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대표단이 대통령띠 걸어주자 눈물…룰라 “희망 재건”

박형수 2023. 1. 3.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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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현지시간)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 행정부 청사인 플라날토 궁전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이 쓰레기 수거업자인 알린 소사로부터 대통령 띠를 받고 있다. 대통령 띠는 전임 대통령이 전달해야 하나 그가 미국으로 떠나 시민 대표단이 전달했다. [AP=연합뉴스]

중남미 ‘좌파 대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77·룰라)가 새해 첫날 제39대 브라질 대통령에 취임했다. 브라질 역사상 최초로 3선 대통령이 된 룰라는 취임식에서 쓰레기 수거업자인 흑인 여성으로부터 대통령 띠를 전달받고 “모두를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며 통합을 강조했다.

룰라 대통령은 이날 취임 연설에서 “이 나라가 이룩한 위대한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이 지난 몇 년간 체계적으로 철거됐다”면서 “이제 가난한 브라질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희망과 통합으로 똘똘 뭉친 브라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그는 자이르 보우소나루(67) 전 대통령의 정책 기조를 뒤집겠다는 뜻도 분명히 밝혔다. 룰라 대통령은 “아마존 삼림 벌채 없이도 농업을 성장시킬 수 있다”면서 “지속 가능한 농업과 광업을 향한 역동적이면서도 생태적인 전환으로 탄소 배출 제로 국가로 만들겠다”고 했다. 총기 소유권 옹호 정책도 철회하겠다고 선언했다. 로이터통신은 “전임 보우소나루 행정부의 특징은 아마존 삼림 벌채 방임, 총기 규제 완화, 원주민·소수민족에 대한 차별 등으로 요약된다”고 전했다.

룰라 대통령은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브라질 국민 68만여 명이 사망한 것에 대해 “정부의 잘못된 대응으로 벌어진 대량 학살”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반드시 진상조사를 통해 대량 학살에 대해 책임을 묻고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우소나루의 이름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국가를 사유화하고 자신의 이념에 예속시키려 했던 자들은 법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취임식에 불참했다. 그는 임기를 이틀 남겨놓은 지난달 30일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로이터통신은 법률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해 “대통령 면책특권을 상실한 보우소나루가 그간 반(反)민주적 발언과 코로나19 처리와 관련된 사법적 위험이 증가하자 자리를 피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취임식에서 전임 대통령이 후임에게 대통령 띠를 넘겨주는 관례도 깨졌다. 보우소나루를 대신해 장애인·원주민·공장노동자·여성 등으로 구성된 6명의 시민 대표단이 대통령 띠를 전달했다.


시민 대표단 중 마지막 순서인 알린 소사(33)가 대통령 띠를 걸어주자 룰라 대통령은 눈물을 글썽이며 감격했다. 행사에 참석한 수만 명의 브라질 국민이 환호성을 올렸다. 현지 매체는 소사에 대해 “14세 때부터 쓰레기를 수거해 생계를 이어온 흑인 여성”이라고 전했다. 일곱 자녀의 어머니인 소사는 룰라 대통령의 집권 2기 때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참여해 교육받았고 현재 쓰레기 재활용 협동조합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취임식은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됐다. 경찰은 폭발물과 흉기를 소지한 채 취임식장으로 진입하려던 남성을 체포하기도 했다. 두 달 넘게 대선 불복 시위를 지속 중인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이날도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 등에서 시위를 이어갔다. 앞서 브라질 법원은 취임식 다음 날인 2일까지 수도 브라질리아 내에서 총기류 및 탄약 소지를 금지했다.

2003~2010년 연임하며 남미 최대 경제국 브라질을 이끌었던 룰라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대선 결선투표에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에게 승리해 12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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