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복합위기에 대처하는 자세
올해처럼 위기의식과 비관론이 팽배한 가운데 새해를 맞이한 것은 1998년과 2009년 이후 처음이다.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과 세계적 금융위기가 한창이었던 2009년 새해도 혼돈과 불안 가운데 찾아왔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위기였기에 파장이 얼마나 갈지, 언제 어떻게 극복 가능할지 내다볼 수 없었다. 미래가 불확실한 수준을 넘어 앞길이 막막했다. 코로나19 팬데믹도 고통스러웠지만, 2021년과 2022년 새해에는 엔데믹이 멀지 않았다는 희망이라도 있어 올해처럼 암담하지만은 않았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찾아온 위기 상황은 복합적이고 다중적이다. 고물가·고금리·저성장 등 국내 경제 위기 상황에 세계적 경기 침체와 공급망 위기가 겹쳤다. 지난해 무역수지는 금융위기 때인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2010년대 중후반 한국 경제 ‘10년 주기 위기설’이 유행했는데, 1998년과 2008년에 이어 2018년 경제위기가 다시 찾아온다는 주장이었다. 이때 유보된 위기가 4년 지나 눈앞의 현실이 된 것처럼 보인다.
경제 상황만 어려운 게 아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남북 관계 경색, 동북아·동유럽 등 국제 정세 불안, 지구적 기후 문제도 있다. 모두 간단치 않은 문제들이다. 해결하려면 전 지구적 협력이 절실한데 세계는 군사적 충돌도 서슴지 않는 신냉전 시대로 돌입했다. 한반도 평화도 주요국의 관심사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다.
유례없는 복합위기인 만큼 각별한 위기의식과 긴장감을 갖고 엄중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비관론에 매몰되는 건 금물이다. 위기 극복에 대한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낙관을 잃어선 안 된다.
올해 위기 요소로 거론되는 주요 상황은 예견된 것들이다. 위기의 징후가 뚜렷해진 지난해 중반부터 나름의 대비도 해왔다. 돌발적 위기 상황과 달리 대응하기가 어렵지 않다. 게다가 우리는 두 차례 국가적 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을 극복해 ‘위기에 강한 나라’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위기 극복의 노하우와 지혜도 충분히 쌓았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요인으로 여러 가지가 있지만 뼈아픈 구조개혁과 체질 개선, 미래를 위한 투자를 빼놓을 수 없다. 두 차례 위기를 겪으며 부실기업을 정리하고 경제 체질을 개선했으며 미래 먹거리를 위해 과감하게 투자했다. 대한민국 자체를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로 만들었다.
어렵다고 납작 엎드려 눈치만 봐선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게 우리가 집단적으로 체득한 교훈이다. 미래에 대한 낙관과 자신감을 갖고 능동적으로 대처해야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위기론에 매몰돼 비관에 빠지면 수동적·소극적 태도를 조장할 수 있다.
올해 우리가 맞닥뜨릴 상황이 우리의 예상 범위 안에만 머물 것이라고 장담할 순 없다. 지난해는 국내외적으로 예상과 상식을 뛰어넘는 사건의 연속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미국의 4연속 자이언트 스텝도 예상한 전문가가 거의 없었다. 기후위기에 따른 기상이변의 강도와 횟수도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었다. 국내에서도 태풍 힌남노로 반지하 주택과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침수돼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경험해보지 못한 형태의 재난이었다.
불패신화를 이어가던 부동산시장은 급격히 얼어붙었고 ‘영끌족’이 하우스푸어로 전락하는 데는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가상자산과 주식시장의 침체 폭도 예상을 뛰어넘었다. 정점은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발생한 이태원 참사였다. 아직 원인이 제대로 규명된 건 아니지만, 우리 시스템에 ‘설마’의 허용치가 너무 낮았음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예상을 뛰어넘는 사건들이 일상화된 시대에는 사회의 기초체력이 튼튼해야 하고 대응 시스템을 훨씬 더 높은 기준에 맞춰 개선해야 한다. 이런 일은 일상적으로 꾸준히 진행해야 한다. 과도한 위기론은 사회 개혁과 개선의 과제마저 뒤로 미루는 핑계로 이용될 수 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팬데믹을 극복하는 과정엔 ‘금 모으기’ 같은 미담만 있는 게 아니다. 부도와 파산, 실직에 가정 해체 등으로 고통받은 사람이 많았다. 이들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떠받치고 또다시 도전할 기회를 주는 사회안전망의 지속적 확충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위기론을 내세워 사회 통합과 고통 분담을 호소하지만, 실제로는 고통을 일방에게 전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송세영 편집국 부국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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