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조 베팅' 바이든, 반도체 올인…NYT "만병통치 아니다" 왜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 미국 정부가 야심 차게 진행 중인 반도체 산업 육성 방안을 두고 미국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일(현지시간)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지며 정부가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승리를 보장할 만병통치약이라 보긴 힘들다"며 그 이유를 다각도로 분석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산업 육성법(Chips and Science Act)에 서명한 건 지난해 8월이다. 1990년 당시 37%에 달했던 미국 내 반도체 생산 비중이 최근 12%대로 떨어지자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 취한 조치였다. 관련 시설 건립과 연구 개발에 투자하고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게 골자다. 760억 달러(약 96조원) 규모로 "(중국과의 경쟁이) 냉전 시대 미·소 우주 경쟁처럼 펼쳐지고 있다"(NYT)는 평가까지 나왔다.
이후 인텔 등 미국 기업을 포함해 삼성전자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30여 개 기업에서 현재까지 약속한 투자 금액만 2000억 달러(약 254조원)에 달한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기업 TSMC는 계획했던 것보다 3배 많은 40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지난달 밝히기도 했다. 미국 정부가 대대적인 지원을 예고한 만큼 앞으로 투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물량 공세 퍼붓지만 공장 설립 시간 걸려
보조금을 유인책으로 내건 만큼 지원금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다는 판단이 들면 기업들이 미적거리며 공장 설립 등을 미룰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근 각국의 반도체 경쟁을 다룬 책 『칩 워』(한국 미출간)를 출간한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밀러 교수는 이런 이유를 들어 "미국의 반도체 자립은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난제는 인재 확보다. 갑자기 몸집을 불리고 있는 탓에 숙련된 기술자를 구하기 쉽지 않을 거란 관측이다. 미국 내에서 이민자 관련 논란이 첨예한 탓에 외국에서 인력을 들여오는 일도 부담스럽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지난달 31일 보도에서 이 문제를 다루며 "제조업에 특화된 이민 비자가 필요할 텐데, 관련 해결책이 전무하다"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물량 공세만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더힐은 "2022년은 미국 제조업에 가히 '혁명적인 해'였지만, 미 행정부에는 제조업을 관할하는 컨트럴타워조차 없다"며 "이건 1년짜리 프로젝트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中 꺾기는 힘들고 동맹국과는 갈등
미국 밖에서도 상황은 쉽지 않다. 반도체 육성법에 따르면 미국의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중국에 투자할 수 없는데, 이를 두고 동맹국에서 불만이 나오고 있어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1일 보도에서 "미 정부의 정책은 반도체 시장에서 중요한 플레이어인 한국과 네덜란드 등 동맹국을 압박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삼성전자는 미 반도체 육성법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지만,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 공장을 운영 중이다. 기존 시설에 추가로 투자하는 게 금지되면 중국에서 발을 빼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마냥 수혜자로 볼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꺾일지도 알 수 없다. FT는 "베이징 역시 반도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라 워싱턴의 공격적인 입장이 중국의 반도체 야망을 누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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