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테라피북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 [그림의 풍경]

임명옥 2023. 1. 3.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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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츠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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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옥 기자]

마음이 불안하거나 생각이 많을 때 그림은 힐링할 수 있는 놀이이다. 어떤 대상을 관찰하면서 그리고 있으면 머리가 비워지고 마음은 가벼워진다. 나는 책장에 꽂혀 있는 명화가 있는 컬러테라피북을 꺼냈다.
 
▲ 컬러테라피북 우리가 사랑하는 명화 31선 컬러테라피북(모닝글로리)
ⓒ 임명옥
 
한쪽에는 명화가 인쇄되어 있고 다른쪽에는 그림 스케치가 있어서 보면서 채색할 수 있는 책이다. 고흐의 풍경화, 세잔의 정물화, 클림트의 그림들을 넘겨보다가 채색하고 싶은 그림을 발견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 익숙한 그림은 일본 에도시대에 살았던 가츠시카 호쿠사이(1760~1849)가 그린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라는 제목의 그림이었다. 거대한 힘과 압도적인 공포가 느껴지는 찰나의 순간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 가츠시카 호쿠사이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 후카쿠 36경 중 하나
ⓒ 임명옥
 
그림 속에서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집채만 한 파도는 당장이라도 배를 집어삼킬 듯하다. 거세게 몰려오는 파도의 하얀 포말은 악마의 손길처럼 사공들을 낚아챌 것 같이 위태로워 보인다. 백척간두에 서 있는 사공들은 최대한 몸을 낮추고 지옥의 입구로부터 벗어나길 기도하고 있을 것만 같다.

가츠시카 호쿠사이가 그린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는 그가 살았던 에도시대에 유행한 풍속화다. 목판화 형태로 제작하고 대량 생산되어 일반 대중들도 쉽게 구입할 수 있었던 그림이다. 색채감이 강렬하고 형태는 단순하면서도 대담한 선 표현이 특징이다. 

가츠시카 호쿠사이는 전통적인 우키요에 기법인 단순성과 평면성, 장식성에 더해 유럽에서 들어온 원근법을 이용해 이 그림을 구성했다. 우키요에의 평면성은 가츠시카 호쿠사이를 통해 입체성을 띠게 되고 서양에서 들여온 프러시안 블루 안료는 그림에 독특한 색채감을 주었다. 그래서일까, 호쿠사이의 과감한 시도 덕분에 이 작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깊은 인상을 준다.
 
▲ 가츠시카 호쿠사이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 색연필 채색 파버카스텔 유채색연필 채색
ⓒ 임명옥
 
나는 단순한 색감 속에 강렬한 느낌을 가진 이 그림을 선택해 파버 카스텔 유채색연필로 채색을 했다. 후지산을 감싸고 있는 낮은 하늘은 갑자기 들이닥친 폭풍으로 어둡고 불안하고 음습한 기운이 감돈다. 그래서 진하고 연한 보라색들과 인디고 블루, 그레이를 섞어 어둡고 음울한 현재의 기운과 알 수 없는 미래의 분위기를 표현해 보았다.

높은 하늘은 폭풍이 치는 늦은 오후라고 상상했다. 그래서 차분한 옐로 톤으로 칠해 뱃사람들이 거대한 파도를 뚫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그림의 가운데에 자리잡은 눈 덮인 후지산은 작게 그려져 있다. 원경이라 작긴 하지만 뚜렷한 기상이 느껴진다. 우뚝 솟은 모습은 위엄이 있고 하늘을 향해 기도하듯이 모아진 산의 위용은 신성함이 감돈다.

집채만 한 파도가 몰아쳐 목숨을 잃을수도 있을 만큼 자연은 가혹하지만 후지산에서 느껴지는 신성함과 장엄함으로 사공들은 자연에서 희망과 위안을 얻을지도 모른다. 나는 호쿠사이의 이 그림에서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무자비와 자비, 절망과 희망, 가혹함과 인자함을 본다.

끝없이 펼쳐진 넓은 바다는 평화로이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광폭해진 바다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앗아가기도 한다. 파도와 세 척의 배와 후지산을 채색하면서 우리가 사는 인생은 망망대해인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 위 그림은 인쇄물, 아래 그림은 파버카스텔 유채색연필로 컬러링
ⓒ 임명옥
 
인생이라는 바다를 출발하면서 우리는 목적지를 만들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을 하며 노를 저어 간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배를 타고 가다 보면 다양한 얼굴의 바다를 만나게 된다. 고요한 바다를 만나기도 하고 어렵긴 하지만 극복할 수 있는 작은 파도를 만나기도 한다. 어느 때는 몸과 마음이 긴장할 정도의 거센 파도를 만나 탈진 상태가 되기도 한다.

다양한 종류의 파도를 만나가며 목적지에 도달해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고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 채 항해를 계속 하기도 한다. 혹은 예상치 못한 곳에 도달해 그 경유지에서 새로운 목적지를 만들기도 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우월감과 열등감, 연대감과 배신감 등을 만나고 헤어진다.

언젠가는 그림 속에서처럼 대항할 수 없는 압도적인 파도를 만나기도 할 것이다. 두려움과 공포와 절망이 뒤섞인 감정이 소용돌이처럼 몰려올지도 모른다. 극복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는 파도를 만나게 될 때 나는 두려움과 절망 대신 용기와 담대함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 받아들임 후에 무엇이 올지 알 수 없지만 후회하지 않도록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거센 파도를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라면 작은 파도를 견디기는 휠씬 수월할 것이다. 시시때때로 찾아드는 마음의 파도들, 열등감이나 우울함, 불안감이나 두려움 같은 것들도 큰 파도를 받아들인 용기와 담대함으로 수그러들 것이다, 그래서 웬만한 파도에는 흔들리지 않고 혹여 흔들리더라도 금방 평정심을 찾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2023년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지금,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를 그리면서 우리에게 다가올 수많은 파도들을 용기와 담대함으로 맞이했으면 좋겠다는 새해 소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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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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