"며 "일본의 후쿠오카아시안영화제, 유바리판타스틱영화제, 그리고 작지만 도쿄 호반(호수)영화제 같은 곳이 지역 예산과 상관없이 자원봉사자와 지역 유지, 영화인들이 운영하는 사례이고, 캐나다 판타지아영화제도 요즘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김 프로그래머는 "배우 기타노 다케시가 만든 도쿄 필름엑스영화제도 처음엔 잘 되다가 그의 회사(오피스 케이)가 손을 떼니 위기가 왔다. 지자체 중심이건 기업이건, 개인이건 예산의 80, 90%를 일방적으로 받아서 영화제를 하는 건 항상 문제가 생길 위험이 크다"고 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등을 거친 김영우 프로그래머는 "뻔한 플랫폼에서 뻔한 규격으로 영화들이 등장하고, 영화제들도 침체기에 있는 것 같지만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반작용이 곧 생기지 않을까 기대한다. 뭔가 압력이 꽉 찬 상태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영화제와 영화 산업의 비등점이 정말 멀지 않았을까. 사실 이미 우리는 정답을 알고 있다. 저마다 다른 정체성이 있는 영화제가 관객의 지지를 받으며 다양하게 존재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예산이나 행사 규모와는 별개로 영화제가 지속될 수 있는 힘은 이 두 가지에 있다는 게 국내외 일선 영화제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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