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현 발언에 주목받는 '험지출마'…대부분 결과는 처참했다
자가발전 험지출마론, 당내 논란도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2024년 총선을 1년여 앞두고 '험지 출마론'이 정가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해 제시했던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험지 출마론'을 당권 주자들이 확대 재생산하는 모양새다. 험지 출마는 성공한다면 정치적 체급을 크게 키워줄 수 있지만, 잘못했다가는 정치 생명이 끝날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지난달 30일, 여당 당권주자 중 하나인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번 당대표 선거에 나오는 모든 후보님에게, 수도권에서 출마하겠다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할 것을 제안한다"는 '담대한 구상'을 밝혔다.
총선의 승패를 가르는 수도권 지역에서 여당이 과반 이상(70석)의 의석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여당의 험지'인 수도권에 당권 주자들이 앞서서 출마해야 한다는 논리다. 앞서 이 전 대표도 지난해 8월 중징계 이후 첫 기자회견을 열고 '윤핵관'에게 "진정 나라와 당을 생각한다면 수도권 험지로 출마하라"고 압박한 바 있다.
윤 의원은 "모든 (당 대표) 후보님이 함께해 주실 거라 믿는다"고 했지만, 동의의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당권주자는 3일 현재까지 안철수 의원 한 명뿐이다. 당권주자로 언급되는 의원 중 수도권에 지역구를 가진 사람은 윤 의원과 안 의원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수도권 바깥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연고가 없는 수도권에 출마하는 것은 아무리 당권주자 급 인물이라도 쉽지 않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BBS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우리가 지난번 선거 때 지역구를 많이 옮기는 바람에 오히려 '우리가 자해 행위를 한 것'이라는 그런 평가가 있었다"고 '험지 출마론'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노무현·김부겸·이정현 성공했지만…'하늘의 별 따기'
험지 출마론은 '지역주의' 구도가 굳어진 후에는 총선 때마다 언급된다. 기존의 연고지를 떠나 당의 지지세가 약한 지역 또는 완전히 새로운 지역에 도전하는 선택은 리스크가 있지만, 성공할 경우 정치적 체급이 훌쩍 커지는 효과가 있다.
험지에 출마해 체급을 높인 대표적인 정치인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는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낙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만 골라 출마했다가 4번 낙선했으나, 그 과정에서 진정성을 인정받으면서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보수의 표밭인 대구·경북(TK)에서 당선된 김부겸 전 총리, 진보의 표밭인 호남에서 당선된 이정현 균형위 전략기획위원장 등도 지역 구도를 깨고 험지에서 성공한 인물들로 꼽힌다.
하지만 이런 소수의 사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험지 출마' 성적은 좋지 않았다. 당대표·부총리를 역임한 5선 출신인 황우여 의원은 지난 20대 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인천 연수갑 대신 야당세가 강한 인천 서구을에 출마했다가 결국 낙선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 멘토로 꼽히는 안대희 전 대법관도 20대 총선에서 부산 대신 서울 마포갑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여당 입장에서 수도권이 험지라면, 야당 입장에서는 강남이 '험지'를 넘어 '사지(死地)'로 불린다. 김한규 의원도 21대 총선서 '사지'로 불리는 강남병에서 낙선했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비서관에 발탁된 후 지난해 보궐선거에서 오영훈 제주지사의 제주시을을 이어받아 당선됐다.
당 "험지 출마" 요구, 거부하기도
당은 험지 출마를 요구했지만, 이를 거부한 사례도 적지 않다. 오세훈 전 시장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당의 험지 출마 요청에 고민하다 결국 거부하고 '정치 1번지' 종로에 출마하기도 했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도 당시 '대구가 험지'라는 논리로 출마했다가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전 최고위원에게 밀려 낙선했다. 당의 상임고문인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21대 총선에서 수도권 험지 출마를 거부하고 결국 대구 수성구을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험지 출마가 계파 간 신경전이나 유명 중진 정치인의 컷오프 압력 등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은 친박·비박 계파가 서로 험지 출마를 종용하며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21대 총선을 앞둔 미래통합당은 험지 출마를 거부한 중진의원들에 대한 대거 컷오프를 단행하기도 했다.
후보 스스로는 '험지에 출마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험지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경우도 종종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1대 총선에서 종로에 출마한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다. 험지 출마를 주장했던 그는 한 달이 넘는 장고 끝에 결국 종로를 선택했다. 하지만 종로는 전통적으로 보수정당 당선자를 많이 배출한 지역이라는 점에서 험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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