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20년 뒤 미래에 대한 투자

김찬희 2023. 1. 3.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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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학부모이거나 그 터널을 지나온 지 얼마 안 된 이들은 알 법한 농담 혹은 실화가 몇 개 있다.

이과 상위권 학생들은 서울대 의대부터 시작해 전국 대학 의대를 한 바퀴 돈 뒤 스카이(SKY) 대학의 이공계열 학과를 살펴본다.

학과명은 조금씩 다르지만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카이스트(KAIST), 포스텍, 서강대, 한양대에 개설돼 있다.

결은 다르지만 한국의 고등교육, 대학입시 시스템이 밝은 미래를 담보한다고 장담하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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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희 산업부장


고3 학부모이거나 그 터널을 지나온 지 얼마 안 된 이들은 알 법한 농담 혹은 실화가 몇 개 있다. 이과 상위권 학생들은 서울대 의대부터 시작해 전국 대학 의대를 한 바퀴 돈 뒤 스카이(SKY) 대학의 이공계열 학과를 살펴본다. 매년 서울대 입학생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학교는 어디일까? 연세대. 사실을 극단화했지만 현실을 과감하게 드러낸 말들이기도 하다.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은 의대 진학을 한두 번 고민한다고 한다. 수학, 화학, 생물, 유전학, 분자생물학, 천문학, 컴퓨터공학, 전자공학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학문을 배우는 곳이 많지만 학부모와 아이들은 거의 의대를 쳐다본다. 왜 그럴까. 취업이 확실해서? 물론 확고한 일자리가 첫 번째 원인일 수 있다. 다만 더 깊숙한 곳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반도체 기업이다. 반도체는 인공지능(AI), 로봇,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산업의 쌀’ ‘안보자산’으로까지 지위가 격상됐다. 수요가 급증하고 산업이 커지면서 인력은 늘 모자란다. 그래서 기업들은 아예 대학과 손을 잡고 ‘계약학과’를 만들었다. 학과명은 조금씩 다르지만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카이스트(KAIST), 포스텍, 서강대, 한양대에 개설돼 있다. 장학금을 주고, 졸업하면 꽃길(대기업 취업)을 보장한다.

그러나 세상은 냉정하고 영악하다. 종로학원에서 조사해 보니, 연세·고려·한양대의 2023학년도 반도체 계약학과 수시모집에서 최초 합격자 84명 중 58명이 등록을 포기했다. 빈자리는 추가 합격으로 채워졌다. 등록을 포기한 아이들은 어디로? 의대를 가기 위해 등록을 접은 아이들이 상당수일 것이다. 100% 취업이라는 당근을 거절하고 의대로 쏠리는 건 대기업 직원보다 의사가 경제·사회적으로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오르는 데 유리해서다. 부모 세대보다 잘살 확률이 낮다고 여기고, 실제로 낮아지다 보니 본능과 욕망이 자연스럽게 작동한다. 기술 발전에 따라 일자리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생존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이게 극대화한 게 지금의 중국이다. 요즘 중국 청년층에서 유행하는 단어는 ‘탕핑(躺平)’이다. 평평하다는 뜻인데 아무리 노력해도 집, 성공, 취업, 결혼이 불가능하니 그냥 누워만 있다는 의미로 쓰인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공식 통계에서 청년(16~24세) 실업률은 18.4%에 이른다. 한 달에 1000위안(약 18만원)도 못 버는 인구가 6억명이나 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현재 중국의 청년층을 휘감고 있는 먹구름을 만드는 데 교육도 큰 몫을 했다. 중국에서는 불과 얼마 전까지 12년에 걸친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데 만만찮은 돈을 들여야 했다. 2009년 조사에서 고교 3년간 드는 직접비용은 1659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농촌 가정 1년 수입의 10~15배다. 현재 초·중학교는 의무·무상교육이다. 이렇다 보니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저숙련·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높다. 이들은 산업구조 변화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구조적 실업’의 나락으로 금세 추락한다.

물론 중국에는 베이징대, 칭화대 등 세계적으로 우수한 대학이 많다. 매년 엄청난 숫자의 고급 인력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소수 엘리트가 다수를 먹여 살리는 구조는 개발도상국 시절까지만 유효할 뿐이다. 과거의 교육정책 실패가 지금 중국을 옥죄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교육을 ‘20년 뒤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말한다.

결은 다르지만 한국의 고등교육, 대학입시 시스템이 밝은 미래를 담보한다고 장담하기 어려워 보인다. ‘입시 기계’를 기르는 교육이 펼칠 20년 뒤의 미래는 아찔하다.

김찬희 산업부장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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