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IQ까지 위협…전세계 '납 팬데믹' 100년 만에 사라졌다
초창기 휘발유 자동차에서는 노킹(Knocking) 현상, 즉 엔진 연소실 벽을 망치로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나곤했다.
연료 점화시간이 어긋나고 압력이 치솟으면서 피스톤이 실린더를 때린 탓이다.
이런 엔진 노킹을 방지하기 위해 1922년 미국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은 휘발유에 납(사에틸납, tetra ethyl lead)을 첨가하기 시작했다.
휘발유 납 첨가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속화됐고, 1970~80년대에 최고조에 이르렀다.
하지만 납 오염으로 인한 환경과 보건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세계보건기구(WHO)나 유엔 환경계획(UNEP) 등이 나서 휘발유에서 납을 제거하는 캠페인을 진행했고, 엔진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유연 휘발유가 점차 사라지게 됐다.
2021년 아프리카 알제리를 마지막으로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무연 휘발유로 전환했다.
각국 혈중 납 농도 추세 파악
연구팀은 혈중 납 농도 상승으로 인해 다양한 건강 문제가 발생한 상황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과 비슷하게 아예 '팬데믹(Pandemic, 대유행)'이라고 칭하고, 이 팬데믹이 100년 만에 사라졌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전 세계에서 발표된 관련 논문을 검색, 사람 혈액과 휘발유 속의 납 농도 추세를 파악했다.
분석 결과, 미국의 경우 1976년 조사에서는 혈액 1dL(데시리터, 100mL)당 납 성분이 15.9㎍(마이크로그램)까지 나타났는데, 2011년 이후 조사에서는 1㎍/dL 이하로 떨어졌다.
1976년 당시에는 미국에서 판매된 휘발유 1L에는 납이 0.456g이 들어있었는데, 1988년 이후에는 사실상 유연 휘발유가 사라진 것으로 평가됐다.
미국 정부는 1975년부터 단계적으로 유연 휘발유 사용을 규제하기 시작했고, 1996년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독일은 1986년 6.58㎍/dL에서 2020년 0.79㎍/dL, 2021년 0.97㎍/dL 등으로 많이 감소했다.
중국은 2003년에 11.25㎍/dL를 기록했으나, 2013년에는 5㎍/dL로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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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올림픽 때 무연휘발유 보급
전남 여천의 경우는 1981년 15.2㎍/dL에서 1993년 3.9㎍/dL로 줄었다. 1981년 당시 여천 지역 휘발유에는 0.3g/L의 납이 들어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논문과 비슷하게 환경부가 2018~2020년에 실시한 '제4기 국민 환경보건 기초조사'에서는 전국 성인의 혈중 납 농도는 1.51㎍/dL로 나타났다.
2009~2011년 환경부 조사 때의 1.77㎍/dL이나 2012~2014년 조사 때의 1.94㎍/dL, 2015~2017년의 1.6㎍/dL보다 낮았고, 지속해서 감소하는 추세다.
과거 1988년 당시 국내 여성의 혈액 속 납 농도는 평균 34.3㎍/dL에 이르렀다는 일부 조사 결과도 있었지만,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무연 휘발유가 보급되면서 1998년에는 10분의 1 수준인 3.8㎍/dL로 낮아진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한국은 1993년 유연 휘발유 생산을 전면 금지했고, 유럽연합(EU)은 2000년에 유연휘발유 사용을 금지했다.
2021년 유연 휘발유 완전히 사라져
UNEP가 퇴출 캠페인을 시작했던 2002년에만 해도 세계 100여 개국이 유연 휘발유를 사용했다.
북한의 경우 혈중 납 농도 데이터는 공개되지 않았는데, 미얀마·아프가니스탄 등과 함께 2016년에야 납이 든 휘발유를 사용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라크와 예멘 등이 마지막까지 유연 휘발유를 사용했고, 2021년 8월 알제리 국영기업의 정유시설이 생산을 종료하면서 지구 상에서 유연 휘발유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UNEP의 잉거 안데르센 사무총장은 2021년 알제리 정유공장의 폐쇄에 맞춰 내놓은 성명에서 "유연 휘발유는 인류가 저지른 실수, 환경과 공중보건에는 재앙이었다"라며 "유연 휘발유 금지는 전 세계 건강과 환경을 위한 거대한 이정표"라고 밝혔다.
납이 어린이 IQ 5~10점 낮춰
제너럴 모터스는 스탠더드 오일과 손을 잡고 에틸가솔린 사를 만들고 유연 휘발유를 개발, 1922년부터 판매하기 시작했다.
초기부터 경고는 있었다.
예일대 생리학자 얀델핸드슨은 "대대적인 납 중독이 일어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제너럴모터스 측에 조언했다.
1920년대에 미국 뉴저지주 베이웨이에 있는 정유소에서는 사에틸납에 노출된 근로자들 수십 명이 쓰러져 발작과 환각을 겪었고, 30여 명이 입원하고 5명이 사망했다.
강력한 신경독을 지닌 납은 아동에서 지능지수(IQ) 손실, 주의 지속 시간 단축, 난독증, 주의력 결핍-과잉행동 장애, 학업 중단, 약물 남용, 범죄 행위 증가 등과 같은 신경 발달 장애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인의 경우도 신경 행동 장애, 고혈압, 신장 질환, 심혈관 질환, 뇌졸중, 암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전문가들은 아주 낮은 수준의 납에 노출되는 것도 절대 안전하지 않다고 말한다.
UNEP는 유연 휘발유 사용 금지를 통해 전 세계에서 연간 120만 명 이상의 조기 사망을 예방하게 됐고, 어린이 IQ를 5~10점 높이고, 세계적으로 연간 2조 4500억 달러(약 3100조 원)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게 된 것으로 추산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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