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관 스타들 연극 무대로… 티켓값 인상 도미노
김유정 데뷔작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최고가 11만원 책정
브라운관에서 주로 활약하던 스타 배우들을 올겨울 연극 무대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이들의 잇따른 연극 출연은 제작사와 배우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다. 제작사는 대중에 친숙한 스타 배우의 유명세를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고, 배우는 관객과 호흡하는 매력을 느끼는 한편 연기력을 다듬을 수 있다. 다만 브라운관 출신 스타들의 무대 출연이 늘면서 연극 티켓 가격도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연말에 나란히 개막한 연극 ‘레드’(~2월 19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와 ‘미저리’(~2월 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는 중견 배우들이 전면에 나섰다.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실존 화가 마크 로스코의 삶과 예술관을 담은 ‘레드’에는 정보석과 유동근이 이름을 올렸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작가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로도 먼저 흥행했던 ‘미저리’에는 김상중 서지석 이일화 등이 출연한다.
미국 극작가 존 로건이 쓴 ‘레드’는 로스코와 가상의 인물인 조수 켄이 끌어가는 2인극이다. 예술과 삶, 세대 간 갈등과 이해를 밀도 높은 대사와 강렬한 색채의 무대 미술로 선보인 수작으로 2010년 브로드웨이에서 토니상 6개 부문을 석권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2011년 초연 이후 이번이 6번째 시즌이다. 앞서 5번의 시즌 동안 평균 객석 점유율 95%를 기록할 정도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정보석은 2015년 3번째 시즌과 2019년 5번째 시즌에 출연한 데 이어 이번이 세 번째 출연이고, 유동근은 이번이 첫 출연으로 30여 년 만의 연극무대 복귀다. 유동근은 앞서 프레스콜에서 “2019년 정보석이 출연한 ‘레드’를 보고 너무 좋아서 대본을 구해 읽었다. 이번에 30여 년 만에 무대에 서게 됐는데, 첫 아이의 탄생 같은 느낌이다”는 소감을 밝힌 바 있다.
‘미저리’는 교통사고를 당한 소설가 폴 셸던과 그의 광팬인 애니 윌크스의 집착을 그린 서스펜스 스릴러물. 연극으로는 2015년 브로드웨이에서 브루스 윌리스 주연으로 초연됐다. 국내에서는 2018년 초연, 2019년 재연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공연으로 김상중은 초연부터 계속 출연하고 있다. 이번에 연극 데뷔하는 서지석은 “김상중 선배님이 이번 작품을 하셔서 나도 출연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또 6년 만에 연극 무대에 돌아온 이일화는 “2019년 김성령 언니가 출연한 공연을 보고 욕심이 났었다”고 출연 계기를 밝혔다.
두 작품 모두 이번에 티켓 가격을 앞선 공연보다 올렸다. 최고가 기준으로 ‘레드’는 지난 공연보다 1만 원 오른 7만 원이고, ‘미저리’는 지난 공연보다 1만1000원 오른 8만8000원이다. 예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대학로에서 상업적 성격이 강한 제작사 연극이 최고가 6만6000원, 극단 연극이 최고가 3만 원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할 때 가격 인상이 두드러진다. 공연계의 티켓 가격 인상은 최근 물가 상승에 따른 제작비 증가의 영향이 크다. 특히 스타 마케팅은 티켓 가격 인상의 주요 요인이다.
하지만 ‘레드’와 ‘미저리’의 티켓 가격은 이순재가 연출을 맡은 연극 ‘갈매기’(~2월 5일까지 유니버설 아트센터)와 세계적으로 히트한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국내 초연되는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1월 28일~3월 26일 예술의전다 CJ토월극장)에는 미치지 못한다. ‘갈매기’와 ‘셰익스피어 인 러브’은 대극장 작품인 데다 브라운관에서 활동해온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기 때문에 최고가가 각각 9만 원, 11만 원으로 책정됐다. 앞서 대극장 연극의 최고가 8만8000원을 이번에 뛰어넘은 것이다.
체홉의 4대 비극 가운데 하나인 ‘갈매기’는 중년의 유명 여배우 아르까지나와 스타 작가 뜨리고린 그리고 아르까지나의 아들이자 젊은 작가 지망생 뜨레쁠례프와 여자친구 니나 사이에 오가는 비극적 갈등과 사랑을 그렸다. ‘연극인의 교과서’로 불릴 만큼 자주 공연되지만 이번에 연출을 맡은 이순재는 “체홉의 원작에 담긴 사상과 철학, 작품 그대로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다”는 연출 의도를 밝혔다. 이순재가 직접 출연도 하는 이 작품에는 주호성 오만석 김수로 소유진 진지희 등이 함께한다.
또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젊은 작가 셰익스피어와 귀족의 딸 비올라의 사랑으로 탄생했다는 유쾌한 상상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1998년 영화로 만들어져 아카데미상 7개 부문 등 세계 유수의 시상식을 휩쓸었다. 이후 2014년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이 ‘빌리 엘리어트’를 쓴 작가 리 홀, 영국의 거장 연출가 디클란 도넬란과 함께 무대극으로 완벽하게 재탄생시킨 뒤 여러 나라에서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이번 한국 초연에는 정문성 이상이 김성철 정소민 채수빈 김유정 등 탄탄한 연기력과 대중 인지도를 갖춘 배우들부터 송영규 임철형 오용 이호영 김도빈 박정원 등 베테랑 배우들까지 합류했다. 특히 청춘 스타인 김유정과 정소민은 이번 작품이 연극 데뷔다.
연극 애호가들에게 최근 가격 인상 도미노는 반가울 리 없다. 하지만 공연계에선 제작비 인상을 반영한 티켓 가격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공연계 관계자는 “최근 국내 공연계는 스타 마케팅이 흥행을 좌우하는 만큼 배우 개런티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면서도 “다만 최근 티켓 가격 인상이 다른 작품들의 가격까지 끌어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다소 우려스럽다. 지나친 티켓 가격 인상은 관객의 극장 접근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